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작입니다. 1시간 56분이고 장르는 연쇄 살인 스릴러. 엄청 뻔한 얘기지만 그래도 결말 스포일러는 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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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힌대로, '하드고어' 스릴러를 표방했던 작품입니다. 당대 톱스타 둘 캐스팅을 생각하면 참 대담한 기획이었네요.)



 - 서울 시내에서 토막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상대는 모두 전문직 고소득 남자들이고 머리와 몸통, 팔 다리가 모두 분해된 채로 까만 비닐 봉다리에 부분부분 담겨 발견이 돼요. 요 사건을 맡게 된 우리 한석규 형사님께선 최근에 범죄자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내사 중입니다. 아마도 진짜로 받은 것 같죠. 그래서 상하좌우 사방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지만 이 건을 어떻게든 해결해서 극복해 봐야죠.

 그런데 그 와중에 시신 하나의 임플란트 흔적을 근거로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하게 되고. 병원 기록을 통해 그의 가까운 지인으로 심은하를 발견. 불러다 물어보니 지금껏 희생자들이 다 자기 지인들, 정확히는 전 애인들이랍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심은하 본인은 범인이 아닐 거라 믿으며 주변 지인들 탐문을 시작하는 우리 석규 형사님.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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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커팅(...)으로 시작해서 영화 내내 신체 각부가 자유롭게 노니는 범행 현장을 보여줍니다.)



 - 한 때 한국 영화라고 하면 잘 나가는 젊은이들은 보러 가선 안 될 물건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이름하여 '방화'의 시대! 물론 그 와중에 '장군의 아들'이나 '서편제' 같은 대히트작들이 나오긴 했지만 뭐랄까. 그건 그냥 '재밌는 방화'였지 방화가 아닌 건 아니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젊은이들도 볼만한 한국 영화... 라고, 당시 기준 세련되고 젊은 감각 잘 살아 있는 이야기라고 등장했던 게 바로 장윤현의 '접속'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1997년작이었죠. 물론 장윤현의 능력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좀 럭키하게 선빵을 날리게 된 경우 같기도 하구요. 같은 해에 '초록 물고기'와 '넘버3'가 나왔고 바로 그 다음 해엔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처럼 세련되고 새롭다고 평가 받은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며 '한국 영화 르네상스'란 소릴 듣게 되는데 그 영화들이 고작 1년전 장윤현 영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건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뭐 어쨌거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결과론이고. 장윤현은 그 시절엔 그리도 훌륭한 감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생에 히트작이라곤 두 편 밖에 없는 감독인데도 지금까지 사람들이 다 이름을 기억하고 '아, 그 사람 참 잘 나갔지'라고 말하게 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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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접속'에 출연할 뻔 했다던 심은하는 결국 이 영화로 장윤현을 만나지만... 결과는 좀.)



 - 어쨌든 그 장윤현의 둘 밖에 없는 히트작 중 두 번째 영화가 바로 이 '텔 미 썸딩'입니다. 흥행 성공했어요.

 데뷔작은 멜로에 가까운 로맨스를 만들었던 사람이 갑자기 연쇄 살인 스릴러를 만들었는데. 뭐 이상하진 않습니다. 그 시절에 대중 예술 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장르 저 장르 다 섭렵하는 게 훌륭한 거다! 그래서 뮤지션들이든 배우들이든 영화 감독들이든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강조하고 그걸 홍보 포인트로 삼고 그랬죠. 게다가 장윤현은 애초에 '오! 꿈의 나라'나 '파업 전야' 같은 걸 만들던 감독이니 애초에 '접속' 부터가 파격이었던 거구요.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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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풋한 유준상의 연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 중 하나였네요. 영화 데뷔작이었답니다.)



