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8 17:18
서랍을 정리하다가 2016년에 받았던 편지들을 발견하고 읽어보았어요.
세상에나! 그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감옥에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더군요. 과거의 제가요.
전부 다는 아니고, 평화의 신념으로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일명 평화수감자)에게 보냈어요.
"지루한 감옥에서 잠시나마 엉뚱한 즐거움을 느끼게, 제가 아바타가 되어 평화수감자의 버킷 리스트를 감옥 밖에서 대신 실행해줄 테니, 뭘 하고 싶은지 알려주시면 제가 실행하고 그 경험을 편지에 써서 보고하겠어요~"
라고 했더군요. 네, 과거의 제가요.
평화수감자 분들이 재미있어하면서 답장을 보내셨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에 거의 하나도 못 한 거 있죠.
그 때나 지금이나 심각하게 타임 푸어거든요. 일본의 모 해변에 가보기는 당연히 못했고, 경기도의 모 산을 등산하기, 영화 캐롤 보기 같은 것도 못했어요.
그중 한 분은 곧 가석방을 앞두고 있어서 출소하면 맛집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그 분도 아직 못 만났어요.
그래도 그 뒤로도 편지를 주고받긴 했고, 등산하기는 대충 서울 아차산을 간 것으로 퉁친 것 같긴 해요.
대체 뭘 이렇게 빡빡하게 살았나 싶기도 하고, 2년 사이에 참 많은 것이 변했구나 싶기도 하네요.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고 대체복무제가 현실이 되었고 지금 수감자들도 가석방된다니.
한편으로는 3년 동안 감옥에 합숙하면서 일하는 것으로 대체복무를 정하다니 이 사회는 아직도 참 후졌구나 싶습니다. 3년 동안 감옥에 있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빨간 줄이 가지 않으니 감지덕지해라 이건가요.
다른 나라도 3년 동안 감옥 업무를 하는 대체복무가 있긴 하지만 그건 출퇴근이거든요. 아놔..
교도대와 수감자를 동일시 하는건 정말 몰라서 그런건지, 그쪽으로 프레임을 짜는건지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친한 친구가 교도대 생활을 했는데... (이 친구가 험상궂게 생겼지만 알맹이는 착한 친구)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제대하고도 한동안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군대식의 내무반 생활은 조금 덜 하지만 없는 건 아닌데다가.. 실제로 힘든 포인트는 수감자들을 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군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그래도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는 평균적인 사람들이지만..
수감자들은 대부분 밖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온 사람들이라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보여주거나 호의를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바로 만만하게 보고 통제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초기에는 그것 때문에 교도관들이나 교도대 고참들에게 많이 갈굼당했다고 하고요.
수감자들에게 큰소리 치고 욕하고 종종 통제된 폭력을 써야 하는 상황에 대해 힘들어 했습니다. 군대도 마찬가지 아니냐 하겠지만, 위에서 말했듯 군대에 끌려온(?) 사람들은 평균적인 사람들이라 말이 통한다면 수감자들은 힘과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 말조차 통하지 않는다고.. (일반적인 부대에 한두명 싸이코패스 관심병사들이 있다면 교도대는 그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부대를 상대한다고 생각하라더군요)
그래서, 4주간의 군사훈련도 받을 수 없어서 공익이나 비전투병과도 거부하는 분들이 교도대 생활은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논란이 되는 합숙여부나 복무기간을 떠나서도 교도대 활동 자체가 징벌이 아닌가 싶네요.
지금으로서는 의경, 교도대, 의무소방 등등 병역자원을 끌어다 쓰던 분야에서 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면서 '눈에도 띄지 않는' 분야로 고른게 교도대 아닌가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