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2017.07.17 14:06

Bigcat 조회 수: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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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시 궁에서 애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프로이센(통일 전 독일 지역의 한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 이 분은 원래 애견가로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 말과 얽힌 각별한 추억...도 있습니다. 바로 대왕의 첫 전투였던 몰비츠 전투(1741년 4월 10일)에서 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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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브레우슬라우에서 지배권을 인정받고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 빌헬름 캠퍼슨, 1882년 작, 프레스코화, 베를린 명예의 전당 벽화(1944년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원본 유실, 복제화)




브레우슬라우는 슐레지엔의 주도입니다. 슐레지엔은 현재는 폴란드의 영토이지만 이 시절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하면 중부 유럽의 작은 영세중립국이지만...저 시절 - 그러니까 1741년의 18세기 중반 - 에는 유럽 최고의 제국이었습니다. 잘 믿기지는 않을 것이지만 여튼 16세기부터 그랬습니다. 1918년의 1차 대전 패배로 제국이 산산히 분열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그림을 보면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진짜 속이 쓰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꼭 패권 위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 - 저 그림만큼 오스트리아의 균열 - 수백년간 지속된 제국의 지배권에 - 신성로마 제국(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황실이 제국 황제도 겸함)의 패권에 확실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주는 건 다시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얘기는 이렇게 된 겁니다. 1740년에 저 그림의 주인공 프리드리히 대왕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선전포고도 없는 완전 기습전이었죠. 그냥 벼락같이 군사를 끌고 쳐들어가서 슐레지엔 - 저 그림의 주도 브레우슬라우가 있는 - 전체를 점령해버렸던 겁니다. 당시 대왕은 이것저것 자기가 일으키는 군사행동에 대해 정당화하는 주장을 폈습니다만 - 옛날 30년 전쟁(1618~1648) 당시 슐레지엔이 대왕의 가문인 브란덴부르크 소유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되찾겠다는 것이었죠 - 일단 100년전에 있었던 일을 구실 삼는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그 사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더 웃긴 일인게, 저 지역의 소유권이 애초에 브란덴부르크 - 프로이센의 것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는 얘기였거든요.(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대왕의 인척 가문 중에 저 지역의 영주가 있었는데 당시 자신의 주군이던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죄를 지어서 그만 슐레지엔의 지배권을 몰수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계승권이 자기네에게 있다고 대왕의 선조가 공개적으로 건의한 것이 전부였던 겁니다.)


그러나 대왕은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저 지역의 지배권자가 누구이든 간에 그 전란의 와중에 누구는 슐레지엔을 잃고 혹은 누구는 빼앗고 했던 것은 무슨 정당한 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힘의 논리였다는 것이었죠. 영주가 황제에게 죄를 짓고 어쩌구...하는 얘기는 당시 28살의 젊은 대왕에게는(이건 본인의 표현) 그냥 둘러대는 그럴듯한 명분에 불과할 뿐 그가 보기에 모든 것은 힘의 논리로 결정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날까지도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로 결정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정치가들이 말로야 그럴듯한 명분을 세우거나 도덕과 정의의 수호신인듯 행동하지만 실은 모든건 '말보다 주먹'이라는 현실적 힘의 관계로 결정된다는 것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의 젊은 대왕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정말 기가 막힌 기회가 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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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스베르크 성 풍광, 게오르그 폰 노벨스도르프, 1737년 작, 캔버스에 유채, 프로이센 궁전과 정원 재단 카다로그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속에서 자랐는데 - 이 시절 기준으로 봐도 그건 차라리 학대에 가까웠지만 - 한 차례 폭풍같은 대형 사건을 겪은 뒤로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그럭저럭 부자간의 사이를 회복한터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회복한 것인지는...) 여튼 한 때 진짜 아들을 죽일 것같이 나대던 왕은 - 빌헬름 1세 - 어찌된 일인지 이 시점에서는 아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준 듯 왕세자가 플룻을 불던 친구들과 철학 모임을 갖든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예전에는 아들 면전에서 플룻을 발로 부수어 버리거나 책들을 모두 압수해 버리는 등 그 와중에 아들에게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여튼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그런 일도 없었고 왕세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하던 학예활동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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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라인스베르크 성은 지난 1335년부터 있었던 중세의 성이었는데 1556년에 새 주인이 된 성주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근사하게 개축한 이래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1734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아들(왕세자 프리드리히)을 위해 이 성과 영지를 사들였습니다. 지난해에 결혼한 아들 부부를 위해 독립된 세자궁을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된 왕세자는 즉시 건축가들을 동원해서 평소 상상했던 대로 궁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근사한 첨탑도 만들어 세우고 그 탑들을 연결하는 회랑도 짓고 어린 시절부터 플룻을 가르쳤던 가정 교사 선생(플루리스트 요하임 콴츠)과 함께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녀 친구들도 불러 모아 수시로 파티도 열고 함께 음악회와 연극 그리고 발레 공연도 관람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들 무리 중에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이미 세상에 없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그 자리를 메꾸려는 듯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고 - 심지어 아내 이외에 여자 친구들까지 사귀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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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중세 기사들을 모방하여 기사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새롭게 알게 된 여자 친구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내가 요즘 어떤 부인과 친해졌는데 그 여자 정말 재치있고 똑똑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니까! 여자들은 정말 남자들과 대화법이 다르네....세상에 여자들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어..."


