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가 누군지 알아채신 분 있으면 저에게 알리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모른척해주세요.

제가 지금 느끼는 혼란을 간결하게 정리하기엔 능력이 너무 모자라네요. 사실 왜 혼란스러운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졸업한 (남자) 선배를 만났습니다. 저와 그 선배와 모두 친한 제 여자 동기도 함께 만났지요.

이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매력있고 제가 꽤 좋아하는 선배입니다. 마초스러운 면도 있지만 사람 마음을 갖고 놀거나

배신하는 부정직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친해진지는 그럭저럭 3년반 정도 되었네요.

 

대학 내내 선배에겐 예쁜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군대와 유학 등의 역경과 고난을 넘어가 몇년을 사귄 커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선배와 여자친구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해치고 거의 결혼할 사이로 대접되던 그 마지막 몇년에 그 선배와 친해졌지요.

선배는 저를 유독 예뻐했습니다. 제가 남자친구가 생겨서 다같이 함께 술을 마실땐 아 익명이 내껀데..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어요.

물론 농담이려니 하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아니, 사실은 순진했던 저는 나중에 그 술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선배에게 저 선배가 설마 저를 좋아하는건 아니겠죠?

하고 말했다가 도끼병 환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 나랑 결혼하자는 하릴없는 말을 웃어넘기며.

그 선배가 취했을때 내 휴대폰의 부재중 전화 다섯통과 술먹게 나오라는 문자들을 적당히 무시해가며.

제가 연락하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선배를 모르는 척 달래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때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선배는 저를 다독거려줬습니다.

헤어지기 직전 무심한 남자친구에게 상처받아서 펑펑울면서

그래도 제가 헤어지잔 말은 먼저 안할꺼에요, 진짜 좋아하니까. 라고 주정하던 것도 기억나네요.

그 선배는 너같은 여자를 만나야 하는데, 라고 했었죠.

그리고 그 몇년 내내 선배에겐 그 여자친구가 있었죠.

 

군대와 유학 등으로 몇년 동안 떨어져있는 내내 그 선배에게 다른 여자가 없었던 건 아닐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몇 번 만나던 여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헐 선배 그러면 어떡해요 라고 입바른 소리를 할때 그 선배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XX (그 여자친구분 이름)한테는 말하면 안돼.

그렇게 심각한거 아니야. 라고 했습니다.

선배는 저보다 몇학번이나 위였고 저는 어른들은 다 저렇게 연애하는 건가?

그럼 XX선배는 저 선배가 저러는걸 묵인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 때부터 사실은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아는 연애란 그런게 아니었거든요.

진심으로 안좋아하면 왜 사귀어요????? 라고 다섯학번 위 선배에게 꼬장을 부리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십대 초반이었죠.

누구나 저에게 아직 어리다고 했어요.

 

그리고 선배는 졸업했고 사생활이 전혀 없는 직업을 가진 사회인이 되었죠.

여자친구분하고는 졸업후 얼마 있지 않아 헤어졌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지요. 난 걔네 둘이 결혼할 줄 알았어.

정말 의문스러운 일은 그 선배가 그렇게 애정을 흘리고 다니는 걸 알면서도

다른 남자 선배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는 겁니다. 난 걔네가 결혼할 줄 알았어.

그 때마다 궁금했어요. 그들은 저 선배가 여자 언니 몰래 후배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한걸 알면서도 저렇게 얘기하는 걸까?

 

그리고 정말 바쁜 그 선배를 졸업후에 어제 처음으로 술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더군요.

다만 예전처럼 막 신나있는 느낌은 많이 사라졌더라구요.

옆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선배 곁에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전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더라구요. 지금 여자친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눈치였어요.

그럴줄 알았어요.

그에 비해 쓸데없이 마음이 무거운 저는 좋아하는 사람도 없이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선배가 졸업한 후에 담배를 피게 되었고

우리가 유쾌하게 떠드는 사이 선배는 제게 담뱃불을 붙여줬습니다.

몇번 그런 순간이 오가고 취기가 오르려 하는데

허벅지에 손을 놔두더라구요. 그리고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어요.

맞은 편에 앉아있는 동기 몰래요.

 

담배를 피면서 별 생각없는 자신에 놀랐습니다.

원래 이렇게 될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냥 놔뒀어요. 방이 추웠거든요. 그런데 손이 따뜻하더라구요.

마음은 누구에게 함부로 줄 수 없었지만  연애를 쉬는 내내 사실 정말 그리웠던 건,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 손이었던 거 같아요.

평소같았으면 예의바르게 웃으며 손을 내려놨을 텐데

어제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습니다.