 - '접속'은 새롭다곤 해도 사실 한국에서 꾸준히 만들어지던 장르였잖아요. PC통신이라는 소재와 졀므니 갬성 덕에 새로워 보였지 이야기 자체는 한국에서 익숙한 소재였구요. 반면에 연쇄 살인마 잡는 스릴러라니. 이건 당시 한국에선 꽤나 드문 소재였습니다. 그래서 한층 난이도가 높은 도전이 되었겠죠. 그리하여 장윤현과 각본가 공수창은 어떻게 했냐면... 레퍼런스들을 몇 개 골라서 자비심 없이 마구 베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원초적 본능'의 설정을 가져다가 '소년 탐정 김전일'의 트릭을 얹어 놓고 거기에 한국풍 & 캐스팅된 톱스타들을 배려해서 로컬라이징 스토리를 짠 거죠. (덤으로 직접적인 살인 장면들은 지알로 영화들 흉내를 많이 냈더군요. 하필 며칠 전에 아르젠토 영화를 봤다 보니... ㅋ)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습니다. 1999년의 한국에서 한석규와 심은하를 데려다가 뜨거운 파격 베드씬 같은 걸 시킬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이 둘은 침대 위에서 땀을 흘리는 대신 자꾸만 예쁜 조명이 있는 방에서 참으로 서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성적으로 도발하는 대신 청순하고 여리여리한 이미지로 형사를 현혹시켜 자기 편으로 만듭니다. 대략 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한데, 그래도 캐릭터 설정이나 관계 같은 걸 보면 역시 '원초적 본능'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베낀 이야기에요. '원초적 본능'과 다른 부분들도 가만히 보면 팬픽 쓰듯 그걸 원작 삼아 변형한 티가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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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비주얼이 심은하! 비주얼이 곧 개연성!!! 을 노렸으나...)



 - 이런 노골적인 레퍼런스(특히 '김전일'의 경우엔 표절 논란까지 있었죠. 그럴만 했구요.)는 뭐... 그냥 1997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상황을 생각해서 지금은 그냥 너그러이 봐 줄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저는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당연히도, 그렇게 베껴와서 만들어 내놓은 결과물이 영 구리다는 겁니다.


 일단 기본 레퍼런스가 '원초적 본능'입니다. 그렇다면 남녀 주인공 둘의 관계를 잘 묘사해야겠죠. 둘이 서로(?) 끌리는 묘사도 잘 해줘야겠고 또 뭔가 안 도덕적인 듯한 남자 캐릭터의 묘사도 중요하고 결정적으로 여주인공의 매력을 잘 살려줘야할 겁니다. 근데 그게 정말 문자 그대로 '하나도 안 됩니다'. 

 한석규의 부패 떡밥은 초반 10분 정도 지나면 그냥 없는 겁니다. 심은하는 걍 멍때리는 표정으로 잠꼬대 같은 말투로 문어체 대사를 어색하게 읊을 뿐 뻣뻣하기 그지 없어서 '그 시절 심은하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제로에요. 그리고 이 둘 사이의 화학작용 같은 것 또한 전무합니다. 그냥 '심은하 얼굴인데 빠져드는 게 당연하잖아?'라는 식이고 거기 버프를 넣어주는 요소가 하나도 없어요. 과장이 아니라 거의 브레히트의 소격효과 빔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으로 둘 중 누구의 상황에도 1도 몰입되지 않는 전개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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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그림 하나 딱 넣어주면 다들 되게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겠지!!!)


 엄청나게 과시적이면서 그만큼 참으로 많은 준비와 수고가 필요해 보이는 우리의 토막 살인 사건과 그 수사 과정은 어떤가요. 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화가 되게 이상해요. 범인이 막 울거나 폼 잡으면서 좔좔좔 수법을 읊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왜, 어디서, 어떻게는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끝까지 없어요.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설명이 엄청 듬성듬성해서 '아... 암튼 범인은 그렇구나' 라는 생각 밖에 안 들구요.


 결정적으로 김전일에서 베껴 온 시신 토막 트릭 활용이 완전 개판입니다. 원작에서 그 트릭은 범인의 최종 범행 목적과 직결되는 중요한 트릭이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게 철저하게 무의미합니다. 그냥 엽기적인 분위기 조성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 놀래키는 볼 거리 하나 추가하자고 갖다 쓴 것 같은데 덕택에 '범인이 왜 그런 번거로운 방식을 택했나' 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해집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냥 말이 안 돼요. 억지를 넘어 생떼 수준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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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짤을 다시 보니 참 무의미하네요. 역시 걍 헐리웃 스릴러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베껴오느라 개연성은 생각 못 한 듯.)



 - 배우들도 상당히 고생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심은하는 그냥 발연기에요. 그리고 한석규는 걍 흔한 '한석규' 연기만 가까스로 소화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런데 이걸 막 비판하고 싶진 않은 것이, 앞서 말했듯이 각본이 진짜 별로거든요. 이야기 구축도 별로지만 대사도 좋지 않읍니다. 걍 평범한 발랄 젊은이 역할의 염정아나, 카리스마 있는 척을 해야 하지만 대사가 별로 없는 유준상의 연기는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는 걸 생각하면 역시나 각본의 탓인 걸로. '치명치명 의미심장'한 상황만 되면 잘 하던 배우들도 헛발질을 해대는 걸 보면 각본도, 장윤현의 연기 지도도 다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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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하드고어'는 참으로 열심히, 그리고 잘 했습니다.)



