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8 03:14
- 2021. 96분. 결말이랄 게 없는 이야기라 뭐가 스포일러인지도 애매하지만 중요한 디테일에 대해선 언급을 말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닌데요. 콜린 패럴은 '킬러들의 도시'가 짱이었는데요." 라고 저스틴 창씨에게 말씀드리고 싶구요. ㅋㅋ 영화를 삐딱하게 보고 나니 가운데 그어진 가로선이 몹시 거슬립니다?)
- 대충 미래입니다. 백인 아빠, 흑인 엄마, 중국계 어린 딸과 중국인 형상의 로봇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이에요. 다만 여기선 로봇을 로봇이 아니라 '테크노'라고 부른다네요. 그 중에서도 우리의 로봇 '양'은 '형제자매'라는 회사에서 만들어 파는 가족 대체용 로봇이며 동시에 '문화적 뿌리 전수'라는 심오한 기능을 하는 로봇입니다. 뭐 대충 중국계 아이를 입양한 가정에 들어가서 입양아의 오빠 내지는 형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란 얘깁니다.
암튼 그 '양'이 어느 날 고장이 나요. 고치러 가 보지만 이게 정품이 아니어서 정식 서비스도 힘들고, 해보려 해도 돈도 많이 들고 해서 결국 사설 업체를 헤매게 되구요. 그러다 드디어 만난 쓸만한 사설업체 사장이 이상한 얘길 합니다. '양'의 내부에 대기업의 음모!! 고객들의 사생활 데이터를 저장해 놓은 스파이웨어 같은 게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가장 콜린 패럴 씨는 그 칩을 들고 집에 돌아와 '양'의 기억들을 훑어봅니다. 이 놈이 그동안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면 살리기도 싫어질 테니까 마지막 결정에 참고하려구요. 이 '기억 훑기'가 영화 내용의 거의 전부에요. 과연 우리의 '양'은 어떤 녀석이었을까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길게 나오지? 싶었던 도입부의 댄스 배틀. ㅋㅋㅋ 이미 '저스트 댄스'에 거의 비슷한 컨텐츠가 있죠.)
- 일단 이 영화엔 제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요소가 그야말로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나온다는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 부부는 백인 & 흑인입니다. 근데 이놈에 집구석은 완전 오리엔탈 뽕이 가득 차 있어요. 집에서 편하게 입는 가운 같은 것도 일본식인지 중국식인지 모를 뭐 그런 식의 디자인이구요. 남편은 다도에 완전 빠져서 인생을 바치려는 기세로 파고들며 무슨 허랑방탕한 녹차 관련 개똥 철학 같은 걸 로봇에게 떠들어대는 양반이고. 또 밖에서 식사할 때는 일본 식당에 가서 라멘을 먹네요. 뭐 아내도 만만치 않아요. 남편이 라멘 먹으면서 화상 통화를 할 때 아내는 집에서 자기가 라멘을 끓여 먹거든요. ㅋㅋ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입양한 딸래미가 중국계라서 저러는 걸까 아님 저런 사람들이라서 일부러 중국계를 입양한 걸까. 당연히 영화에 그 답은 안 나옵니다만, 전 100% 후자일 거라고 믿습니다. 인간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가장 삐딱해질 수 있는 시간, 월요일 새벽에 보고 적는 글이니 양해를. ㅋㅋㅋ
(정통 일본식 라멘이라니. 열심히 사진 찍어 올리면 루리웹 베스트 게시판으로 갈 수 있습니다 패럴씨!!!)
- 그래서 뭐냐...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제가 멋대로 느낀 바로는 하나의 이야기로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최첨단 VR 머신(은 제작비 관계로 걍 선글라스)으로 추억 여행 중인 장면인 것입니다.)
1. 인간보다 인간다운 로봇님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남겨진 가족(?)들이 떠난 자의 비밀도 알게 되고 소중함도 깨닫고 뭐 그러는 훈훈한 멜로드라마죠. 동시에 '인간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라든가, '로봇과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철 지나게 폼 나는 주제에 대해 상념에 잠겨볼 수도 있겠고. 혹은 그냥 이런 이야기에 곁들여지는 갬성 터지는 장면(짧게 짧게 삽입되는 풍경화, 정물화스런 장면들과 애플 광고 모델들처럼 행복하게 웃는 가족의 모습 같은 것)들과 음악들을 즐기며 '아아 별 이야기는 없지만 영상미에 감복되었다' 같은 소감을 남길 수도 있겠구요.
