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과 동료압력...

2022.08.20 00:52

안유미 조회 수:458


 1.전에 썼듯이 요즘은 외국 사람들이랑 어울리곤 해요.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뭐 그런 쪽 사람들 말이죠. 그곳에서 나는 미하일이라는 이름을 써먹고 있어요. 한국인 이름이 불릴 때마다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건 좀 그래서, 외국 이름을 하나 정했죠.


 요즘은 한국 여자를 (거의)안 만나요. 외국인 여자가 한국인 여자에 비해 뭐가 낫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한국인 여자들 중에서도 외국인만큼 골격이 길고 가늘면서 얼굴의 생김새가 입체적인 사람도 있긴 하니까요. 한 100명 중 1명정도는요.


 하지만 어디선가 읽은 자료인데,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먼 곳의 이성에게 끌린다고 해요.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인류가 더욱 진화하고 싶어서 개개인에게 내리는 오더 같은 게 아닐까...싶기도 해요. 태생이 다른 곳의 유전자끼리 섞여야 유전자 풀이 좀더 다양해지고 강대해질 거니까요.



 2.뭐 어쨌든 자식을 가지는 얘기는 다음에 하고. 외국인들은 문신을 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몸에 큼직한 문신들이 여러 개씩 있어요. 몸에 큼직한 문신이 한두개밖에 없는 사람은 아직 디자인을 고민중이거나 아직 큰 문신을 할 돈을 못 모았거나 둘 중 하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이건 외국인들의 특징은 아니예요. 요즘 홍대를 돌아다녀 보면 한국인들도 큼직한 문신을 하고 있으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인싸들은 문신을 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지'라고 해야겠죠. 



 3.하여간 외국인들과 친해지니-적어도 그들 생각으로는-그들은 그들의 큼직한 문신을 보여주곤 해요.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은 '이제 네것도 좀 보여줘'예요. 거기서 '문신 안했는데'라고 대답하면 '안했다고? why?! 왜 안했는데?'정도의 대답이 돌아오죠. 마치 문신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듯한 어투로요.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도 깍두기가 아니라 진짜로 이 그룹의 일원이면 문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문신을 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그 그룹에서 제일 예쁘고 여론을 제일 주도하는 녀석들이 큼직한 문신을 하고 있다면? 그 모임에서 끊임없이 문신을 하라는 압력을 받거나 그 모임을 떠나거나...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테니까요. 그 그룹에 매달려서 살아가야 하는 신세라면 결국 문신을 새기는 게 속편하겠죠.



 4.휴.



 5.그래서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예전엔 길거리를 걷다가 큼직한 문신을 한 걸 보면 '쯧쯧...어린 놈들이 비가역적인 결정을 내리고 말았구나.'라고 혀를 찼지만 요즘은 이렇게 생각해요. 저렇게 큰 문신을 한 게 본인의 선택이 아닌, 또래나 그룹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내린 결정이 아닐까...라고 말이죠. 그런 큰 문신을 하는 데에 본인의 선택은 20%정도고 사실은 동료들의 꼬드김이나 압력이 80%를 차지할지도 모르죠.



6.사실 홍대에서 노는 외국인과 한국인을 비교해 보면 한국인 쪽이 좀더 대담한 문신을 하고 있긴 하더라고요. 여기서 '대담하다'라는 건 문신의 디자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문신을 한 부위를 말하는 거예요.


 저렇게 눈에 잘 띄는 곳에 문신을 해도 괜찮을까? 저곳에 저런 문신을 한 이상, 저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은 매우 좁아진다...라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문신. 예전에는 그것을 볼 때마다 혀를 차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요.


 동료들 사이에서 좀더 존재감을 얻기 위해...동료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한 게 아닐까...싶은 추측이 들곤 하거든요. 누가 봐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목적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문신을 보면 말이죠.



 7.그야 나는 문신을 해도 돼요. 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남들에게 사회생활을 시키는 사람에 가깝겠죠. 하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는 문신이 페널티란 말이죠. 설령 내가 부자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남들에게 페널티를 마구 부과하고 다닐만한 사람이라면 문신을 해도 되겠지만 내가 그 수준은 안 되거든요. 내가 지닌 정도의 재력으로는 맘편하게 문신을 할 수 없다 이거죠. 솔직이 천억원이 있어도 문신은 안할 것 같아요. 천억원을 가져도 나를 판단할 수 있는 부자나 유력자들은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rich가 되거나 슈퍼리치의 말석에라도 앉는다면 5천억, 1조짜리 슈퍼리치랑 만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런 부자가 내 문신을 싫어해서 나랑 안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천억원을 가지더라도 문신은 하면 안되는거죠. 



 8.물론 이건 내가 꽤나 오버해서 생각하는 걸수도 있겠죠. '요즘 세상에 문신이 무슨 대수냐'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문신을 하면 미래가 닫혀버리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죠. 위에 쓴 '페널티'라는 건 뭔가 엄청난 제재를 말하는 건 아니예요.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만나려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나에게 큰 기회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건 충분히 손해니까요. 그래서 문신은 안 해요. 


 그러고보니 요즘은 타투라는 표현을 주로 쓰더군요. 문신이라는 표현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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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가 문신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겠죠. 하고 싶지 않으면 이런 글을 쓸 필요 없이 그냥 안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보니, 문신을 하고 싶어지긴 했어요.


 문신 자체에는 관심이 없지만 몸에 문신이 있다는 것...그리고 그것이 좀더 대담한 부위에 있다는 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개 재밌는 사람들이고요.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놈들이 문신을 하고 다녔다면 나도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겠죠. 


 어쨌건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람들이랑 가까워지는 데에는 문신의 효능이 크긴 해요. 아마 내가 어렸을 때였거나 잃을 게 없는 인생이었으면 남들보다 좀더 존재감을 발산하고 싶어서 평범한 곳에는 문신을 안했을 거예요. 얼굴이나 목이나 손에다가 문신을 했겠죠. 아니면 주위의 꼬드김이나 압력에 말려들어서 문신을 새기는 걸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마음으로 문신을 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음...문신을 한 사람(외국인)들을 만나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 써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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