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수능을 봤습니다!

2022.11.18 21:50

Sonny 조회 수:485

세월이 빠르죠? 저랑 놀이동산을 놀러갔던 사촌동생이 어느새 수능을 보고 대학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수능 전날 전화해서 컨디션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괜찮더랍니다. 안정권 수시를 써놨는데 너무 하향지원을 한 것 같아서 후회하고 있다고. 수능 보고 난 다음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딱히 타격받은 건 없던 것 같더군요. 굽네 치킨 바사삭 쿠폰 두개 보내줬습니다. 요새 돈 나갈 데가 많아서 그런 것밖에 못해주겠더라고요 ㅎㅎ 이런 저런 잔소리가 올라왔지만 딱 하나만 했습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운동해서 만든 근육은 평생 가니까 꼭 팔굽혀펴기라도 간단히 하라구요. 사촌동생은 안그래도 헬스를 하겠답니다. 이건 상당히 건설적인 잔소리 아닐까요.


아직도 제 마음 속에는 다섯살 꼬맹이로 남아있는 사촌동생이 이제 곧 대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입니다. 아마 제 주위에서 세월의 흐름을 '성장'이란 방향으로 가장 크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인간적 지표가 바로 사촌동생 같습니다. 제 친구는 아파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바로 수능날 받으니 더 그렇습니다. 제 주위를 둘러싼 노화와 바스라짐의 흐름 속에서 사촌동생은 유난히 뻗어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는 목소리가 좀 걸쭉해졌고 인스타에 폼을 잡은 사진을 올리곤 합니다. 언젠가는 저와 같이 19금 영화도 볼 수 있게 되겠죠. 나중에는 어떤 위스키가 맛있고 어떤 와인이 맞는지 술에 대한 취향을 논할 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좀 뾰족한 그의 성격이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서 조금 다스려질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조금 더 다양한 친구들이 생기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가 여성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남성에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이질적인 세계는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여성의 세계일테니까요. 알아서 잘 하겠지만 걱정도 됩니다. 제가 겪은 방황의 시간을 그는 단축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저희 막내 삼촌은 많이 못줘서 미안하다며 이십만원인가를 제 손에 덥썩 쥐어줬죠. 가까웠지만 명절 말고는 큰 왕래가 없던 삼촌이 왜 저한테 그러는지 그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알게 모르게 외삼촌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신세진게 많았다고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떨어져있는만큼 양육의 부담은 없고 일년에 몇날 안되는 기간에만 책임과 애정을 베풀 수 있는 그런 관계도 있는거죠. 그 일시적인 보살핌이 주는 충족감이 있습니다. 아마 이 게시판이 살아있는한 저는 사촌동생의 군입대 소식도 알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외삼촌의 위치에 완전히 가게 될려나요. 저는 노화를 최대한 미룰 수 있어야할텐데요.


제 사촌동생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저는 맞출 수 있습니다. 아마 열한시정도까지는 늦잠을 자다가 일어났겠죠. 고모가 차려준 점심을 대충 뒤적여서 먹고 게임을 한 세시간 정도 할 것입니다. 고모가 퇴근한 뒤에는 괜히 툴툴댈 것입니다. 자유가 너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온전한 해방감을 누리는 몇안되는 시기입니다. 저는 그가 깔짝거리면서 팔굽혀펴기랑 플랭크만 몇개씩 하는 하루를 보내주면 박수를 쳐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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