...어쩌다보니 뭔가 비꼬는 투로 적어 버렸네요. ㅋㅋㅋ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1차적으로는 이런 스토리와 메시지를 지닌 따스한 영화이고 다 보고 나서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감동을 받는 것도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게 내내 예쁜 풍경과 갬성 터지는 음악을 깔아둘 이유가 없잖아요. 뭐 그렇구요.
(노오예.)
2. 노예와 '착한 주인' 이야깁니다. 사실 이건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의 기억이 풀개방(...)된 부분까지 얘길 해야 설명이 쉬운데요. 그건 나름대로 스포일러 성격이 좀 있는 부분이라 패스하고. 암튼 그렇습니다. 되게 뻔한 비유잖아요? 로봇=노예. 인간=노예주라는 거요.
그리고 이야기도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어요. 주인공이 양이 소중한 가족이라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하는 이유는 사실 그냥 양이 참 유용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에요. 새 거 살 돈도 없고 실상은 옆집에 사는 복제 인간 자식들도 보기 싫어하는 걸 평소에 다 티 내서 그 집 부모들도 알게 할 정도로 무신경한 인간인데요. 복제 '인간'을 그렇게 무시하는데 100% 기계 덩어리인 로봇을 진정으로 존중할 리가 있겠습니까.
(밑바닥 인생 마음은 밑바닥 인생이 알아주는 거죠.)
양의 기억들을 보면서 감동하고 눈물짓고 하는 훈훈한 전개도 그렇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양의 기억들은 정말 짧은 토막들로 되어 있어요. 정말 너무 짧아서 관객들은 그걸 보면서 '어쩔?'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죠. 그런데 우리의 상냥한 주인공들이 그 짧은 토막을 보면서 '자기들 버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 때문에 얘들이 감동하고 울고 그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이 양반들은 다 자뻑(...)으로 쑈를 하는 것 뿐인 거죠. 정작 양은 시작 부분에 이미 고장나버려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본인 입장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구요. 이 양반들은 끝까지 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말 결정적인 게 결말 직전에 부부가 나누는 '박물관' 관련 대화죠. 전 이 부분에서 아니 이 놈들이 미쳤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
- 개인적으론 후자의 이야기가 진짜 하고픈 얘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양의 눈에 비친 풍경 = 양의 기억)
이 영화의 특징 중에 하나가 화면비에 의미를 담아서 영화 중간에 쉴 새 없이 비율을 바꾼다는 건데요. 쉽게 말해 일반적인 와이드 티비(or 모니터) 화면이 꽉차면 '양'의 기억이고 레터박스가 생기면 콜린 패럴의 기억이에요. 그리고 이 영화는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 같은 대사를 치는 같은 상황을 두 가지 버전으로 바꿔가며 아주 짧게 반복해서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양'의 기억은 당연히도 그냥 양의 시점에서 보이잖아요. 그래서 1인칭으로 보여지고 또 느낌이 많이 건조합니다. 반면에 그걸 본 콜린 패럴이 재구성하는 기억들은 참으로 따스하고 화기애애하고 난리가 나는 가운데... 3인칭으로 보입니다. 자기 기억 속에 자기가 웃고 울고 하는 모습이 다 보여요. ㅋㅋㅋ 결국 주인공의 추억들은 다 해석과 왜곡이 잔뜩 들어간 장면이란 얘기죠.
(주인님 입장에서의 알흠답고 훈훈한 3인칭 기억.)
뭐 여기까지만 두고 보면 그저 이소라 노래 가사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같은 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쯤에서 문득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맘에 안 들었던, 이 글 첫머리에 적었던 부분이 떠오르더라구요. 아무리 봐도 이 양반들 좀 별로거든요. 일단 콜린 패럴은 딸래미 입양 한참 전부터 다도에 미쳤다는 설정이니 딸 때문에 동양 문화에 관심 갖는 건 아닌 게 100% 같구요. 또 딸을 위한다면 좀 중국식으로 통일을 하든가, 굳이 한중일 3국 문화를 짬뽕으로 해서 폼을 잡고 있는 걸 보면 오리엔탈리즘 뽕에 취한 양반들이 맞는 것 같고. (한국은 영화 도입부에 '고추장 소스' 한 마디 나옵니다 ㅋㅋ) 그러니까 뭐랄까, 의도는 선량하지만 뭔가 되게 얄팍한 사람인 겁니다. 그러니까 로봇이 남긴 영상 몇 편 보고 혼자 갬성 터져서 '양은 백인 인간이 되고 싶어했을까?' 같은 의문이나 품으며 깊은 한숨을 쉬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다도에는 '삶'이란 의미가 있지...)
