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범죄, 기억 두 가지

2018.03.06 10:50

미나 조회 수:2301

아동성추행 피해자가 그로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0년이 넘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날의 공기냄새까지 기억해요.

철이 든 후 그 일로 가장 힘들었던건 제가 그자가 저를 추행하고 강간을 시도하는 그 순간에도 그자에게 잘보이려고 했다는 거에요. 소리도 못낼만큼 두려웠고 그래서 잘보이고 싶었어요.

나중에 우울증이 잦아들어 죽고싶다는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때 그제서야 살해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어린 나는 그때 죽고싶지 않아서 그자에게 그 순간에도 예쁨받으려고 했던 거구나...라고 깨달았고 자신에 대한 혐오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어요.

수행비서를 몇년간 했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설령 맞더라도 자기할말을 하는, 연장자들이 넌 반골기질이 강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 그로인한 불이익은 그닥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건 그 불이익이 별게 아니어서 그랬던거죠. 취업해서 비서직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딱 그 생활이었어요. 매일매일 그자의 기분을 잘 맞춰주어야 하루가 편하게 무사히 넘어갔어요. 온 신경을 거기에 몰두하면서 저는 인정받는 사랑받는 비서가 되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어요.

내가 비겁하고 능력없고 용기없어서 그만두지 못하고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게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른 일을 하게 되고 그때의 상사가 제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서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에 대한 비참함도 사라졌습니다.

어제 안희정 범죄사실을 접하기 전까지는요.

어릴때의 기억과 비서일을 할때의 기억이 믹스되어 분노와 혐오가 사그러들지 않네요.

위의 일들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남편이나 친구에게 이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음이 좀 풀릴까 생각하다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아서 여기에 씁니다.

피해자가 잘 극복하고 살아남길, 훗날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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