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슬프게도 나는 대학교 때 왕따였어요. 그래서 우울한 일들이 많았죠.


 그런 수많은 것들 중에 몇가지 특정한 키워드들로 남은 것들도 있어요. 그중 하나가 파전과 막걸리죠. 인싸들이 회기역 골목으로 몰려가 그들끼리 파전과 막걸리로 청춘의 축제를 벌일 때 나는 늘 혼자였더랬죠. 


 아마 그들 중 한명이라도, 한번이라도 내게 파전과 막걸리를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면 오늘의 내가 빌런이 되는 일은 없었겠죠. 하지만 결국 나는...빌런의 길을 걷게 되어버린 거예요. 그들 탓이죠.



 2.뭐 그래요. 감정이나 기억같은건 열화되지만 특정한 트리거나 키워드들로 남은 건 한이 맺혀버리게 되죠. 그래서 나는 한동안 파전과 막걸리를 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살았죠. '그따위 건 먹지 않겠어! 대신 조니블루킹조지V를 마셔주지!'뭐 이런 거죠.


 하지만 잘나가게 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빌런을 그만둘정도로 기분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나도 파전과 막걸리를 한번 먹어 볼까...하는 마음은 들 정도로는요. 사실 궁금했거든요. 파전과 막걸리가 무슨 맛일지.


 한데 문제는, 도저히 파전과 막걸리를 먹을 기회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거예요. 이상하게도...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는 거죠. 왜냐면 주위에 남은 사람들이 두종류밖에 없었거든요. 옛날부터 알던 아싸거나, 아니면 미친놈들이거나. 딱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러 다닐 정도의 적정한 인싸 농도를 지닌 사람들이 없었더랬죠. 


 이쯤에서 '그러나'가 나와야겠죠.



 3.그러나 내일...전집을 간다 이거죠! 사실 파전도 먹어봤고 막걸리도 먹어는 봤어요. 그러나 파전과 막걸리를 먹어보지 못한 거죠.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죠. '따로따로 먹어봤으면 됐지 뭐가 문제야?'라고요. 하지만 아니예요. 반드시 '파전과 막걸리'여야 하는 거예요. 내가 한이 맺힌 키워드는 파전도, 막걸리도 아닌 '파전과 막걸리'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홍대의 전집들을 검색하고 있어요.



 4.휴.



 5.문제는 홍대 전집들을 검색하다 보니까...그곳 전집에서 파는 모듬전과 닭도리탕이 너무 맛있어 보여요. 그래서 모듬전과 닭도리탕을 하는 가게에 가야 하나...고민중이예요. 파전과 막걸리는 다음으로 미루고요.


 왜냐면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키워드는 '파전과 막걸리'가 아니라 '회기역 골목에서 먹는 파전과 막걸리'거든요. 인싸들이 가던 그곳...회기역에 있는 비위생적이고 시끄러운 가게에 가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어야만, 이 한맺힘이 해소가 되는거예요. 홍대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어봐야 별 의미가 없을 거 같아요.


 사실 좀 핑계이긴 해요. 검색하다 보니 모듬전과 닭도리탕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그냥 그걸 먹으러 갈 핑계말이죠. 어쨌든 내일은 파전과 막걸리가 아니라 모듬전을 먹어야겠어요. 물론 막걸리따윌 마실 필요는 없겠죠. 막걸리같은 술에 간을 낭비하기엔 나는 소중하니까. 막걸리는 나중에 회기역에서 파전을 먹을 때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딱한번 먹으면 되겠죠.



 6.하아...일기를 쓰다말고 미친듯이 홍대 전집을 검색해봐도 한낮에 여는 전집이 없어요. 심지어 홍대입구인데도 말이죠. 홍대라면 막...뭐랄까? 자신이 예술을 한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째고 대낮부터 술과 모듬전을 먹고마시는 가게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서울시립대엔 있었는데 말이죠.



 7.일단 점심은 뭔가 간단한 걸로 때우고 저녁에 전집을 열면 그때 가야겠어요. 합정~상수역엔 고즈넉한 카페가 많은데 아주 오래 전에 빈디체랑 갔던 좋은 카페를 다시 발견했어요. 전에 썼듯이 요즘은 홍대 상수 연남동을 미친듯이 걸어다니곤 하거든요.


 그런데 피아노를 쳐보니 슬프게도 피아노가 고쳐져 있어서 슬펐어요. 몇년전에 쳐봤을땐 고장나 있어서 소리가 작았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고장나 있던 피아노가 고쳐져 있어서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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