여기서 내친 김에 한 술 더 뜨자면 주인공 부부는 결국 자기네 어린 딸도 이해하지 못하고 살거든요. 보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됩니다. 딸도 자길 가장 잘 이해해주는 게 양이라 생각해서 더 집착하구요. 심지어 중간에 언뜻언뜻 비치는 모습을 보면 부부끼리도 그렇게 솔직히 소통하고 서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같구요. 그런데 하물며 사설 업체에서 산 '리퍼급 중고' 가전 제품의 머릿 속을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이해하려는 마음이나 들겠습니까. 그냥 본인 편할대로 생각하고 그걸로 믿는 거죠.
그리고... 흠. 아직 할 얘기가 조금 남았지만 거기까지 가면 앞서 말했듯 스포일러 영역을 건드려야 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ㅋㅋㅋ
(솔리드가 부릅니다. 끼리~ 끼리끼리~)
- 저답지 않게 거창한 이야기를 잔뜩 떠들어 버려서 쪽팔리는 마음에 이 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즐기든 상관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다운 로봇을 등장 시켜서 인간의 기억, 추억이라는 것.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따스하고 감성 터지는 SF 영화라고 생각하고 즐겨도 아무 문제 없구요. 흑백이 (상대적으로)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이해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타자화 되고 있는 동양인들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봐도 나름 꽤 들어 맞구요.
개인적으론 전자라고 생각하기엔 좀 거슬리는 떡밥들이 영화 곳곳에 보이고, 또 제가 워낙 '한중일 짬뽕 암튼 동양풍' 이미지들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렇게 삐딱하게 봐 버렸습니다만. 뭐 이렇게 보는 것도 나름 재미는 있었어요. 하물며 감독이 '파친코'를 만든 한국계 감독이라고 하니까요.
기본적으로 완성도는 괜찮고, 또 지루하지도 않으며 참 보기 좋고 듣기 좋게, 예쁘게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무려 '왓챠 익스클루시브' 컨텐츠이니 추가금 안 들이고 보려면 왓챠 밖에 없지만 구글, 네이버, U+ 모바일 등지에서 유료로 보실 수도 있어요.
끝입니다.
+ 그래서 결국 이 영화의 결론은 뭐냐, 함부로 사설 업체에서 파는 '리퍼급 중고' 같은 거 사지 말라는 겁니다. 정품을 쓰라구요. ㅋㅋㅋ
...근데 제가 딱 그런 제품으로 핸드폰을 사서 쓰고 있는데요. 흑.
++ '지랄발광 16세'의 베프님이 나오셔서 반가웠습니다. 뭐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요. 그래도 내용상 중요한 역할이었죠.
+++ 근데 좀 웃기네요. 결국 중국계 입양아 & 중국계로 설정된 로봇이 나오는 이야긴데 딸 역할 배우는 인도네시아계, 로봇 역할 배우는 한국계 배우에요. 감독도 한국계. 하하(...)
2022.08.08 07:08
2022.08.08 09:49
아예 한국인은 아니어도 한국계로 미국에서 사는 감독이 그런 의미 없이 이런 떡밥들을 넣어뒀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군요. ㅋㅋ
근데 그게 미국 주류의 착한 관객(?)들에겐 보이지 않는 코드였나 봐요. 본인이 제대로 짚었다 싶어 감독이 뿌듯했겠습니다? 하하.
2022.08.08 11:04
2022.08.08 10:07
방학이...끝났습니까?
이 영화는 아직 안 보고 '콜럼버스'는 봐서 풍경화, 정물화 같다는 영상 느낌은 다가옵니다.
그런데 후자의 해석에서 인물들의 얇팍함이나 피상적인 동양이해, 타자화가 모두 동양인인 감독이 지적하고 싶은 의도라고 본다면 어떤 부분에 삐딱함이 생기셨을까요?
2022.08.08 10:37
방학은 아직입니다! 그러니 글이 새벽 세 시에 올라가는 것이지요. 하하;
저는 보면서 저런 생각 하고 있었는데 다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 후기를 찾아보니 거의 다 순수하게 감동받았다는 얘기들이길래 제가 삐뚤어졌구나... 했죠. ㅋㅋ 이거 틀 때, 그리고 글 적을 때 되게 피곤하기도 했거든요.
