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2013.01.23 01:23

에아렌딜 조회 수:2023


1.


아랫쪽 글의 댓글을 읽다가 생각난 건데, 여기 와서 본 밤하늘은 정말 별이 잔뜩 있어요. 별지도 같은 거 보면 잔뜩 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해 보이더라고요.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정말 아름다웠어요. 플라네타리움에 온 것 같은 광경이에요.

왜 같은 하늘인데 고향에선 그렇게 잘 보이지 않던 별들이 이곳에선 이렇게나 많이 보이는 걸까요? 신기해요. 

하늘도 다 같은 하늘이 아닌가봐요.


...음 써놓고 보니 뭔가 이상한 말이군요.




2.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여전히 타국 생활 중인 에아렌딜입니다.


여러분은 뭔가 갑자기 막 연달아서 들이닥치면 어떡하세요?

전 패닉해요. 완전 당황해서 어버버해요. 뭐부터 정리해야할지 감이 안 잡혀요.

나중엔 아 침착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게 일상다반사지요...

어떤 상황인가 하면, 전화가 여러 군데서 울리는데(1번 회선 2번 회선 이렇게 있거든요) 정산을 하러 온 손님이 하나도 아니고 한 대여섯쯤 있고, 거기다 다른 사람이 'ㅇㅇ 어디 있어?' 하고 물으러 온다든가 하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을 때예요.

특히 손님이 여럿 왔는데 패닉해서 마구마구 돈을 받다 보면 꼭 빠진 손님이 한둘 씩 있는 거 같아요. 아니 한둘이 아니고 꽤 많이... 왜냐면 돈이 안 맞거든요. OTL 슬퍼요...


뭔가 마구마구 들이닥치면 저도 마구마구 당황해서 괴성을 내요. 실제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속으로 눈이 @ㅁ@ 이렇게 되어선 속으로만 소리를 지를 때도 있고요.


직장 사람들은 절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웃더라고요. 나쁜 뜻이 아니란 걸 아니까 저도 웃기긴 하는데... 그래도 일하는데 좀 유능해지고 싶어요.

지금 상황으로선 그냥 무능한데다 이상하기까지 한 얼간이이니까요... OTL




3.

꿈을 꾸었어요.

여기 와서 조금 호감을 가진 분이 있는데 그분이 어제 부로 일을 그만두셨어요.

근데 어젯밤 그분이 절 좋아해주시는 꿈을 꾼 거에요.

깨고 나니 정말 식겁스러웠어요.


내가 얼마나 약해져있었기에, 기대고 싶어서 그런 꿈을 꾼 걸까요.

참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네요.


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고 아마 평생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어처구니없기도 한 기분이네요.

대체 이런 감정은 왜 생겨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 이 들기도 하고요.

왜 정체성인가 하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 들게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소박한 의문이 들어서에요.

하지만 전 누군가의 마음에 들게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단지 게을러서 그렇겠지만. -_-;

뭐라고 할까, 자기 자신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예쁘지 않은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거나, 날씬하지 않으면 내가 아니라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부터가 올바른 정체성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과거의 전 자기 자신에 대해 큰 자책감을 갖고 있었죠.

어렸을 적 타인에게서 받았던 상처와 배신감이... 줄곧 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잘못되어 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 사실은 날 싫어하고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었죠.


사실은 지금도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왜냐면 너무 슬프고 미쳐버릴 것만 같아지니까요.

자기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모르는 대로 두자고.....

날 싫어한다고 좋아한다고 해도, 나만은 나 자신의 편이 되어 주자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할 정도로 제 자신에 대해 옛날에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방향으로 움직였다고나 할까요.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제겐 그게 혁명처럼 느껴져요.

자기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 단지 뻔뻔해졌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었어요.




4.

요즘은 일이 많이 힘들어요. 일손은 부족한데 손님과 업무는 늘었어요.

피곤한데 잠을 많이 잘 수가 없어서 영 상태가 좋지 않네요. 

더구나 쉬는 날도 줄어서 장보러 갈 수도 없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직장에 박혀 있는 셈이니 영 좋지 않은 정신상태에요. 


원래 어디 나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갑갑해요.

무엇보다 장을 볼 수도 없어서 전에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잔뜩 사둔 인스턴트 카레만이 희망이네요. -_ㅜ

뭣보다도... 내가 이런 상태인데 아무도 신경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슬펐어요. 

어차피 타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혼자 사는 게 인생인데... 그래도 그 점이 너무 슬퍼서 어렸을 땐 자주 울었었지요.


오늘 내내 좀 울적했지만... 그래도 물건 못 사러 가는 걸로 그렇게 침울해하지는 말자, 하고 마음을 가다듬기로 했어요.

아무도 신경 안 써주면 어떠냐고, 그런 것쯤 각오하고 온 게 아니냐고 자신을 달래봅니다...





좋은 밤 되세요. 

행복한 꿈 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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