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블랙아담] 보고 왔습니다

2022.11.03 22:06

Sonny 조회 수: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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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랙아담]을 보면서 히어로 영화의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에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나옵니다. 일단 히어로의 능력이 그러합니다. 비행을 할 수 있고, 총탄이나 미사일도 뚫지 못하는 강력한 방탄 육체가 있습니다. 번개를 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거의 전능한 캐릭터를 세워두고 군대나 다른 빌런을 때려잡는 쇼를 보여줍니다. 그 뿐인가요. 이렇게 종합적인 능력을 갖춘 히어로로도 모자랄 걸 걱정했는지 이 히어로와 대적하는 다른 히어로들도 튀어나옵니다. 바람을 움직이는 자! 몸이 커지는 자! 마법을 쓰며 미래를 보는 자! 날아다니면서 여러가지 변화무기를 쓰는 자! 이 영화 한편이 엑스맨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빌런들도 다채롭기 그지 없습니다. 블랙아담과 다른 주인공이 맞서는 적은 현대 병기를 쓰는 사악한 용병단인데 이들은 엄청나게 빠른 근미래적 호버바이크를 타고 다닙니다. 이렇게 SF적으로 나가는가 하면 갑자기 악마도 튀어나옵니다. 머리에 뿔나고 입에서 불쏘는 그 서양 악마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가 졸개들로 부리는 언데드들도 나옵니다. 영화 한편에 오컬트와 좀비와 SF 테크놀로지가 다 들어가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소소함에 민망할 정도입니다.


히어로 영화만의 소재만 그득한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가에 있어서도 [블랙아담]은 온갖 이야기를 다 때려박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차별적인 부분은 비백인 사회가 겪는 차별과 소외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을 받는 노예계층 중 한명이 혁명을 일으키려다가 실패하고 블랙아담으로 거듭났다는 전사를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칸다르라는 가상의 비백인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 근현대사에서 모질게 착취당한 흑인들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을 영화는 제시합니다. 족쇄라거나 지독한 노동이라거나... 그 칸다르는 현재 불온한 용병집단이 지배하고 있는데 백인 세계는 이를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꽤나 정치적일 수 있는 백인 세계로부터의 흑인 세계와 그 갈등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면서 소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 비백인의 탈을 썼지만 세계적 혼란에 대한 또다른 패권주의 등을 다룹니다. 그는 또다른 슈퍼맨이되 이것저것 생각하기 싫고 괴력으로 모든 걸 쓸어버리려는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죠. 배트맨과 슈퍼맨의 뒤를 이어 블랙아담이 나온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힘에 대해 더이상 고민하기 싫다는 염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치면 저스티스 리그는 미국의 초인들이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초인을 간섭하는 유럽열강의 연합으로도 읽힙니다. (아이리쉬인 피어스 브로스넌이 실질적인 리더를 맡고 있는 저스티스 리그의 모습이 그러해요)


그러니까 영화가 엄청 많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능력도 다양하게 보여주고 다른 히어로들과의 갈등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압도적인 모습도 보여줘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백인 세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세계 자체에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에 대한 고민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블랙아담이란 캐릭터 자체의 빌드업은 너무나 부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압도적인 힘만을 추구하는 안티 히어로형의 캐릭터라고 고뇌가 없진 않겠죠. 왜 그렇게까지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지, 그 세상을 보는 단순한 시각이 보다 복잡하게 세상을 보는 이들과 어떤 갈등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그런 단순함이 적중하는 안타고니스트의 더 지독한 단순함은 어떤 것인지 블랙아담 자체에 대한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엄청 바쁘게 흘러갑니다. 등장하면 블랙아담 쇼 1부 짜잔! 그리고 우당탕탕 적응하면서 쇼 2부 짜잔! 갑툭튀한 저스티스 리그와 쇼 3부 짜잔! 그 사이에 서사는 휘발되고 모든 이야기는 캐릭터 공식으로 흘러갑니다.


[블랙아담]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레퍼런스는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블랙아담이 어떤 캐릭터인지 대략 감이 올 겁니다.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커다란 힘으로 민폐를 끼치면서 또 그 압도적 힘으로 주변 사람들은 지키는, 그런 히어로인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부터 이 영화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블랙아담은 기계가 아니거든요. 기계를 인간처럼 생각하며 휴머니티를 공감하는 것과 비인간적인 인간을 기계처럼 생각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블랙아담이라는 인간에 대한 공감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합니다. 터미네이터가 하스타 라 비스타, 베이비 라는 농담을 던지는 것처럼 자꾸 영화 내에서 썰렁한 농담으로 인간성을 어필하려고 하는데 그 외에는 시종일관 기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합니다. 난 최고다, 난 남의 말 안듣는다, 난 남의 눈치 안본다, 난 악당들을 죽일 것이다... 저같으면 블랙아담을 슈퍼맨의 대척점에서 정말 통제불능의 무기처럼 그리며 인간적인 교류를 최소화했을 것 같습니다. 이 헐리웃 영화를 자국의 프로파간다로 여길 미국인들에게 여봐란듯이 공포영화로 만들면서요. 타국의 비백인 히어로가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걸 다른 주인공들이 통제할 수 없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지 장르적으로든 외재적으로든 흥미로운 질문이 되었을 것 같은데 뭐 그럴려먼 애초에 드웨인 존슨을 섭외하지 않았겠죠. 이것도 일개 관객이 망상으로 늘어놓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샤잠]의 후속편이기도 한 이 영화는 그 반대에 있는 샤잠과도 딱히 어떤 연결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샤잠]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영화의 여러 미덕 중 하나는 이제 포화상태인 히어로 영화 사이에서 가장 근본적인 욕망, 나도 저렇게 히어로가 되고 싶은데 그러면 "아이의 생활에서 그 힘은 어떻게 쓰일까"라는 아이의 욕망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숙한 성인이 히어로로서의 책임감을 깨닫고 다시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히어로의 힘은 얻되 굳이 성장하지는 않는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아이의 시점에서 아이가 가질법한 상실감, 허영심, 유대감 같은 것들을 곱씹어보는 영화라는 점에서 [샤잠]은 정말 괜찮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블랙아담]은 그런 샤잠의 세계관과 대조되는 무언가가 없습니다. 뻔하디 뻔한 유사아버지와 마초주의로 대표되는 지도자의 힘만을 그려내죠. 그래서 저는 [블랙아담]이 [샤잠]보다 훨씬 더 유치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그 한계를 인식해서 세계와 조율해나가는 점에서 [블랙아담]의 성장이란 실패한 인공지능에 보안프로그램 하나를 추가하는 정도에서 그치니까요.


히어로 영화로서 딱히 인상적인 액션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슈퍼맨이 절대적 초월자로 군림하는 디시 유니버스에서 그만한 압도감을 또 던지는 히어로를 묘사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블랙아담]에는 경외심을 품을만한 이해불가의 지점이 너무나 없습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제가 디시 유니버스에 품는 아쉬움은 보다 밝고 명랑한 세계를 그려내는 마블에 비해 훨씬 더 어두운 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는 지점인데 그 부분에서 디시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샤잠]을 좋아하냐면 그 어두움을 극단적으로 치워버리고 솔직해진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블랙아담]은 너무나 평이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샤잠2]가 나오면 극장으로 보러 가시라는 것입니다!! 코메디 영화가 귀한 이 시대에 참 보석같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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