 대왕에게는 사실 소년 시절의 여자(사람)친구도 있었습니다. 딱하게도 그 소녀가 짓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고 죄를 뒤집어쓰고 궁 밖으로 쫒겨난게 비극이었죠. 대왕의 아버지가 아들의 비밀을 지키려고 그 가엾은 소녀에게 누명을 씌었거든요. (...이 양반 정말...) 훗날 그가 왕이 된 뒤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있다면 온통 독설들로(...그 여자 정말 가까이 가기 싫어. 썩은 내가 여기까지 진동한다니까...여자 얘기만 했다하면 다 이딴 소리...그것도 특히 예쁜 여자한테 더 심하게 함...-_-) 가득한 것과는 정말 대조되는 것임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그가 이 시기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남들에게 본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꾸며진 모습만 보여주면서 살았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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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시 궁의 정원을 산책하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볼테르



확실히 근거가 있는 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 시절 프리드리히 대왕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 철학이 담겨있는 소논문 한 편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유명한 <반마키아벨리론>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군주론>을 정면 반박하는 이 논설집은 전례없이 격한 어조로 가득한 혈기방장한 저술이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고 - 그 때문에 백성들을 착취하는 권력자와 그러한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권력의 전횡을 정당화하는 마키아벨리의 사고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예시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혹은 중세와 근세의 유럽 - 특히 중세 프랑스의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이런 권력의 전횡이 얼마나 백성들을 괴롭히고 여러 나라들을 파멸로 몰아갔던가 지적했는데, 마키아벨리의 저서가 그저 폭군들을 옹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죠. (논조가 얼마나 과격한가 하면 거의 토황소격문급...입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군사를 일으켜서 이러한 책을 쓴 그 괴물 - 대왕이 자신의 글에서 실제로 마키아벨리를 이렇게 지칭함 - 을 토벌이라도 할 기세...)



하지만 후세의 우리들로서는 세상에 뭐 이런 유체이탈 화법이 다 있나 싶을 뿐이죠. 역사상 누구보다도 마키아벨리의 이론을 체화하고 한평생 실천하신 분이 대체 뭐라고 씨부...여튼 실소가 나올 일이긴 합니다만 이 논설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대략 짐작되는 바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당시 논문 지도 선생이었던 볼테르에 의해 삭제된 부분이 사실 이 논문의 핵심이었는데 그는 논문 말미에서 국가의 안위와 발전을 위해서라면 지도자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거든요. 뭐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적이 쳐들어올 기세를 이미 예견했다면 지도자는 국가 방위를 위한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예방전쟁론 - 훗날 대왕이 7년 전쟁을 개전할 때 이런 논리를 세워서 작센 공국을 무력 점령....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러시아에 이어 프랑스까지 동맹 세력으로 끌어들였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고민끝에 먼저 칼을 뽑기로 결정한거죠) 권력자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도자는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1740년의 슐레지엔 점령을 이런 논리로 정당화했습니다. 그는 종래의 유럽 군주들이 저질렀던 침략전쟁을 비난했었는데, 그게 실은 군주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비난한 것이라는 겁니다 - 특히 프랑스의 왕들이 왕위계승을 위한 전쟁들을 일으킨 것을 맹 비난...거의 프랑스 개새X 수준) 반면 국력을 키우고 국가를 성장시키기 위한 전쟁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러니 실상 <반마키아벨리론>의 무삭제판을 본다면 이 젊은 왕세자가 만만치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임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는 대왕의 치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아는 우리들 후세들의 생각일 뿐이고 당시 스물 몇 살 젊은이의 논문 - 그것도 첫 저작 - 을 인편으로 받아보면서 첨삭해주던 볼테르로서는 세상에 뭐 이런 중 2병이 다 있나...싶었던지 1740년 초에 나온 논문의 출판본에는 이 부분이 모두 삭제되고 없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쓰는데는 선수였던 볼테르로서는 나중에 지가 왕이 되서 이불킥이나 할 이런 소리는 선생인 내가 그냥 미리 손봐준다는 심정으로 삭제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편으로는 그 남자다움, 세상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젊고 영민한 영혼에 매혹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대왕의 초청을 받아들여 설레임을 안고 베를린으로 향했지요.(1747년)



