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3 21:07
지난 주 금요일 제가 찍은 해질 무렵의 사진이 (반수동 카메라의 auto 모드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멋지게 나와서 요 며칠간 의욕에 불타 해질 무렵의 사진을 몇 번 더 시도해 봤는데요.
사진은 제대로 안 찍혔지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요. 해가 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구름이라는 걸요.
해는 언제나 똑같이 빛을 내고 있는데 그 주변을 분홍빛으로 만들거나 보랏빛으로 만들거나 황금빛으로 만드는 건
구름의 작용인 것 같아요. 구름이 어떤 위치에서 태양의 빛을 어떻게 흡수 혹은 반사하고 얼마나 통과시키느냐에 따라
태양 주변의 하늘의 색깔이 달라지고 그게 해질녘의 정취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해님은 사실 매일 매일 변함없는 모습인데 온갖 기기묘묘한 재주와 조화를 부리는 건 구름이죠.
저는 해만 너무 선명하게 나온 일출 사진이나 일몰 사진을 보면 조금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별로 매력을 못 느꼈는데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아요. 제가 끌렸던 해질녘의 환상적인 모습과 색깔을 만들어낸 예술가는 구름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구름 없이 해만 찍을 때는 해질녘 하늘의 그 섬세하고 복잡미묘한 아름다움이 제대로 담길 수가 없다는 것을...
그런데 아름답다고 칭송되는 건 언제나 해님이고 해질녘 풍경의 주역은 언제나 해님 차지...
수천 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고를 무대 뒤에서 끊임없이 해온 구름님에게 미안한 마음에
해님은 너무 거저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해님도 구름님의 노동력을
공짜로 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똑같은 빛을 내며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가 어디 쉬운가요?
구름은 심심하면 이리 저리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실려갔다가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고
떼지어 다니다가 비가 되어 땅에 뚝 떨어져 보기도 하고... 신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해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동선으로 똑같은 일만 되풀이 하고 계시죠.
한번도 일탈하지 않고 (일탈하면 우주에 엄청난 일이 생기겠죠. ^^) 언제나 밝은 빛을 내며 묵묵히 일하고 계시는...
그렇게 보면 해님이 더 위대한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 해님과 구름님 중 진짜 주역은 누구인가,
누가 더 위대하고 누가 거저 먹는가를 따지기는 좀 힘들어지고...
결국 해질녘의 아름다움은 수천 년 동안 변함 없이 할 일을 하고 계시는 근면성실한 해님과 그 해님을 둘러싸고
매일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구름님이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군요, 라고 쓰려는 찰나
다시 생각하니 구름의 모습을 이리저리 바꾸는 건 바람이 아닌가요? 진정한 숨은 예술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모습조차 투명하게 감추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이런 저런 모양으로 구름을 빚어내는 무욕의 예술가는 바람님이 아닌가요?
오직 다른 것의 모습을 변형시킴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서늘하고 신비한 존재,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그대는 바람 바람 바람...
앗,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 보니 수천 년 동안 묵묵히 일을 하고 계시는 건 해님이 아니라 지구!!!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돌기 때문에 우리는 해가 지는 풍경을 볼 수 있죠.
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요. 매일 매일 쎄빠지게 세상을 돌리면서도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던 억울한 노동자 지구님!!!
그렇지만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거리에서 혼자 고독을 씹으며 수천 년 동안 빛을 쏴대고 계시는 해님의 일편단심을
어찌 가벼이 볼 수 있겠어요. 그럼 결국 해질녘의 풍경은 해님, 구름님, 바람님, 지구님의 합작품인가요??
오늘 제 상상력은 여기까지... ^^
(또 다른 숨은 공로자가 있을까요? 혹시 제 글에 과학적 허점이 있다면 날카롭게 지적해 주세요. ^^)
P.S.: 글을 올리려는 순간 [바낭]이라는 꼭지를 붙이고 싶은 충동이 강력하게 일었지만 진정한 100% 바낭인은
결코 [바낭]이라는 꼭지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낭]을 붙이지 않은 다른 글은 바낭이 아니라는 암묵적 주장이므로... ^^
이상, 바낭글의 활성화를 위해 [바낭]을 사용하지 않는 진정한 바낭인 underground였습니다.
2017.06.13 22:05
2017.06.13 22:30
2017.06.13 22:54
멋있는 해질녁 장면, 그런데 이게 아침 일찍 출소하는건지도.
2017.06.13 23:40
구름 님께 1승을 안겨주신 가끔영화 님께 구름에 관한 시나 노래를 한 편 띄워드리고 싶었으나
오늘은 검색의 신께서 저를 외면하시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걸 하나도 찾지 못하다가 구름 아니라
바람에 관한 시를 한 편 구했어요.
푸른나무 님 오랜만이에요!!! 하늘의 색깔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네요.
바람의 노래
오세영
바람 소리였던가.
돌아보면
길섶의 동자꽃 하나,
물소리였던가.
돌아보면
여울가 조약돌 하나,
들리는 건 분명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는 네가 또 아무데나 있는
가을 산 해질녘은
울고 싶어라.
내 귀에 짚이는 건 네 목소린데
돌아보면 세상은
갈바람 소리.
갈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
2017.06.14 02:41
앗, 생각해 보니 하늘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줘서 해질녘의 풍경을 두 배로 확대시켜주는
바다님이 계시는군요. 수천 년 동안 뜨거운 빛을 내뿜고 있는 해님과 수천 년동안 온몸을
굴리고 있는 지구님 못지 않게 바다님도 수천 년 동안 뭔가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었나 봐요. ^^
해변에서 부르는 파도의 노래
한하운
바다!
억겁(億劫)을 두고
오늘도 갈매기와 더불어 늙지 않는 너의 청춘,
말 못할 가슴속 신음 같은
파도 소리
한시도 쉴 새 없이 처밀고 처가는
해식사(海蝕史).
바다의 꿈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인가
영겁을 두고 신념의 투쟁인가
바다는 완성한다!
욕망이 침묵하는 그 속에서
황혼이 깃들어
저녁 노을의 빛·빛·빛
변화가 파도에 번질거린다.
2017.06.14 10:44
2017.06.14 12:27
여름에는 뭉게구름도 예쁘죠. 낮의 열기가 조금 남아 있는 밤바람도 좋고요. ^^
Raul Malo - Summer Wind
2017.06.14 18:34
2017.06.14 20:39
조금 전에 발견한 노래 한 곡~ 여름밤엔 창문을 열어야죠. ^^
Harry Nilsson - Open Your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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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노래...
Harry Nilsson - Caroline
며칠전 어디서 본거 같은데 지구는 평평한데 지금까지 우리는 속고 있었다고,이거 아니지 않나요.
실버라이닝도 햇빛이 있어 그렇치만 더 중요한건 우선 구름이 있어야죠 그래서 구름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