 - 그래서 결론적으로 뭐 하나 봐 줄 것 없는 똥덩어리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특수효과가 상당히 좋아요. 영화의 컨셉 자체가 고어 묘사에 맞춰져 있고 제 기억에 그 시절에도 이 부분을 상당히 강조해서 홍보했던 것 같은데, 정말로 그게 꽤 그럴싸합니다. 이전에 인간의 토막난 신체를 그렇게 열심히 묘사해 본 적이 없는 업계에서 한 방에 뚝딱 만들어낸 결과물 같지 않더라구요. 


 또 우리의 장윤현 감독이 어쨌거나 '장면장면의 느낌'은 꽤 그럴싸하게 뽑아내줘요. 사실 '접속'의 인기 비결 중에도 그 시절 기준으로 꽤 예쁘고 안 촌스럽게 화면을 뽑아냈다는 게 있었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보기엔 옛날 티가 적잖게 나지만 그 시절엔 안 그랬을 거구요. 아마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식으로 줄거리를 편집 요약해서 보여주면 실제 영화보다 훨씬 괜찮은 작품으로 보일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ㅋㅋ 


 그리고 뭐랄까. 스토리에도, 장면 연출에도 의외로 'K스러움'이 별로 없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엄청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생각 외로 영화가 그렇게 막 촌스럽지 않아요. 차라리 좀 촌스러워도 재밌으면 더 좋았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그 시절에 장윤현이 한국 영화계의 '탈 방화' 선두 주자였던 건 이렇게 증명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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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풋 똘망 귀여운 염정아씨 모습을 보는 것 또한 나름의 즐거움이었구요.)



 - 길게 이것저것 떠들어댔는데, 간단히 요약해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한국 영화판에 잘 없는 장르를 보여주겠다며 해외 유명작들을 짜깁기해서 열심히 만들어 봤습니다.

 (그 시절 기준) 때깔도 좋고 특수 효과도 좋고 그 시절 특유의 촌티도 안 느껴지는 깔끔한 외관이 좋습니다만.

 개연성 우주로 날린 건 둘째치고 이야기도 캐릭터들도 다들 대동단결로 너무나 재미가 없으며 구린 대사로 배우들 연기까지 말아 먹는 각본이 크리티컬인 관계로 추천 불가 등급 되겠습니다.

 저처럼 그 시절에 놓친 게 20여년간 신경 쓰이는 밀린 숙제같은 기분으로 남아 있던 분들 아니면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끝.




 + th 발음의 한글 표기가 늘 이 나라에서 뜨거운 떡밥이라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텔 미 썸'딩'은 너무 어색하지 않습니까. 썸딩썸딩썸딩썸딩 소리를 내서 발음해 보면 더 어색합니다. "텔 미 썸딩 많이 사랑해주세요!!" 



 ++ 그래도 그 시절 서울 시내 풍경들 구경하는 건 좀 즐거웠습니다. 약속의 전당 타워 레코드!



 +++ 아무리 그 시절이라지만 증인(?)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다짜고짜 수사팀장 본인 집에 데려다 놓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각본가들은. 하다 못해 성별이라도 같다면 모를까.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여자 증인을 데려다 놓는데 주변에선 아무도 말을 안 하네요. 심지어 한석규 반장님은 심은하에게 호신용으로 총을 '줍니다'. 심은하 비주얼의 인간이라 다들 납득한 건가...



 ++++ 원래 장윤현이 찍어 놓은 게 거의 한 시간 분량이 더 있다는데. 글쎄요. 설명이 부족하게 못 만든 스릴러에서 설명이 지나치게 많은 못 만든 스릴러로 변할 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별로 궁금하진 않네요.



 +++++ 이 영화의 결말은 좀 이상합니다. 좀 스포일러성 언급이니 피할 분들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만...

 이런 장르 영화의 클리셰였던 '떠나보낸 후의 때늦은 깨달음' 엔딩인데요.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때늦은 게 아니죠. 전화 한 통 해서 수속 밟으면 운 좋으면 바로, 운 없어도 조만간 체포 엔딩인 것인데요. 영화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끝을 맺으니 더 웃겼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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