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도 여러분들처럼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감독과 경기를 치르곤 하곤 해요. 예고편만 보고 그 도입부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스토리를 짜보는 거죠.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가서 내 버전이 더 나은 것 같으면 '이봐 봉준호, 네가 더 유명하고 돈도 잘벌지 몰라도 더 똑똑한 건 나야.'라고 자위행위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겠죠.


 파묘도 예고편 시놉시스만 보고 그런 상상을 펴보기에 딱 좋은 소재예요. 웬 비밀스러운 부자에게 고용된 무당들이 조상의 묘를 파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묘자리에 으스스해 보이는 관...그리고 시작되는 저주. 진짜 미칠듯이 재밌을 것 같은 소재죠.



 2.하지만 이 소재로 스토리를 구상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시작점은 흥미롭지만 이 스토리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줄기가 그리 다채롭지 않다는 점을요. 묘를 판 다음에 사고가 터져서 제대로 화장을 못 하게 되고 저주가 시작될 거라는 걸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예고편이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는 흐름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스토리의 문제는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면 그게 재미있는 변화구가 아니라 노잼 변화구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결국 이 영화는 어느정도 뻔한 줄거리로 갈 수밖에 없어요.



 3.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줄거리가 아니라 연출력이 중요해요. 다들 알다시피 귀신이란 건 등장하는 순간부터 뻔해지거든요. 스토리 작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천재를 묘사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스토리 작가는 자신이 본 적 없는 귀신이나 악마나 외계인을 제대로 묘사하는 게 힘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란 건 영화 내내 최대한 안 보여주면서 시간을 끄는 게 중요하죠. 



 4.휴.

 


 5.한데 문제는 저 스토리로는 긴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단 말이죠. 그래서 상영시간을 보고 좀 이상했어요. 저 시놉시스로 저 긴 상영시간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말이죠. 그래서 보러 가니 누구나 생각할 법한 저주 스토리는 의외로 금방 끝나더라고요.


 그리고 2페이즈가 시작되는데 이건 글쎄요. 정말 이래야 했을까? 예상을 빗나간 스토리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스토리보다는 좋은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엔요. 한데 이 영화는 예고편에서 팔아먹은 기대감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려요. 예고편에서 신용카드로 풀할부로 그어버린 기대감은 절반은 갚아야 도리죠. 뻔하더라도, 돈을 내고 보러 온 사람들의 기대감은 일단 갚아야만 하는 거예요. 그것은 창작자 이전에 장사꾼으로서의 의리죠.



 6.페이즈 1의 할배귀신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물리력을 구사했어요. 귀신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한데 중간 보스를 물리치고 나타난 진짜 보스는 한술 더 떠요. 일단 말이 통한다는 시점에서 공포감은 하락. 그리고 실체가 있다는 점에서 또다시 공포감은 저 멀리. 


 원래 귀신 영화가 그렇거든요. 연쇄살인범이나 납치범 같은 놈들은 존재감이 강할수록 공포의 대상이지만 귀신은 반대예요. 존재감이 너무 강해져버리면 공포가 하락한단 말이예요.


 왜냐하면 연쇄살인범이나 납치범과는 달리, 귀신이란 건 레퍼런스로 삼아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모방을 잘하고 확장을 잘 시키는 작가라고 해도 모티브가 없는 걸 확장시키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7.그렇기 때문에 엑소시스트가 위대한 영화인 거죠. 엑소시스트는 악마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무섭고 악마가 나타났을 때도 무섭기 때문에 위대한 영화가 된 건데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랗게 위대하게 될 수가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나 악마는 보여주지 않고 최대한 숨겨야만 하는 거고요. 한데 파묘의 일본 귀신은 마치 진삼국무쌍의 여포 같아요. 등장하는 순간엔 움찔하지만 여포가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건 나도 여포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실제로 최민식도 일본귀신을 상대로 물리적으로 맞다이를 까서 이기고요.


 어쨌든 이 영화가 나쁜 이유는 뭘까요. 영화 자체가 나쁜 것도 있지만 마케팅이 너무 똑똑해요. 영화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 예고편에서 어느 정도는 고백을 해야 장사꾼의 도리인데, 이 영화의 예고편은 사람들에게 돈을 내고 보러 가게 만들거든요. 


 모든 단점을 감춰버리고 오직 기대감만을 갖게 만드는 마스터피스급 예고편이 영화 본편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영화...그것이 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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