미국에서의 고지라

2024.04.14 15:46

돌도끼 조회 수:265

1954년에 일본에서 [고지라]가 나왔습니다.

[킹콩], [심해에서 온 괴물]과 같은 헐리우드 괴물영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기존 괴물영화들과 다른 건 사이즈였죠.
키가 50m!
기존에 나왔던 괴물들을 다 갓난아기로 보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사이즈의 괴물이 보여주는 파괴 스펙터클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거대한 덩치로 빌딩도 밀어버리고, 어떤 무기를 써도 스크래치도 안나는 그야말로 괴물중의 괴물. 괴물의 왕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괴물을 괴수라고 불렀죠.

56년에 고지라는 미국에 진출합니다. 제목부터 [괴물왕!, 갓질라]로 바뀌었습니다.

고지라가 왜 Godzilla라고 바뀌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토호에서 직접 붙인 스펠링이라는데, 제 생각엔 그냥 발음기호 dʒ를 곧이곧대로 적어버린 것 같습니다만...

이 [괴물왕 갓질라]... 아니 [괴수왕 고질라]는 일본에서 공개된 그대로가 아닌 미국에서 추가촬영/재편집한 버전이었습니다. 일본사람들만 나오는 영화니 미국에선 안팔릴 거라 생각해서 백인 주인공을 끼워넣은 거죠. 거기다가, [고지라]라는 영화 자체가 미국의 원폭을 까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뉘앙스는 다 잘라냈습니다. 그러다보니 백인 주인공 나오는 추가장면을 더하고도 원본보다 10분 이상 짧아졌습니다.

그후로도 고지라 시리즈는 미국에서는 재촬영/재편집한 버전으로 주로 공개되었습니다.

[괴수왕 고질라]는 전국민이 다 알 정도의 히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화를 개조하고 배급하는데 들어간 비용에 비해서는 대박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해외시장에도 퍼져서 세계에 고지라를 알리는 역할도 했죠. 일본 오리지날 버전이 일본 바깥으로 나간건 21세기가 되어서였다고 합니다.

이보다 앞선 1955년에 일본에서는 속편인 [고지라의 역습]이 나왔고 59년에 이 영화는 [불의 괴물 자이간티스]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공개됩니다.

제목이 엉뚱하게 바뀐 건.... 고지라는 죽었으니까, 이번엔 고지라 아닌 다른 괴물이 주인공인 것처럼 사기를 치려고 했던 거라나봅니다. 뭐 당연하게 이 '자이간티스'라는 제목은 미국 고지라 역사중의 흑역사로 묻혔고요.

62년에는 3편 [킹콩 대 고지라]가 나왔습니다.
킹콩은 원래 미국 출신이잖아요. 그때까지 미국에서 고지라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존재였지만 킹콩은 오래전부터 세계인의 스타였죠.
이 영화의 미국판은 63년에 개봉되었는데,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 영화 속에 나온 킹콩이 너무 저질이라... 홍보에서 킹콩은 되도록 배제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선 킹콩의 흑역사 취급을 해서, 나중에 리메이크 킹콩 영화들이 나왔을 때도 이 영화는 없는셈 쳤었습니다.

64년에 나온 [고지라 대 모스라]는 같은 해에 [고질라 대 괴물]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공개됩니다.

홍보에서는 모스라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기고 마케팅을 했다네요. 62년에 이미 [모스라]가 미국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때도 새로운 괴수가 나오는것 처럼 사기를 치려고 하지않았나 싶기도...
이 미국버전에는 토호가 미국의 요청으로 찍은 고지라의 추가 액션 장면이 들어갔습니다.
이후 한동안 토호는 미국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등 영화 제작단계에서부터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뭐... 이렇게 해서 고지라 영화들은 야금야금 미국에 침투해서 조금씩 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에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제작한 리메이크 [킹콩]이 개봉되었습니다. 워낙에 화제성 강한 작품이라 업자들 사이에는 비슷한 유형의 영화-괴수영화를 개봉해 한몫땡겨보자는 투기심리가 불붙었고요,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고지라 대 메가로]가 공개됩니다.
일본에서는 73년에 개봉했고, 고지라 시리즈 중에 최악이라는 소리를 듣는 물건이지만 이게 미국에선 나름 대박났나봅니다.

[킹콩]이 조성한 붐 덕에 마케팅에 돈좀 썼다는 것 같고요. 포스터도 [킹콩]의 그 유명한 쌍동이 빌딩 포스터를 패러디해서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이 영화는 고지라 시리즈 중 처음으로 미국에서 프라임타임에 전국방송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고지라는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몬스터였지만 이 시기에 인지도가 떡상하게 됩니다. 특히 아이들 사이에서. 마블에서도 고지라 라이센스를 따내서 스파이더맨과 같이 나오는 시리즈를 찍어냈을 정도죠.

