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레와 어머니

2017.12.01 13:00

sublime 조회 수:1829

시어머니께서 문화센터 글쓰기 교실에 다니면서 쓰신 글인데

많이 배우지도 못한 내가 이제와서 이런거 배우면 뭐하냐시며,

종이 몇 장 채우려면 머리도 아프고 해서 이제 글쓰러 안가신다고 하세요.

제가 보기엔 정말로 잘 쓰시는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같이 나누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수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시어머니글이 저는 정말 좋더라구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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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는>


전화벨 소리가 나면 가져놀던 장난감을 던지고 눈과 귀에 촉을 세워 빠른 속도로 달려가 전화기를 쟁취한다. 
 언제나 할머니보다 빠르다.
 엄마는 부산, 아빠는 서울,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는 경주에 첫 돌을 지낸 아이를 맡겨두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루 두 세 번씩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들레 밥 먹었어요? 머하고 먹었지? 많이 먹었어?”

 아이는 이 작은 장난감 같은 것 속에서 감미로운 엄마의 음성이 들린다는 게 신기하고 즐겁다.

엄마가 뭐라고 하는 지 고개를 끄덕이고, 손짓을 하고, 발을 동동 걸리기도 한다. 온몸으로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즐겁다. 엄마는 일을 하다 나와 마음이 바쁘다.

     “들레야, 나중에 또 전화할게. 들레가 먼저 끊어 봐.”

 그러나 아이는 아쉬워 엄마를 몇 번 부른다. 엄마는 대답이 없이 조용하다 노래를 부른다.

     “아빠하고 나 하고 만든 꽃밭에 봉숭화도 채송화도 한참이지요. 아빠...        들레야 끊는다..!”

 엄마는 울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는 소리가 비워버린 빈 전화기를 들고 다시 엄마의 음성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 만지작 거린다.


 산골에는 해가 일찍 떨어져 밤 여덟 시면 한밤 중이다.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으며 자동차 마저 겨우 한 두 대 다닐 뿐이다. 여기는 스쳐지나가는 길이 아니고 오던 길로 되돌아 나가야만 되는 깊은 산골이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자동차 불빛이 거실을 환희 비치고 지나간다.

 밥을 먹고 있던 아이가,

  “엄마다!”

반가워 소리지른다. 
 하지만 자동차는 우리집을 지나 가버렸다. 엄마의 차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밥을 먹고 있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살짝 놓고 일어나 거실 커텐을 가리고 아이 뒤에 앉았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본 할아버지는 마음이 아려왔다.


 온돌방 아궁이 속에는 언제나 감자, 고구마가 재를 뒤집어 쓰고 손녀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 손녀 입에 넣어준다. 기다리던 엄마를 빨리 잊으라는 고구마 인 것 같다.

 모두가 잠이 든 한밤 중이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할아버지가 불을 켜니

     “아버지!”

 며느리가 왔다.

 아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이 늦은 시간에, 내일이면 또 출근해야 할 텐데...  현관 문을 여니 튕기 듯 뛰어 들어온다.

부산에서 경주오는 막차를 타고 마을 입구까지 택시로 왔단다. 숲 깊은 산길이 무서워 양 쪽 눈 한 번 돌리지 않고 하얗게 뻗은 좁은 길만 내려다 보고 뛰어 왔단다. 
 이런 게 엄마다. 아무것도 계산 없이 그냥 보고싶고 이것이 바로 엄마와 자식의 사랑이다. 자고있는 아이를 꼭 껴안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엄마는 잠 자는 아이의 볼에 입 맞추고 부산으로 갔다. 지난 밤 아이는 엄마가 다녀간 것을 알지 못했다.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낮에 전화하면서 들레야 오늘은 들레 보러 갈게. 그래서 아이는 자동차의 불빛을 엄마라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 아빠, 아이에게는 금요일이 멀기만 하다. 금요일 밤이면 만나는 게 아쉬워 가면서 눈물짓고 보내고 눈물 짓는다.

 달은 나뭇가지 끝에 걸려있고 바람은 가랑잎을 모아 집 뒤안을 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시골생활을 접어야 어린 아이들이 아픈 사랑을 하지 않겠지..

 손녀를 위해 내가 버릴 집은 바람만이 쉬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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