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으로 애플TV를 구독해야 할 분들이 꽤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매우 좋네요. 넷플릭스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와 비슷한 노선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어요. 미투운동을 매우 직접적으로, 하지만 세련되게 보여줍니다. 정확하게는 폭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죠. 초반에는 미투를 배경으로 한 가벼운 분위기의 오피스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시작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져서 마지막화 까지 텐션을 계속 올려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만큼이나 피해자의 파괴된 내면을 적나라하고 꼼꼼하게 보여주는 점이 이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에요. 피해자의 내면을 상세히 그려내는 점은 '믿을 수 있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꼼꼼한 편이에요.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간접 외상을 겪을 수도 있겠다 싶구요. 그만큼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정적으로 다루어 지는 부분도 없어요,


단순히 피해자의 내면을 다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조직 내 분위기와 다른 구성원의 방관에 의해 벌어지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도 훌륭합니다. 그렇다고 그 방관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는 조직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줘요. 조직내에서 벌어지는 위계적 성폭력과 그 조직 전반의 심층적인 역동을 치밀하게 보여준다는 점은 어지간한 다큐멘터리나 사회심리학적 교보재를 보는 것 같은 디테일이 있어요. 행위는 사악했을 지언정 인간 자체를 악마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의 복잡성도 담아내고 있구요. 사실 관심있게 들여다 본 사람이 아니라면 ‘미투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더라. 저런 나쁜 놈들. 피해자들이 안됐다’ 정도로 넘어가게 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꼭 필요한 영역에 대한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교조적이거나 하지도 않고 투박한 분노에 가득차 있지도 않아요. 슬픔과 연민, 애도가 저변에 흐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이고 유머러스합니다. 분노가 없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순 없었겠지만 그걸 표면에 띄우는 타입은 아니에요. 그 분노가 설득력 있게 전달되려면 촘촘하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작진이 잘 알고 있었겠죠. 거센 미투 운동 시기를 거친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잠재적 방관자로서의 죄책감을 건드리는 면이 있고 거기에 대한 반성과 애도의 기회를 드라마가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방관자든 나약한 인간에 대한 긍정과 연민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접근이 조금은 가해자에게 핑계 거리를 주는 것 같아 불쾌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듯 해요.


주제에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정치 드라마이자 직장 드라마이고 전문직 드라마이며 우정과 사랑, 연대 같은 보편적 정서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다층적인 작품이에요. 딱히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보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었어요. 이게 한국에서 리메이크 되면 꽤 재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시즌1에서 잘 마무리가 되기는 하는데 시즌2에서 이어나갈지 다른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네요.


교육적 의도가 없는 드라마가 아니긴 한데 늘 그렇듯 좀 보는 게 좋은 사람들은 그다지 이런 거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미투도 이제 옛날 일이 되기는 했어요. 요즘은 그게 폭로내지는 저격 같은 방식으로 거의 모든 일에서 보편화 된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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