2022.08.08 11:13
'콜럼버스'를 보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저는 그런 지점이 별로 안 느껴져서 여쭤 보았습니다. 영화가 조금 분위기를 많이 잡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가 : 아래 댓글을 보니 듀게 분들도 많이 좋아하시네요. 저는 코드가 안 맞는 느낌이라 썼는데 막 얘기한 거 아닌가 걱정입니다.)
2022.08.08 15:29
각자 취향대로 보는 거죠 왜 그런 걸 걱정하십니까. ㅋㅋ 이거 스트리밍하는 왓챠 사이트에 다른 사람들이 남긴 소감을 보면 저는 정말 삐딱한 구제불능 나쁜 놈입니다! ㅋㅋㅋㅋ
2022.08.08 11:04
감독의 의도가 있었다고는 해도 오리엔탈리즘 뽕빨물 같은 설정이 한국인 관객 입장에서 몹시 거슬리기는 해요. 그게 완전히 의도된 거슬림만은 아닐 거라고 보는 게 감독의 '코고나다'라는 예명이나 작품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일본 문화적 영향력처럼 감독부터가 동북아시아 짬뽕적 정체성이 있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은 합니다. h마트에서 울다 작가인 미쉘 자우너도 활동하는 밴드 이름이 재패니즈블랙퍼스트거든요. 물론 저자는 한국계일 뿐 한국인은 아닙니다만 h마트에서 울다에 보면 그런 대목이 나와요. 성장기에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 없어서 방황할 때 아시아계 여성 가수들을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사실 그렇죠. 백인, 그 다음으로 흑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인종적 문화적 소수자끼리 차이보다는 친밀감을 더 느끼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미국의 한국계들이 느끼는 세계와 한국인들이 느끼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은 해요.
2022.08.08 11:09
2022.08.08 12:02
특히 이민n세대의 경우는 윗세대의 민족주의(특히 옆나라들에 대한)에 대한 거부감도 인종적 정체감을 소위 민족보다 우선시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2022.08.08 15:32
하긴 그렇군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인데 듣고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취급은 다 비슷한 (구분 조차 잘 안 되는) 미국 내 동양계 사람들인데 그걸 그렇게 엄격히 분리할만한 동기가 별로 없겠네요. 말씀대로 한국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전혀 다를 듯. 말씀대로 '코고나다'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을 때 전 당연히 일본계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ㅋㅋ
2022.08.08 11:20
엌 정말 많이 삐딱한 인상을 남긴 것 같군요. 보신 시간대도 그렇다지만 아무래도 작품 자체의 설정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매우 감명깊게 본 편이라 안타깝네요 ㅠㅠ
감독이 한국계 혈통이긴 하지만 그냥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란 케이스고 무엇보다 예술적으로 오지 야스지로 감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해요. 코고나다라는 일본식 예명도 그런 맥락에서 지었을테고 저도 이 작품에서 그런 짬뽕(..)스러운 설정에 아주 의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파친코라는 작품에서 보여줬던 것을 상기해보면 아무리 미국에서 자랐어도 왜곡된 오리엔탈리즘 같은 것에 빠졌을 사람은 아니라고 제멋대로 추측이지만 생각을 했었는데 위에 Sonny님이 언급하신 씨네21 인터뷰를 보고 의문이 풀렸습니다.
동양인을 국적 상관없이 다 한 세트로 보는 서양/미국인들의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보겠다는 나름의 좋은 의도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정작 그쪽 관객들은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고 넘어가버렸고 배티님 포함해서 동양계 관객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성을 자초한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도 양과 주인공 가족의 관계는 정말 아주 시니컬하게 양은 아무런 감정없이 일하는 노예였을 뿐인데 가족들이 지멋대로 좋게만 받아들이는 아이러니로 표현할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해요. 일단 이 감독이 영화 데뷔작 콜럼버스나 파친코를 봐도 현실에 상처 받더라도 서로 위로해주며 앞으로 나아가자는 얘기였지 냉소의 메시지를 날리는 그런 타입의 작가는 아닌지라 ㅎㅎ 에이다가 나중에 미카에게 "양은 너를 정말로 아꼈어."라고 말해주듯이 분명 진심(?)은 있었다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양의 주인공 부부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이 함정
저는 전작 콜럼버스를 정말 좋게 봤고 정갈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와 눈이 호강하는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과 다른 종류의 훌륭한 비주얼 등등 앞으로 행보를 계속 기대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감독이고 콜럼버스 살짝 추천드립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한국계이고(존 조) 한국어 조금 나오는 것 빼면 오리엔탈리즘에서 오해할만한 설정은 없고 헤일리 루 리차드슨이 훨씬 높은 비중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23 아이덴티티, 지랄발광 17세에서도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업계에서 연기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거든요.