 

그냥 놔두자 선배가 테이블 밑에서 손을 잡았습니다.

사실 허벅지를 만지작 거리는 것보다 손잡는 게 훨씬 기분 좋았어요.

얌전하게 손만 잡고 있었던 건 아닌데.

선배가 손톱으로 제 손을 간질이고 깍지를 꼈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닙니다. 손으로 키스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제 손을 자기 허벅지에 대고 누르더라구요.

 

동기가 그 선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챘는지

술자리를 정리하고 나가자는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 선배는 분명 저랑 자고 싶어했어요. 그런건 다 느껴지는 거잖아요.

대충 술자리를 수습하고 동기네 집에서 자려고 택시를 탔는데 동기가 저 대신 화를 내더라구요.

성추행 아니냐며. 저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성추행이라니 얼마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가요

제가 그 술집을 빠져나갈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아주 솔직히 얘기하자면, 선배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험도 없는 제가 그 동기가 없었다면 분명 그 선배의 방에 따라갔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냥 미안했어요. 저랑 자고 싶어하는데 제가 가버리는 게.

어제의 술자리는 직장인 선배가 사주는 자리였죠.

미안해져서 선배에게 원래 줄 필요없었던 술값을 주고 택시를 탔습니다.

 

연애 경험이 없는 동기는 그냥 술취해서 저러는 거니까 신경쓰지 말라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아주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 별다른 생각없이, 마치 1학년때 술취한 동기가 제 허벅지를 만지는 것을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갔던 것처럼

그냥 이 선배가 이러는 걸 제가 그냥 모른척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혼란스러운 건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 선배는 정말 나쁜 놈인가요.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후배랑 자려고 했으니까?

그 선배를 만나는 몇년 사이에 제가 느끼곤 했던, 예쁨받는 다는 포근함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건가요. 그냥 선배로서 저를 아껴주었던 것 뿐 이고 그건 그거고.

어제 저랑 자고 싶어했던 선배는 이거니까. 그냥 술취해서 누구랑 자고 싶었는데 내가 옆에 있었네, 하고 넘기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그 선배는 그 오랜 우정을 배반하고 한 순간 저랑 자고 싶어해서 관계를 깨버린 찌질이인건가요. 

선배는 아주 오랜 역사동안 나쁜 남자 상종못할 남자인걸 증명해왔는데 

선 그을 줄 모르는 제가 아직도 그냥 선배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건가요. 

저랑 섹스하고 나서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요. 여자친구랑도 만나면서 저랑도 자고 싶어했을까요.

 

어릴때 당연했던 것들이 점점 더 당연하지 않게 하나하나 변모해가기 시작합니다.

 

어릴땐 여자친구가 있는데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 바람피는 것과 구분되지 않는 환승.

사귈 마음없이 하는 스킨쉽. 하나하나 모두 다 나쁜 새끼들이라고 생각하고 바르르 떨었습니다.

저를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벌이는 거라고 생각했죠.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따위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구는 남자들은 쓰레기장에 폐차시켜야 한다고 굳게 믿었어요.

 

하지만 스스로 연애가 허망하다고 느끼고

평생갈것 같은 사랑도 아무 이유없이 사그라들고

짝사랑조차 하지 않게된지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어릴때 믿었던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스킨쉽을 하면 사람이 좋아집니다. 꼭 사람이 좋아서 스킨쉽을 하는 건 아니네요

어릴때 확실했던, 뭐가 먼저여야 하고 뭐는 하지 말아야 하고 하는 것들의 인과 관계가

사랑하니까 자는 거고 자서 사랑하게 되는건 안된다는 생각이.

자는 관계면 연애해야 하는 거고 같이자면서 연애안하면 나쁜 거라는 관념이.

사랑하지 않으면 연애하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모두다 허물어집니다.

 

이 선배가 아니라도 최근에

별 생각없이 이런 일들을 많이 겪네요.

제가 나쁜 건가요?

세상에는 분명 옳은일 옳지 않은일 기준이란 게 있는데

중심을 못잡고 휩쓸리고 있나요?

 

한가지 확실한 건 저도 좋았다는 거에요.

분명히 이 선배가 제 손을 만지고 목덜미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는척 두피를 만지는 그게 좋았어요.

선배가 여자친구랑 헤어지길 바라는 건 절대 아니고 나랑 사귀기를 바라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분명 선배를 좋아하고 선배랑 하는 스킨쉽도 좋았어요.

 

다시 읽어보니 정말 대체 어쩌라고 수준의 글이네요.

제가 느끼는 혼란이 뭔지 정확히 정리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매일같이 헷갈리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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