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아저씨랑 이야기하기.

2022.09.07 13:06

가봄 조회 수:673

중학교 때, 지금처럼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된 시기였을 거에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걸어가는데 저 멀리 벤치에 어떤 아저씨 혼자 앉아있었어요.

그 아저씨 옆을 지나갈 때 쯤.  

"저기요. 잠깐만요" 

단정하고 공손한 목소리로 절 불렀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정장이 좀 흐트려져 있고 눈의 촛점도 잘 안맞는게 술을 많이 먹은 것 같았어요. 

착한 사람이 술을 엄청 많이 먹은 느낌. 

"제가 정말 궁금한게 하나 있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아저씨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악의는 없었지만 술을 먹은게 분명하고 상황이 불편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뭘 물어보려고.

불편한 침묵이 땅에 닿을 때 쯤 아저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별로인가요?" 

"네?" 

무슨 말인가 했어요. 아저씨는 가만히 날 쳐다보며 제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 아저씨는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거의 울음이 터지기 직전에 다시 정확하게 물어봤죠. 

"제.가. 별로에요?" 

"아.. 아니요. 별로 아닌데요" 

저는 사실대로 얘기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그냥 평범했거든요. 

"네... 미안해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미안해요. 학생" 

"네. 안녕히 계세요" 


오늘처럼 아주 쾌청하고 화려한 날씨였어요. 

스스로 날씨랑 어울리지 않은 사람일까봐 불안해지는 그런 날씨.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54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8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408
121050 내일(9월24일 토요일) 오후에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있어요 [3] 일희일비 2022.09.23 253
121049 미국 힙합은 왜 그렇게 됐을까 catgotmy 2022.09.23 485
121048 프레임드 #196 [4] Lunagazer 2022.09.23 154
121047 [넷플릭스] 제목 값하는 특이한 재미의 ‘오드 택시’ [4] 쏘맥 2022.09.22 460
121046 [왓챠바낭] 와 이걸 아직도 안 봤냐 시리즈(?) '은행나무 침대' 잡담입니다 [14] 로이배티 2022.09.22 993
121045 대학축제 등장한 '음란물급' 메뉴판…"성희롱 당하는 기분" [5] 왜냐하면 2022.09.22 858
121044 다 느껴지는건 같겠죠 어떤 길에서도 가끔영화 2022.09.22 266
121043 아이유 콘서트 후기 [8] 칼리토 2022.09.22 789
121042 절정에서 절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절정으로 가끔영화 2022.09.22 282
121041 관심없어 뭔말이야 하다 굥이 뭔가 알았습니다 [3] 가끔영화 2022.09.22 631
121040 넷플릭스 '블랙 크랩' 봤어요. [8] thoma 2022.09.22 434
121039 LG 롤러블폰 [6] Lunagazer 2022.09.22 408
121038 [넷플릭스바낭] 다크 사이드의 멜로 버전 토이 스토리, '로스트 올리'를 봤어요 [10] 로이배티 2022.09.22 365
121037 프레임드 #195 [8] Lunagazer 2022.09.22 119
121036 스치듯 만난 그와의 48초 [22] Lunagazer 2022.09.22 875
121035 연인 (2004) catgotmy 2022.09.22 206
121034 하... 이런 좋은 세계를 그냥 흘려 보내고 있었다니 - 케이팝 [1] 스누피커피 2022.09.21 597
121033 프레임드 #194 [4] Lunagazer 2022.09.21 148
121032 손가락 통증은 어떤 병원을 가야할까요? [9] 산호초2010 2022.09.21 843
121031 우울한 전조와 국가의 소멸 [2] 칼리토 2022.09.21 72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