그는 훗날 자신의 회상록(프로이센 왕의 사생활 - 사후 2년뒤인 1780년 영국에서 출간)에 대왕과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그 젊은 왕은 몹시 아팠던지 내가 도착한 날 내내 모습을 볼 수 없었다....마침내 며칠을 기다린 끝에 건강을 회복한 왕을 알현했다....그 젊은이는 생각보다 키도 작았고 체구도 볼품 없었다. 주변의 시종들과 군인들이 모두 키가 크고 체구도 당당한 사내들인 것에 비해 왕은 너무 작아보였다. 이목구비도 그닥 아름답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불어 솜씨는 훌륭했고 그와의 대화는 시종 즐거웠다....(뭔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것 같은 만남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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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아름답네요(그리네릭세 호) 여기 라인스베르크 성은 수도 베를린에서 100km가 떨어진 곳입니다. 1730년에 그 끔찍한 사건이 있고 나서(어떤 사건이었는지는 나중에 상세히 서술하겠습니다) 아들을 죽이네 살리네 난리를 치던 아버지 빌헬름 1세는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 174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 이 아름다운 성을 아들에게 선물해 주고는 이후 아들에 대한 그 어떤 통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충 알려진 바로는 결혼도 했고 이제 성인이 된 아들을 늙은 왕이 더 이상 통제하기가 버거웠을 거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사실 그도 그럴것이 이 시점에 빌헬름 1세는 심각한 비만에 여러 병세로 쇠약해져 있었고 외견상으로 그의 아들은 군사면에나 행정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자질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사실 모든 면에서는 아버지가 바란 훌륭한 아들이 된 셈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왕세자 프리드리히는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던 것일까요? 외견상은 그래보였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그 좋아하던 플룻도 연주할 수도 있었고 책도 마음대로 볼 수 있었고 글도 마음대로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왕세자는 이 궁에 칩거한 채 외부로 일절 나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단 한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부왕을 따라 1735년에 폴란드 왕위계승전쟁(1733~1738)에 참전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그것도 이 전쟁 내내 참전한 것이 아니라 막판에 참관을 하기 위해 전장을 잠시 방문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인상적인 외출이긴 했습니다. 왕세자는 난생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볼 수 있었고 전장에서 전유럽에 무훈을 떨친(오스만 투르크와의 전투로) 사보이의 대공 오이겐(1663~1736)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으니까요.(오스트리아 제국 원수 오이겐은 일전에 프리드리히 대왕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결혼까지 주선했던 사이라 - 물론 모종의 사건으로 이 혼담은 없던 것이 되고 말았지만 - 더 각별한 만남이 되었었죠) 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자신의 마지막 전장에 나와있던 이 노장이 젊은 대왕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이 칩거가 왕세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물론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부왕 빌헬름 1세가 아들에게 준 자유는 딱 라인스베르크 성에서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 혹은 마음대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유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사실 그 궁에 갇혀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절대로 놔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간절히 외출의 자유를 호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으라고. 아들이든 딸이든 내게 첫 손주를 안겨주면 그 궁에서 나올 수 있게 해주겠다. 아니 그것 뿐만이 아니라 네가 그토록 원하는 외국 여행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겠다. 당시에는 전 유럽에 그랜드 투어(이탈리아 기행)의 열풍이 불고 있던터라 이건 정말 괜찮은 제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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