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시사회가 끝나고 난 후, 듀나님이 엠바고 묶인 상태로 몇몇 이야기를 하고 났을 때부터 영화를 보기까지 3일 동안 통제할 수 없는 잡담들을 전폐했었습니다. 먼저 트위터를 휴대폰의 홈 화면에서 없애고, 영화 이야기는 일절 올라오지 않는 커뮤니티 하나와 오프라인 기반 커뮤니티 두 개만 가고, 듀게에서는 글의 제목만 읽고, 웹 스트리밍 서비스는 보지 않고, 너무 심심하다 못해 포털 뉴스의 기사만 읽고, 그리고 독서를 더 많이 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제겐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반전이 크게 의미가 있다는 영화나 소설을 볼 때,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거나 몰랐어도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는데 이 정도면 만족스럽더군요.


아래부터는 중요한 내용들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잠깐 영화 소재로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단독영화가 별로 없고 리메이크나 장기 연재 영화만 많이 나와 실망스럽다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반대편에서 마블도 별로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했더니 네, 이번에 원더우먼 나오는 것도 너무 다양하고 알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많이 나와 재미가 없었다, 고 했을 때 이미 저는 그런 분들과는 꽤 다르다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언맨]을 제외하고는 엑스맨 시리즈를 포함에 거의 대부분의 마블 영화를 개봉 시기와 비슷하게 봐왔기에, 시간으로 쌓아올려진 캐릭터 빌딩에 녹아들어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각각의 캐릭터에 애증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요. 그냥 생각없이 보는 것 아니었나? 했지만 [어벤져스 : 시빌 워]에서 의외의 타격을 받고 도대체 말로만 듣던 타노스가 어떻게 나오나 보자, 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Vol. 2]에서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이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단순한 질문이 많은 영화에 던져지는데, 감독들은 싱거운 대답을 하고 맙니다. 인간들이 개미보다 못하게 보이는 세계 최강의 존재가 인간에 반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 말이죠. '가오갤2'와 비슷한 많은 영화들은 그 짧은 러닝타임 내에서 해결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파워 인플레를 겪다보면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저는 한 번쯤은 이런 식의 결말을 내 봐야하지 했기에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보통은 스크린 속의 히어로들과 함께 안심하며 자리를 뜨지만, 이번에는 그 히어로들과 같은 수준의 당혹감, 절망을 맛 보는 것이죠. '다음' 영화에서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 사이의 시간을 준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군요.


마블은 이번에도, (아닐까요, 가오갤 2의 충격이 가시질 않아서 좋은 악당을 잘 만든다고 단언은 못 하겠군요) 끈질기게 악당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노력합니다. 인피니티 워를 보고 나면 과하게 타노스랑 친해진 기분이 들어서, 나중에 어깨동무라도 하고 옆구리라도 찔러야 할 것만 같은, 별로 안 친한 사람과 어려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더군요. (중간 중간 감정에 복받히는 타노스 원 샷은, 약간 술 마시고 취해 뽀뽀하려는 부장님 느낌이 강했습니다만.) 타노스의 멜서스적 사고는 아무리 우주의 강력한 힘이 있더라도 부정하거나 개변할 수 없는 문제로 치부되는 면이 좀 아쉬웠습니다. 지적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이기보단, 우주 공간을 두 배로 늘리는건 어땠는지. 멜서스의 파괴적 예언이 녹색 혁명으로 땜빵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지식 스톤이나 지혜 스톤이 없더군요.


너무 심한 악업들을 계속 해와서 그런지, 타노스의 감정선을 거의 따라갈수는 없었습니다만 몇몇 부분에서는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소울스톤을 얻을 떄 그 원칙 따위는 지키지 않고 생떼를 써서 얻어낼지 알았는데 타노스는 정말 밉게도 그 대가를 치르더군요. 그래서 그 후 두 가지 상황, 스타 로드가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데 영향을 끼치고, 스칼렛 위치에게 널 이해한다는 말이 아주 고깝께 들리진 않았습니다. 마블은 대중 영화에서 [ㅇㅊㅁ]같은 마이너 만화에서나 가능했던 버튼을 눌렀고 그 대가를 온전히 받아내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소코비아의 경우도 그냥 쉽게 넘어가진 않았지요, 다른 많은 피해자들도 꾸준히 영웅들을 끌어내려가고 있었구요.)


앞으로 말이 되든 되지 않든, 이 일을 수습하는 과정을 거칠텐데 그걸 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걷어내버릴지 녹녹치 않은 가시밭길을 느리게 걸어갈지가 궁금하군요. 토니 스타크는 또다시 살아 남았구요. ('토니 괴롭히기'를 그만하라는 말을 코믹북 관련 대화를 할 때 하던데 고통 인플레가 너무 심해지는건 아닌지.)


중간에, 스타 로드와 토르가 자신의 불행사 대결을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마블의 자포자기 개그 같았어요. 우리가 계속 얘들을 이렇게 친구들을 빼앗고 사지로 몰아넣네, 하는. 왜 영웅들은 비극적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관객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까, 장기 연재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한 팔을 내 준 다음에는 다른 쪽 다리를 내주는 식으로 끝없는 자극적 거래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노스만이 승리자인, 아니 타노스도 우리도 그렇게까지 승리했다고는 보기 힘든 영화 잘 봤네요. (은퇴한 타노스가 헛헛한 표정으로 석양을 바라보며 영화를 끝내버릴 떄, 헛헛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ps. 다양한 캐릭터 조합은 좋았습니다. 다만 역시 별 의미없이 캐릭터가 소모되는 떼 전투신은 그냥 과감히 빼는게 어떨지.

ps2. 나오면서 '마블, 독해.. 정말 독한 놈들..' 웅얼거리며 나왔네요. (영화가 끝났을 때도, 쿠키가 그 모양일 때도 읊조리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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