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5일 후.

2017.05.05 02:33

로이배티 조회 수:1776

듀게가 어떤 분위기가 되어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고 적을 생각이었는데 사실은 꽤 구체적으로 상상이 됩니다. (쿨럭;)

어쨌든 이제 닷새 후. 120시간 후면 다음 대통령은 확정 내지는 사실상 확정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동안 정치 관련 글은 잠시 끊어 보겠다... 는 핑계로 아마 별 내용도 없이 쓸 데 없이 장문이 될 글을 끄적거려 봅니다.



1.

이번 대선에서 가장 제 이목을 끌었던 건 안철수와 국민의당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승리가 유력한 쪽에는 관심이나 호감이 잘 안 가는 성격이라서. ㅋㅋㅋ

게임을 많이 하고 살아서 그런가. 무시무시한 최강자는 항상 적 최종 보스잖아요. 그 편에 서는 게 뭐가 재밌나요. 그걸 잔머리와 컨트롤로 격파해야 하는 쪽이 훨씬 재밌죠.

그래서 하다 못 해 아이돌을 봐도 대기업 아이돌들에겐 별로 관심이 안 가고.

조던의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가 붙으면 유타를 응원하고. 코비 & 오닐의 레이커스와... 아, 이 얘긴 그만 하구요.


암튼 뭐.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전반적인 능력치에서 한참 우월한 강팀을 상대해야 하는 약점 투성이의 (상대적) 약팀'이 잘 되는 모습과 말아 먹는 모습을 모두 다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좀 더티하게(...) 플레이하면서 강팀의 멘탈을 흔들어 제 실력 발휘를 막고. 동시에 자기 팀의 강점(=안철수)을 극대화 시키면서 기세와 분위기를 몰아 가는 것. 이걸 전반까진 아주 잘 해냈구요.

거기에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자폭성 플레이까지 보여준 덕에 순식간에 오차 범위 내 사실상 동급 지지율까지 잘 따라갔... 습니다만.


바로 그 역전의 순간에 유치원(...)


뭐 이 주제 하나에 대해서만도 엄청난 장문의 이야기가 가능하겠습니다만 여기서 이제사 그런 얘길 할 필욘 없겠고.

결국 이것이 드라마틱한 하락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 유치원 건에다가 첫 토론회에 대한 부정정 평가, 보좌관 사건에 대한 적극 부인과 광속 인정 사건까지 겹치며 상승세가 꺾였고.

여론 조사를 통해 그것이 기정 사실화 되는 순간부터 안철수 본인도, 그리고 국민의당도 다급해져서 우왕좌왕 일발 역전 노리는 무리수만 남발하다 자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와중에 홍준표가 보여준 괴이한 활약이 기름을 부었고 마무리는 '권양숙 9촌 사건' 정도일까요.


뭐 안철수가 대선 후에도 계속 정치를 하려고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왠지 일단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 돌아와서 깔끔하게 때려 치울 것 같다는 개인적인 느낌적인 느낌이

하지만 앞으로는 이번 대선 초기와 같은 파괴력을 다시 발휘할 수 없을 테니 꼭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맘이라면 그냥 그만 두는 게 나아 보이긴 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한국 정치의 개선을 위해 뭐라도 해 보겠다'는 맘이라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좋구요. 이번의 실패로 많은 걸 배웠을 테니까요.

그러나 어쨌든 이번 대선은 글렀다는 거.



2.

제 개인적인 소망으론 이번 대선이 끝나고 나면 민주당이 바른정당 & 유승민의 컨셉을 훔쳐와서 포지션 교체를 단행했으면 합니다. 개혁 보수니 따뜻한 보수니 하는 그런 얘기들 말이죠.

사실 민주당을 향하는 비판들 중 '종북', '패권' 같은 쓸 데 없는 소리들을 걷어내고 나면 대부분의 유효타들은 '진보도 아닌 게 진보인 척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지금까지는 자유당 탓이 컸습니다.

얘들이 '정통 보수' 캐릭터를 굳세게 붙들고 중도 행세를 하고 있으니 민주당은 자동으로 왼쪽 캐릭터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근데 사실 자유당 같은 놈들에게 '보수'라는 호칭이 가당키나 합니까. 그리고 민주당 같은 포지션에게 '진보'라는 호칭이 비슷하게라도 어울리기나 합니까.

그러니 마침 자유당이 힘을 잃고 민주당에게 강한 지지세가 있을 때, 바로 지금이 민주당 커밍 아웃의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이 보수 자리를 확고하게 잡으면서 자유당을 극우 포지션으로 밀어 내고. 자연스럽게 정의당이나 기타 진보 정당들이 진보의 자리를 잡게 되는 것.