2022.08.08 11:28
저도 콜롬버스를 정말 좋게 봐서 애프터양도 챙겨봤던 건데 두번째 작품은 절반 정도는 제 취향에서 어긋나 있었긴 해요(좋은 부분도 많았지만). 아마 근미래적 설정으로 지금의 문제를 집어넣어서 살피는 SF적 내러티브에 제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인 것 같기는 합니다.
콜롬버스는 굳이 한국계 설정을 집어넣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가 되는데 거기에 뜬금없이 존 조를 집어넣었던 부분이 더 좋았던 것 같긴 해요. 그 역할을 평범한 백인 남성이 했더라면 그런 깔끔한 아웃핏을 보여주진 못했겠지요! 대충 후줄근한 체크셔츠에 카고 반바지 같은 거 입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존 조의 단정한 느낌이 영화의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2022.08.08 11:52
저는 존 조가 카우보이 비밥에서 스파이크로 캐스팅 된 데에는 콜럼버스 탓이 크지 않을까 뇌내망상하고 있어요. ㅎㅎ 정말 잘 캐스팅 되었지요.
2022.08.08 15:39
아. 근데 제 불쾌감은 영화에 대한 게 아니라 주인공 부부의 범아시아 대통합(...) 스타일에 대한 거였어요. 그게 '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과 중첩되면서 뭔가 풍자와 비판의 대상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영화를 본 거죠. ㅋㅋ 왜 미국 내 동양인들 인터뷰 같은 거 보면 그런 얘기들 자주 하잖아요. 선의를 갖고 대해주는 백인/흑인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내비치는 차별 의식이나 몰이해 때문에 상처 받을 때가 많다고. 주인공 부부들을 그런 예로 생각하면서 본 거죠 저는.
맞아요 양의 입장에선 분명히 선의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복제 인간, 딸과의 관계도 그렇고 특히 마지막에 풀리는 봉인된 기억의 내용을 보면 양이 단순히 프로그래밍 된대로 움직이는 기계를 넘어서 인간의 감정 같은 걸 이해하게 됐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근데 마지막에 주인공 부부의 눈물은 끝까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과연 그게 정말로 이해를 해서 흘린 건지. 아님 끝까지 그냥 본인들 입장에서 감성이 터진 건지... 하하. 삐딱합니다!!!
'콜롬버스'라고 하니 뭔가 1492라든가 반젤리스라든가... (쿨럭) 하는 생각만 했는데 그런 영화가 또 있군요. ㅋㅋ 네 체크해두겠습니다!!
2022.08.08 16:21
하긴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흑백부부와 동양인 자녀/안드로이드 구성은 현재 추구되고 있는 인종 다양성을 미래 SF식으로 이쯤되면 이런 구성도 꽤나 흔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한 것 같아요 ㅋ
마지막 눈물은 본인들이 그동안 어느정도 애정은 줘왔지만 비싸고 살아있는 시리 정도로만 선을 그어왔던 양이 생각보다 자신들에게 아들같은 존재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공감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좋게 봐서인지 그냥 좋게 받아들이는거겠죠 ㅎ 콜럼버스는 회원 리뷰에 Q님 글도 올라와있으니 참고하시고 감상하실지 결정해도 될 것 같아요.
2022.08.08 11:58
저도 싫어하는 그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모양이군요. 일단 시놉에서도 전 싸한 느낌이 있긴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콜럼버스를 워낙 좋게 보아서 감독의 악의? 같은 건 없고 그냥 이민n세대에서 자주 보이는 둥글둥글함 혹은 나이브함 정도가 원인이 아닐까 짐작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게 짜증나는 때가 있기는 하지요. 특히 삐딱한 월요일 새벽같은 시간에는요 ㅎㅎ 저도 막상 보면 더 삐딱하게 감상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되도록 금요일쯤에 보도록 해야겠어요 ㅎㅎ
2022.08.08 15:40
인간이 가장 관대해질 수 있는 시간의 감상 소감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 사실 어지간하면 다들 좋게 보실 것 같긴 해요. 실제로 왓챠에 남겨진 소감들도, 검색해서 찾아 본 소감들도 다 호의적인데 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