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레 & 어머니 글 6

2019.03.06 16:13

sublime 조회 수:753

그간 격조했습니다.

업무가 바빴고 어머니도 조카들까지 총 3명이 아이를 봐주셔야 해서

글쓰기는 전혀 못하신데다가

결정적으로 글 하나를 좋은 생각에 보냈는데 탈락.

내 그럴 줄 알았다, 너는 괜한 사람 비행기 태우고 그러냐. 하시고는

요즘은 글을 안 쓰시더라구요. ^^

그래도 잘 계십니다.

기회가 되면 글 써보시자고 부추겨도 볼려구요.


들레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답니다(짝짝!)

얼마 전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며 들레에게 물었습니다.


들레는 어디에 여행가고 싶어?
-없어
그럼 뭐 보고 싶은거 없어?
-음..음. 이집트에 프링글스!!


순간 속을 뻔 했어요. ㅎㅎ


즐거운 봄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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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한 모>

                                                   

오늘은 화둘계(둘째 화요일 계모임), 내일은 수둘계(둘째 수요일 계모임).

결혼 전 친구 모임부터 지금 사는 동네 계까지 한 달에 여섯 개의 모임이 있다. 어쩌다 한 두 달 참석하지 못하면 밀린 회비가 목돈 되어 나간다.

젊었을 때는 집집이 돌아가며 국수든 비빔밥이든 상다리가 휘도록 많은 음식을 차려 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정마다 음식 솜씨와 그 집 장맛으로 다양한 맛과 멋을 내는 음식이었다.

그러던 우리가 자녀들을 키워 놓고 한 사람, 두 사람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귀찮다는 이유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식당을 찾게 되었다.

아들 며느리가 와도 많은 식구 밥 해내는 것이 힘들다고 나가서 먹자고 한다이러다 보니 강된장에 매운 땡초를 넣은 뚝배기를 상에 올려놓은 집밥이 그리울 때도 있다.


회비 아껴 해외여행 간다고 요릿집보다 동네 식당에 모일 때가 많다. 어제 먹은 식당 밥을 오늘도 먹기 위해 문을 밀고 들어선다.

 귀에 익은 여자들의 음성이 시끌벅적하다. 긴 상에 둘러앉아 식사가 끝나고 나면 믹스커피 한잔 씩 앞에 두고 앉아 이야기에 끝이 없다.

 마주 앉은 사람끼리 한 팀, 옆에 어깨 부딪힌 사람끼리 한팀, 이 끝에서 저 끝에 앉은 사람끼리 눈이 마주치면 사람들 머리 위로 대각선을 그어 안부 인사가 길게 날아간다.

팀이 많은 만큼 오가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나이 육칠십 대들이 되다 보니 모두가 환자다. 종합병원을 옮겨놓은 듯 검진받을 사람도 많고 처방을 내릴 사람도 많다.

양약과 한방, 민간요법까지 약을 다 외우기도 어려워, 옆 팀에 귀를 기울였더니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했는지 눈물까지 닦아가며 웃어 젖힌다.


총무가 손바닥으로 상을 두 번 친다. 총무도 말 좀 하자! 외친다. 나이가 더 들면 여행도 힘드니까 새해에는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한 번 다녀오자고 한다.

적은 경비로 잘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추천해 보라는 총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팀이 나누어진다.

중국, 일본, 필리핀, 어디로 가자고 건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다녀온 추억에 꽃을 피운다. 총무까지도 무슨 답을 듣겠다는 것은 잊은 지 오래다.

한 친구가 손녀 유치원 다녀올 시간 되어 먼저 가겠다고 일어난다. 그러자 너도나도 모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헤어진다. 여행 안건은 다음 달로 미루어 졌다.

 

늙어 갈수록 친구가 좋다고 하지만 많은 것보다는 마음 맞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꼭 필요한 일도 아닌데 매일 바쁘다.

곗날이라 나가고 운동한다고 뭘 배운다고 나간다. 몸이 바쁘다 보니 마음이 불안하고 늙어가는 몸은 생각에 따르지 못해 늘 피곤하다.

시간 낭비, 돈 낭비, 건강도 낭비가 된다. 나이가 들면 단출한 살림에 말도 줄이고 행동도 느리게 하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뚜렷한 취미 하나 없는 남편에게 오늘도 식탁에 수저 한 모 얹어 놓고 국 데워 냉장고 반찬 내어 식사하라고 말하고 나왔다.

먹고 싶지 않은 식당 밥을 먹기 위해 혼자 두고 나온 것이 미안해 주위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시간을 투자해 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친목계에서 탈퇴를 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친구가 아니고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차려 마주 앉아 밥 친구가 되어 준다.

살아온 날수보다 남아 있는 날이 짧기에 서산에 해가 어둠을 남기기 전에 친목회비 줄인 것은 선한 일에 쓰자고 남편과 약속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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