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을 봤어요.

2022.08.21 16:20

thoma 조회 수:330

논-픽션(Doubles vie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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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입니다. 왓챠에서 봤습니다.

먼저 지난 번에 '맨 프롬 어스' 얘기하면서 유사한 영화라고 한 것 정정합니다. 이 영화는 대화가 아주 많지만, 많을 뿐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인물들의 실제 생활과 인물들의 직업과 관련된 프랑스인들 특유의 수다 내지는 잡담성 대화로 되어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안 본 상태에서 어디선가 잘못 입력된 정보로 적어서 죄송하네요. 


저는 일단 재밌게 봤어요. 대화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영화는 사실 극장에서 보기에 적절한가 언제나 의문스러워요. 제대로 즐기기엔 장벽이 좀 있지 않은가 해서요. 감상 시간동안 시청각 즐거움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고 '이 문제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말로 전시하는 영화라서요. 대화의 내용에 관객이 나름 적극적으로 개입해 보려면, 자기 생각을 다듬어 보려면 휙휙 지나가는 자막이 한 번만의 감상으론 한계가 있으니까요. 영화가 전달하려는 바를 이미지로 표현하면 기억에 오래 남지만 이런 영화처럼 지식인들의 잦은 대화가 나오는 영화일 경우엔 그 많은 수다를 따라잡기 힘들어요. 말이 이어지는 다른 말에 덮혀버리는 느낌이 있어서요. 이런 영화는 집에서 되풀이 볼 수 있는 매체를 이용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바로 아래 사진이 이 영화에서 첫 대화를 시작하는 두 남 주인공입니다. 기욤 까네가 출판사 대표 겸 편집자, 턱수염 난 분이(빈센트 맥케인) 소설가입니다. 작가는 조금 눈치를 보고 편집자는 둘러둘러 이번 책 출판을 거절하는 장면입죠. 그리고 이들은 각자 외도를 하고 있는데 작가의 상대가 편집자의 아내인 줄리엣 비노쉬입니다. 편집자는 위 포스터 제일 아래 인물인 출판사 동료와 그러고 있고요. 영화 속의 인물들이 여럿이 모임을 하거나 공적 자리에선 e북과 블러그, 트위터의 세계에서 종이책이 살아남겠는가, 각자 변화를 어느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 전문 작가나 평론가가 '좋아요'로 지지 받는 인터넷 글쓴이로 대체될 것인가 등등의 업계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혼자가 되면 남에게 드러나면 안 되는 생활을 합니다. 원제가 Doubles vies니까 이중 생활들로 번역할 수 있겠죠. 그리고 표면 위로 드러나면 안 되지만 안 드러나면 된다는 생각을 이 영화 속의 중심 인물들은 갖고 있어요. 서로서로 눈치 채고 있지만 드러내지는 않는 것입니다. 


연인 사이의 성적인 매력이 유지되는 기간이 몇 달이다, 몇 년이다, 이런 연구도 들은 것 같네요. 일부일처제가 개인에게도 덜 번거롭고 사회를 유지하기에도 편리해서 정착되었지만 생물적 면에선 자연스럽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그런 측면의 사회적 합의랄까 양해가 가장 원활한 나라로 손꼽히는 곳이 프랑스가 아닐까 하고 근거 없이 들은 소문만으로 생각해 봅니다. 워낙에 인생의 즐거움에 우선 순위를 두는 국민성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여튼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여러 겹의 생활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다루어 가면서 여전히 수다를 계속합니다. 부부 사이에, 동종 업자끼리. 진실이 결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정신 승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선 순위가 정해진다면 어느만큼 견디고 다룰 수 있는가의 문제란 생각도 듭니다.


대화는 가볍게 던지듯이 전개되고 사적인 지인들 끼리의 대화라 허공에 흩어지며 끊기는 식이라 책이나 작가의 미래를 깊이 다루는 영화는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이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빌미가 되어 잊고 있던 걸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줄 수는 있을 영화예요. 저는 인터넷 시대가 되어 글(책)을 읽는 사람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물은 더 많은 아무나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게 되었다는 점(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시대)을 들고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은 그저 시간 낭비에 아무말 대잔치일 뿐이라고 받는, 초반에 나오는 친구들과의 대화 장면이 재밌었어요. 여기서 기욤 까네가 맡은 편집자는 '글은 물질과 분리되면 죽는 거야' 라고 하는데 나온 대화 중에 가장 마음에 다가 왔어요. 저는 e북을 사서 읽기도 하지만 e북으로 읽은 것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 경험을 합니다. 손으로 잡는 물질의 감촉,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며 머무는 시간이 나무에 미안함과 더불어 마음에 새기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만에 프랑스의 (위선적인?)지식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참 이 사람들은 자신의 매력을 열심히 어필하는구나, 표정, 손짓, 몸짓, 태도가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그런 사람들 여럿 나오는 영화 땡기실 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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