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인질)

2017.11.17 04:33

여은성 조회 수:699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말을 했다죠.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라고요.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피곤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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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가끔 나의 다른 버전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해요. 예를 들어 중세시대의 거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라고요. 머리는 나쁘면서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 괄괄하고 드센 여러 명의 형제들에게 치이며 지냈을 거예요. 새벽에 제일 일찍 일어나 소의 젖을 짜고 낮에는 말없이 논밭을 일구는 삶을 살았겠죠. 남보다 궂은 일은 더 많이 하고 어쩌다 맛있는 음식이 생겨도 가장 적게 먹거나 못 먹고...뭐 그러면서요. 화는 내고 싶은데 분노의 대상이 감히 화낼 수 없는 상대일 때 가족들이 찾는 만만한 소년...그 소년 그대로 청년이 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유순한 척 살던 나는 어느날, 오늘이 적당하겠다 싶은 날 부모와 가족들을 몽땅 죽여버리고 떠났을 거예요. 


 뜬금없이 왜 죽이냐고요? 왜냐면 그 놈들은 처음부터 노동력으로 써먹기 위해 나를 낳은 거잖아요. 그러려고 나를 낳은 녀석들을 내가 살려두지 않는 건 당연한 거죠.


 음~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나의 천성은 착하니까요. 내가 가족들과 같이 살다가 어느 순간 그들에게 연민을 품게 되어버렸다면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냥 집을 떠났겠죠. 품삯을 받고 일해주며 이런저런 곳을 떠돌다가 어느날 새벽에 얼어죽었을 거예요. 아마 여러 번 시도 끝에 얼어죽었겠죠. 오늘은 꼭 얼어죽길 바라며 일부러 찬 곳을 택해 잠들곤 했을테니까요. 성공할 때까지.



 2.하지만 이 인생에선 자살하기가 힘들어요. 그야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야 많지만 여기선 방법이 문제가 아니죠. 여기서의 문제는 인질이예요. 


 언제나 자살 얘기를 하긴 하지만 사실 그건 쉽게 할 수 없어요. 여러분은 이해를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게 누구든, 만약 자살을 꼭 해야겠다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다 없애버린 후 자살해야 한다고요. 자살하면 남겨진 그들이 너무 슬플테니까요. 좀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러니까요.


 하지만 삶을 사랑하는(왜 사랑하는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삶을 앗아가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들을 죽여서 앗아가든 아니면 그들이 사랑하는 나를 죽여서 앗아가든 말이죠. 어느 쪽이든 그들의 삶을 앗아가는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하루하루 때우면서 말썽 안 피우고 살아야 해요. 


 

 3.이건 마치 이 세상이라는 감옥이 그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과 같은거예요. 내가 이 감옥에서 너무 큰 소란을 피우거나...나갈 엄두가 들지 않게 만드는 인질 말이죠. 


 내가 사라지는건 그들을 슬프게 만드는 일이고 내가 너무 큰 말썽을 저지르는 건 그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죽는 것도...너무 큰 사고를 치는 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조용히 재미없게 버텨갈 수밖에 없는 거죠.



 4.휴.



 5.중세시대 버전의 내가 바로 자살하지 않고 한동안 떠도는 건 내 생각이 옳았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일 거예요. 다른 곳에 가봤자 별 것 없을거라는 걸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그걸 확인하고 역시 내 생각이 옳았다고 주억거리면서 죽었겠죠. 


 하지만 이 인생에서는 떠돌이 집시 생활이나 여행 같은 헛짓거리를 할 필요도 없죠. 세상에 별거 없다는 걸 이미 충분히 잘 아니까요. 



 6.음~호스티스들은 좋아요. 그들과 식사를 하거나 영화관에 있다가도 그들을 보며 가끔 생각해보곤 해요. 내가 만약 자살하면 이 녀석들이 몇 초나 슬퍼할까를 말이죠. 


 답은 당연히 0초예요. 그 여자들은 그야 슬퍼하는 척을 한동안은 하겠지만 실제로 슬퍼하지는 않죠. 그냥 영업할려고 나와 친한 척 하는 거니까요. 


 

 7.내가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술집 여자나 스폰녀는 좋은거예요. 내가 사라지면 슬퍼할 인간들을 더이상 늘리는 건 안좋거든요. 여기서 더 늘어나버리면 감당할 수가 없어서 피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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