그게 사실 모든 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봐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자유당 세력에 맞선다는 이유만으로 '개혁'과 '진보'라는 호칭을 받아야 합니까. ㅋㅋ


이러면 자유당 지지자들은 자연스레 '수구' 내지는 '극우'라는 매우 불편한 호칭을 획득하게 되긴 하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사실이잖아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금방 다들 적응하실 걸로 믿습니다. (쿨럭;)



3.

개인적으로 심상정이 그렇게 막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의당도 (현실에서 정의당원들이 헌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흘러 온 모습들을 볼 때 '제 입장에선' 그렇게 믿음이 가는 정당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척박한 진보 세력 현실에서 정의당의 포지션에서 정의당 정도로 해 주는 당이 반드시 하나 이상 존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다 떠나서 사실상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자꾸 선거 때마다 표 내놓으라고 보채는 건 확실히 아니죠.

아니 뭐 그런 얘기 꺼내고 싶으면 정책 연대 떡밥이라도 제안하든가 말입니다. 양심도 없이 맨 입으로 표만 내놓으라고(...)

암튼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이 그토록 바라던 두 자릿수 지지율을 획득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걸로 탄력 받아서 총선에서도... 라고 적다 생각해 보니 총선이 너무 멀군요. 흠;



4.

정작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는데.

뭐 이 사람들은 그냥 지난 수십년간 해 오던 걸 큰 차이 없이 또 한 번 하고 있다는 느낌이죠.

다만 그 모습이 전보다 조금은 세련되어진 건 사실이고. 또 민주당 답지 않게(?)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큰 삽질이 없었던 것 같긴 합니다.

예를 들자면 국민의당이 펼친 집요한 문준용 어택을 늘 최소한으로만 받아 치고 넘기면서 적극적으로 떡밥을 물고 덤비지 않았다는 거. 이건 아주 현명했죠.


아.

그러고보니 문재인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대선 국면에 보탬을 준 게 분명히 있긴 합니다. 박주민, 손혜원의 영입이요.

손혜원은 비록 자책골 몇 번으로 잠수함 모드가 되긴 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홍보의 때깔을 역대급으로 깔끔하게 만들어 준 공이 아주 명백하구요.

박주민의 존재는 몇 번 시도 되었던 세월호 관련 네거티브를 죄다 역풍으로 받아쳐 버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죠.

그리고 이 사람들을 본인이 직접 영입했다는 걸 보면 의외로(?) 문재인이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 국정 운영도 괜찮은 사람들 불러다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

까지는 좀 무리일 것 같기도 하구요. ㅋㅋㅋ



5.

암튼 뭐 까놓고 말해서 문재인은 결국 대통령이 될 겁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역전 당한다면 그건 정말 지구 정치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 될...)

그리고 앞으로 5년 동안 또 진보와 보수(내지는 수구) 양 진영에게 까이고 밟히고 갈려서 미세 먼지가 되어 흩날리게 되겠죠.

제가 이 양반에게 기대하는 건 그냥 '대체로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보수 정권'. 딱 여기까지일 뿐 더 이상은 아닙니다.

근데 지금 워낙 나라 꼴이 개판이라 이 정도만 해줘도 감지덕지일 것 같으니 정말 딱 저 정도만 해주길 바랍니다.


+ 그리고 과거 다른 민주당 정권들과는 다르게 차기 주자들 양성에도 좀 신경을 써서 다음 정권 다시 자유당으로 넘어가지 않게 좀(...)



6.

생각해보면 제 또래. 40대 초반의 사람들 중 자유당 계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경험의 측면에선 운이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여한 선거, 혹은 처음으로 참여한 대선에서 역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죠.

그리고 그게 심지어 드라마틱한 자유당 계열의 2연패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2연패가 이어지긴 했지만 최소한 '큰 승리의 경험'을 맛보았던 세대죠. 것두 아주 젊은 나이 부터요.

아마 지금 민주당이 30~40대에서 가장 세가 강력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 이전 세대들처럼 무기력이 학습되지는 않았거든요.


반면에 20~3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은 첫 선거는 이명박, 두 번째는 박근혜... 음...;


민주당의 정권 교체든, 정의당의 10% 달성이든 간에 이번 대선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나마(?)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경험을 안겨주는 이벤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앞으로의 모진 풍파에도 회의감에 빠져들지 않고 사회 개혁과 발전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나이를 먹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당선 될 확률이 가장 격하게 높으신 분, 그 분이 좀 똑바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ㅋㅋㅋ

제발요.




+ 사족이지만.

사실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국가에서 5년 정도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쁜 경험은 아닐 수 있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뽑아 놓은 사람이 삽질을 해대는 것보단 뽑지 않은 사람이 삽질을 해대는 게 더 맘 편히 까기도 좋고 나라꼴 거지 같아져도 죄책감도 전혀 안 들고(...)


++ 이렇게 글 써 놨는데 5일 후 출구 조사에서 1위를 레드...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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