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간신배들

2022.09.05 00:58

안유미 조회 수:443


 #.요즘 주식을 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내가 산 종목들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나...궁금해서 유튜브를 검색해 봤는데, 내 생각과 비슷한 유튜브는 계속 듣고 내 생각이랑 다른 유튜브는 처음 몇초만 듣고 꺼버리게 되더라고요. 


 아니 이래서야 내가 싫어하는 극우, 극좌들과 비슷한 거 아닌가? 그야 정치와 투자는 많이 다르긴 해요. 하지만 어쨌든 내가 가진 의견을 강화하게 만드는 의견들만 듣고 내 입맛에 안 맞는 의견들은 꺼버리는 나자신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1.한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의 발명 덕분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고 의견이 나눌 공론장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되었어요. 사람들 개개인은 지금보다는 좀더 다채로운 존재가 될 거라고 여겨졌죠.


 한데 막상 20년이 지나보니, 인터넷은 오히려 개개인들을 더 꽉 막힌 사람들로 만들어놨어요. 이건 좀 신기한 일일 수도 있죠. 별 노력 없이도 상대편의 의견을 들어볼 기회가 많잖아요? 예전에는 자신과 다른 집단의 의견을 듣는 건 고사하고, 물리적으로 근처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으니까요. 이렇게나 열린 사회인데도 오히려 예전보다 사람들은 더 꽉막힌 사람이 된 것 같아요.



 2.아무래도 그래요. 정보를 얻는 채널이 많아졌다는 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얻을 채널도 많아졌다는 뜻이거든요. 많은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할 기회를 택하는 대신에 자신의 생각을 강화할 기회를 택하는 걸 반복하게 돼요.



 3.문제는 이거예요.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고 자신을 안심시켜 주는 의견들만 계속 골라 듣다 보면, 그 생각은 바위처럼 단단해져요. '혹시 내 계산이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같은 일말의 의심은 사라지고 '그래, 상대쪽 놈들이 멍청한 놈들이야!'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리는 상황이 와버리는 거죠.



 4.휴.



 5.아마도 옛날 왕들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한 나라의 왕쯤 되면 배운 것도 많고 통찰력도 있을 테니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신하의 간언따위는 짜증나고 가소로웠을 것 같아요. 어쨌든 왕이라면 이미 웬만한 플랜은 다 짜놓은 상태일테고 약 10~20%정도 드는 불안감은, 예스맨들의 맞장구를 통해 해소하지 않았을까?


 사실 예스맨이나 간신이라고 폄하해도, 왕과 말을 섞을 정도라면 보통 예스맨이 아닐 테니까요. 왕처럼 똑똑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지닌 의심을 풀어주고 덤으로 호감도 얻어낼 수 있는 정도의 언변은 갖췄었을 거예요. 후세의 관점에서 보니까 간신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 당시, 그 순간에는 합리적인 전문가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높죠. 그런 식으로 그런 사람들이 왕 주변을 메우기 시작하면? 왕은 꽉막힌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아무리 똑똑한 왕이었더라도요.



 6.요즘은 유튜브가 그 기능을 대신하는 것 같아요. 간신을 필요로하는 개개인에게 간신이 되어주는 거죠. 


 원래 사람이라는 건 너무나 많은 동의를 얻는 것도, 너무나 많은 반대 의견을 듣는 것도 좋지 않아요. 그리고 애초에 평범한 시민들은 그럴 기회도 없었고요.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한다면 간신을 아주 많이 가질 수도 있고, 하루종일 간신배들의 맞장구를 들을 수도 있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 번쯤은 지하철에서 그런 할아버지들을 봤겠죠. 마치 극우유튜브와 일체화된 것처럼, 계속해서 스피커로 극우유튜브를 들으며 지하철에 앉아있는 노인들을 말이죠. 하루종일 자신이 듣고싶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그런 노인들을.



 7.그렇게 되면 어떤사람들은 너무나 꽉막힌 사람, 너무나 확신에 찬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경제활동이든 정치든 환경운동이든 페미니즘이든 연예인 가십이든 요리든 원예든 말이죠. 차라리 인터넷이 없었으면 좀더 유연했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인터넷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뭐 투자는 괜찮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투자는 자신이 지닌 자본으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경영이라던가 정치 같은 분야는 정말...간신배들을 멀리해야 할 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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