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오늘 오전에 '멜랑콜리아'를 괜찮게 봐서 뭐 하나 더 볼까... 하고 '안티 크라이스트'와 이 영화 중에 고민하다가 비교적 덜 우울한 게 보고 싶어서 봤네요.

그랬더니 영화가 볼륨 1, 2로 나뉘어 있어서 런닝타임 상으로는 영화 세 편을 본 셈이(...)

내친 김에 미루고 미뤄뒀던 '배트맨 vs 수퍼맨'도 세 시간짜리 확장판으로 봐 버릴까 고민하다 일단 뻘글이나 끄적거려 봅니다.



- 감독 이 양반은 정말 미녀를 좋아하네요.

주인공은 물론이고 조연급들이 전원 미인인데다가 딱 한 장면 나오는 '20년간 뒷바라지한 남편을 젊은 여자에게 빼앗기고 찾아와 진상 부리는 애 셋 딸린 동네 아줌마' 까지도 빠짐 없이 꼼꼼하게 다 미인들만.

'클로버필드'를 보면서 "훼이크 다큐 주제에 어떻게 저렇게 나오는 애들이 다 예쁘고 잘 생겼어ㅋㅋㅋ" 라며 킥킥거리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영화를 좀 덜 진지하게 보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 소문대로 베드씬 엄청나게 나오고 연출은 노골적이며 노출도 상당합니다.

감독은 최대한 리얼하고 안 예쁘게 찍었다고 주장하지만 배우가 너무 예뻐서 별로 그런 느낌은(...)

다만 워낙 줄기차게 끝도 없이 나오기도 하고. 또 후반으로 가면 주인공 처지에 어느 정도 몰입이 되다 보니 확실히 야한 느낌보단 참 딱하단 느낌이 강해지긴 하더군요.



- 볼륨 1이 딱 끝나는 순간 '이거 극장에서 본 사람들은 상당히 빡쳤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이렇게 한 번에 찍어서 둘로 나눠 개봉하는 영화들은 관객들을 배려해서 각각 이야기가 일단락되는 느낌은 주기 마련인데 이 영환 자비심이 없더라구요.

그냥 중간에 뚝. 그것도 완전히 클리프 행어로 큰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뚝. ㅋㅋㅋ


그래도 나름 신경 쓴 부분이라면 1과 2의 분위기 전환 정도.

1은 대체로 코미디 영화 보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느낌이 강했는데 2로 가니 유머가 거의 증발해버리고 '어둠속의 댄서'에 버금갈만한 처절한 수난사로... 그래서 2는 보기 피곤했

주인공 '조'와 '셀리그먼'의 관계도 1에선 그냥 말하고 듣는 관계였다면 2에선 시작부터 확실하게 가까워진 느낌을 주고요.



- 감독이 'PC함'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대목들이 종종 있는데. 엔딩까지 보고 나면 그게 영화의 제작 의도였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네요.

'니그로' 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셀리그먼에게 주인공이 "그렇게 쓸 수 있는 언어가 줄어드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라고 정색하고 태클 걸자 어색하게 웃으며 본인도 "니그로"라고 말하는 장면이라든가.

막판에 길게 이어지는 셀리그먼의 매우 PC한 지식인 시각에서의 주인공 인생 비평과 그 후에 벌어지는 사건(...)이라든가.

혹시 이 사람이 '멜랑콜리아' 때 본인이 히틀러 발언으로 극딜 당한 경험 때문에 빡쳐서 이러나... 라는 의심을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거 말고 딱히 감독이 뭘 의도하고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잘 안 오는 영화라서 그래요. 네. 그냥 제가 모르겠단 얘깁니다. ㅋㅋ



- 왜 모르겠냐면... 예를 들어서,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었다... 라고 생각하기엔 '섹스에 대해 이것저것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하나씩 넣어 보았어' 라는 느낌의 에피소드 구성이 거슬립니다.

다수로부터 배제 당하는 소수자 주인공의 비애를 그리고 싶었나? 라고 이해해보려고 하면 또 주인공의 인생 역정이 너무 인위적입니다. (감독 본인도 의식을 해서 아예 극중 인물의 대사로 자학 개그를 넣어놓기도 했지만 이 때부터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어 버려서...;)

게다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여성관'에 입각한 해석은 감독이 확실하게 비웃음거리 취급하며 봉쇄해 버립니다.


결국 그나마 이해 가능한 부분이라면 이 감독이 늘 다루는 '이해 불가능한 여성을 자기 맘대로 재단하며 억압하는 찌질한 남성들'이라는 설정 정도인데... 음...;;

그만해야겠네요. 애초에 전 '도저히 모르겠다!'가 결론이라. ㅋㅋㅋ



- 아무튼 많이 야하고 또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재밌는 영화입니다. 1, 2부 합해서 네 시간 조금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시간 나시면 시도해 보셔도 괜찮을 듯.



- 우마 서먼은 정말 잠깐 나오더군요. 딱 한 장면에만. 근데 그 장면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웃기고 재밌는 장면인데다가 연기도 좋았습니다. 너무 웃겨서 이 장면만 똑 떼어서 사람들 보여 주고 싶단 생각을.



- 나오는 남자들 중 유일하게 안 찌질하고 주인공에게 민폐 안 끼치는 남성 캐릭터가 또 작품 속 유일한 '진짜 악당' 이었다는 데서 감독의 굳건한 남성관을 느꼈습니다(...)



- 중간에 조와 다른 캐릭터 하나가 젊은 배우에서 나이 든 배우로 건너 뛰는 장면이 있는데. 조야 주인공이라 처음부터 두 배우가 교차해서 나오니 그러려니 했지만 다른 캐릭터는 갑자기 배우가 바뀐 데다가 과거와 현재가 너무 안 닮아서 잠시 혹시 동명이인데 주인공이 착각을 한 건가... 라는 오해를 했습니다. -_-;; 그래도 젊은 조와 현재의 조는 꽤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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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하나도 안 닮아 보이지만 영화를 보면 그래도 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ㅋㅋ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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