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을 알게 된 것도 듀게였죠. 책 추천해달라는 글에 압도적으로 여러 명이 추천을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사실, 그러고 나서 이 책 읽었다는 친구에게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추천하지 않았어?'하고 원망했더니 '내가 예전에 강추했던 책이잖아.'하고 어이없어 하더라고요;;)


영화 개봉했을 때 원작의 헵타포드 언어와 물리에 대해 어떤 식으로 형상화할지, 그리고 과거-현재-미래가 교차편집되는 내용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했어요. 극장에서는 못 보고 이제야 봤네요. 원작 팬들은 호불호가 갈린다던데 저는 약간 실망스러운 쪽에 기울었습니다. 언어학 빼고 나머지 부분은 다 빠졌더군요. 물리학 부분은 아예 생략, 그래서 도널리(제러미 레너)는 1/12 밝혀낸 것 빼곤 활약이 없고요. 그리고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계속 깔려있는 원작과는 달리, 딸이 그냥 짧게 흘러가는 이미지로만 나와서 딸과의 교감을 느끼기 어려워요. 원작은 중간중간 유쾌한 부분도 나오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네요. 주인공 루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돈 속에 고뇌하는 모습만 보여줘요. 연기는 좋았지만 좀 평면적으로 느껴지네요. 그리고 루이즈와 도널리가 언제 교감하고 친밀감을 쌓아갔는지 안 나오고 갑자기 덜컥 사귀는 것처럼 나옵니다. 다들 원작을 읽어서 알 거라 생각하고 연출했는지? -.-;;


언어 자체를 다루는 영화라서 여러 언어가 다양하게 등장해서 귀가 호강할 줄 알았는데 거의 영어만 줄창 나와요. 루이즈가 여러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도 설정으로만 존재하고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은 안 보여줍니다. 결정적인 클라이막스에 전쟁을 막기 위해 루이즈가 중국 지도자에게 중국어로 외치는 장면 딱 하나 나오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검색해봤더니 이런 뜻이더라고요.


战争不成就英雄,只会留下孤儿寡母 (전쟁은 영웅을 만들지 않고 단지 고아와 과부만 남긴다)


고작 15글자인데 발음이 엉망입니다. -.-;;;; 이게 최선입니꽈? 확실해요? 를 외치고 싶... 겨우 15글자인데 연습 좀 더 하지!

성조가 완전히 틀려서 샹장군이 저걸 어케 알아들을까 싶더군요.


사실 클라이막스가 영화 전개상 필요해서 그렇지, 루이즈가 전화통화 실패해서 중국이 헵타포드 공격했더라도 헵타포드는 아무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구보다 과학기술이 훨씬 발전했고 지구를 도우려 왔으니 '으이구 쯧쯧 얘들 철이 덜 들었네..'하고 수습해줬을듯. 

 

설정상 루이즈는 중국어도 동시번역이 가능할 정도로 능통한 수준인데, 샹장군과 만났을 때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너무 이상했습니다. 나이많은 중국 장군이 영어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구사하다니요. 샹 장군은 루이즈가 중국어를 잘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영어로 말을 걸죠.... (이유야 물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들어갔으면 에이미 애덤스가 더 큰 곤경에 처했겠죠....)


문득 이영도 단편이 생각납니다.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7&time=20180421232421

외계인과의 언어 소통에 대한 고민은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가 좀 더 세심한 것 같네요.  


드니 빌뇌브 감독의 꼬고 꼬아서 고통을 극대화하는 연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만 봉준호가 시나리오를 뜯어 고치고 연출까지 했다면 어떤 영화가 나왔을까 궁금하긴 합니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아요. 깨알 재미도 많이 숨어 있고 조연들도 살아 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물리 내용도 살려서 영화화 한 번 더 고고씽!


지금부터는 맘에 들었던 점들입니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형상화한 부분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어요. 오징어 먹물... ㅎㅎㅎㅎ 그리고 수많은 글자가 프랙탈처럼 뿌려지는 모습도 장관이었구요. 원작에는 없던, 헵타포드와 우정을 느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난해한 연출인데 그래도 매끈하게 잘 해냈다 싶고요. 


인생 영화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이 느꼈을 감동을 저는 느끼지 못해서 슬프고 아쉽네요. 




p.s 루이즈 집이 정말 좋더군요...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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