이때 이미, 본국에서는 인기가 떨어져 시리즈가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다건너에서 대박이 난 거죠.

고지라를 좋아하는 영화계 인사들도 꽤 있어서, 80년대 초에는 스티브 마이너가 토호를 찾아가 자기가 고지라 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합니다. 미국인들 중 처음으로 고지라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스톱모션으로 고지라를 움직이게 하고 3D(미국 영화계에 3D 붐이 불던 때입니다)로 만들겠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 눈높이에 맞게 고지라를 만들려면 돈이 솔찮이 들텐데, 스티브 마이너가 그정도 금전 동원력이 있는 감독은 못되어서요. 결국 프리 프로덕션 조금 해본 선에서 무산되었습니다.

시리즈 끝난지 한참인데도 해외에서의 인기는 오히려 더 올라간 걸 본 토호는 '그럼 또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84년에 리메이크판 [고지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괴수왕 고질라] 주인공이었던 레이몬드 버를 다시 소환해 재촬영/재편집한 버전으로 85년에 미국에 공개됩니다.
이렇게 해서 헤이세이 시리즈가 시작되고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죠.

그 후 콜럼비아가 고지라 제작에 본격 관심을 보였고 모회사인 소니를 통해 토호와 접촉해 협상도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작에 들어가기까지 난항이 꽤 있었습니다.

토호는 90년대 초에 헤이세이 시리즈를 접고(그때 토호가 시리즈 피날레로 생각했던 영화가 [킹콩 대 고지라] 리메이크였답니다. 이런저런 문제로 결국 못나오고 다른 영화로 바뀌었지만...) 그 뒤로는 헐리우드 고지라에 배턴을 넘기려했었지만 나오리라 믿었던 미국판 고지라가 너무 안나와서...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는 90년대 중반까지 연장됩니다.

소니의 고지라 프로젝트는 얀 드봉 감독에 스탠 윈스턴이 애니매트로닉스를 맡는 걸로 해서 꽤 진행되었지만 드봉이 제작비를 너무 높이 책정해 소니는 드봉을 해고하고 롤랜드 에머리히를 섭외합니다.

에머리히는 '이미 수십편의 고지라 영화가 나왔으니 난 지금까지 본적 없는 나만의 버전을 만들겠다'면서 진행중이던 프로젝트를 버리고 처음부터 판을 새로 짭니다.

소니는 에머리히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벌어들인 돈과 그 영화가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데 혹해서 에머리히에게 감독을 맡긴 거였지만... 최종 제작비는 드봉이 요구했던 것보다 더 들어갔다고 합니다.

에머리히가 파괴미학의 장인이긴 해도, 머리속에 일본식의 괴수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나의 고지라는 이러지않아'였죠. 팬들만 기함한 게 아니라, 일반 영화팬들 보기에도 한참 떨어지는 영화.

에머리히는 속편의 기획에까지 들어갔지만, 실망스런 흥행성적에 소니는 토호와의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침묵했습니다.

미국판 고지라 영화가 더 나올 일이 없게되자 토호는 새 고지라 시리즈를 만듭니다.

이 2000년대 고지라 영화들은 해외팬들이 보기엔 그럴싸해보이지만 일본내에서는 '인기 아이돌의 영화 출연작', 'TV 인기 아니메의 극장판에 딸린 동시상영작' 등으로 소비되었던 형편이라... 일본에서도 고지라 영화의 입지는 썩 좋은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가...
레전더리에서 판권 따내고 가렛 에드워즈가 만든 [고질라]가 흥행성공은 물론 평단의 찬사까지 이끌어냈다는 기적에 가까운 사고를 치면서, 고지라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급등하게 되었습니다. 잘 모르거나 관심없는 사람들의 시선도 끌게되고...

이전까지 토호는 미국판 고지라가 나오는 동안은 일본판 시리즈는 중단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레전더리 시리즈가 진행중일 때는 미국판과 병행해서 별개의 일본판을 진행하는 걸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렇게 나온 [신고질라]가 역대급 대박을 치면서 일본에서도 고지라 프랜차이즈가 완전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2023/24년 연말->연초에 걸쳐 겨우 몇달 간격으로 일본영화 [고지라빼기일쩜영]과 미국영화 [고질라곱하기콩]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빼기]는 비평흥행양쪽으로 대박났고 [곱하기]는 해외흥행에는 성공한 것 같으니까 앞으로도 두 나라에서 계속해서 고지라 영화들을 만들어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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