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Music in 樂 공연 다녀왔어요

2012.08.27 22:07

hermit 조회 수:976

직장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자취하게 된 걸 빼면(그나마 더 시골;;) 출생-초-중-고-대학교-군대까지 거의 25년을 대전에서만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살면서 느끼는 건데... 일단 살기 좋은 도시에요. 


나름 인구 130만의 대도시인데도 공장이 거의 없어 깨끗한 편이고, 또 나름대로 근대적인 계획도시 1호라 교통이 무척 쾌적합니다. 길도 잘 뚫려있고 다른 대도시에 비해 체증이 거의 없죠. 


하상도로 물에 잠긴 것 가지고 몇 년만의 수해 운운할 만큼 풍수해와도 참 인연이 없는 안전한 곳이고, 집값도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굉장히 싼 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을 상쇄할만한 크나큰 단점이 있는데... 


정말로 지루한 도시에요. 


사람들이 참 유한데 흥이 없습니다. 다들 점잔빼는 선생님이나 공무원들 같아요. 


이러다보니 도시규모에 비해 문화예술 쪽은 터무니없을만큼 왜소합니다. 공연도 잘 없고 그나마 열려봤자 잘 오지도 않아요. 


오죽하면 아는 형 중 하나는 예전에 "이놈의 동네는 서태지랑 조용필이랑 소녀시대가 합동공연해도 1만명 못 채울 걸!"라고 일갈을...=_= 


그런 대전에서 음악 공연이 열렸습니다. 더구나 인디락 공연이었습니다. 더구나 스웨덴 멜데스 밴드까지 내한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대전 살면서 감히 꿈꿔보지도 못했던 공연이 대전에서 현실로 이루어졌어요...ㅠ_ㅠ


때문에 일요일 밤 11시까지 공연 봤다간 오늘 새벽부터 직장까지 120km 운전하며 깨나 고생할 거란 걸 알면서도, 도저히 안 갈 수가 없더군요. 


설레는 맘을 안고 일요일 오후 공연이 열리는 인스카이 클럽으로 향했습니다. 


스테이지 제외하면 교실 한칸 크기만한 자그마한 클럽이었고 그나마 다 채우지도 못했지만 덕분에 공연하는 밴드들을 정말 손에 닿을 듯, 눈앞에서 지켜보며 함께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릿수는 적을지언정 기세만은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공연 내내 목청이 터져라 소리 지르고 따라불렀습니다. 클럽 공연은 대학교 이후 처음 가서 참 느낌이 남다르더군요. 


벌써 10년 전이지만(젠장...ㅠ_ㅠ) 홍대 WASP에서 익스트림 밴드 공연 자주 봤었는데 말이죠. 


몸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 그리고 무엇보다 월요일 장거리 출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예전처럼 미친듯히 해드뱅잉하고 슬램하진 못했지만 그냥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1. 마네킨 - 대전지역의 3인조 여성밴드입니다. 음악방향은 팝적이기도 하고 개러지 성향도 있는 멜로딕 메틀... 공연 끝나자마자 스탠딩존으로 내려와 다른 밴드 공연 신나게 즐기시더군요 ^^;; 


2. 패러다임 - 한국인 기타, 재미교포 베이스, 그리고 인도인 드러머라는 매우 독특한 구성을 가진 밴드. 음악 역시 프로그레시브 메틀 느낌도 들고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가사를 좀 음미하고 싶었는데 좁은 공연장과 열악한 사운드 사정 상 보컬이 많이 묻혀 좀 아쉬웠음. 


3. 라이징 선 - 결성한지는 얼마 안 됐지만 예전부터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모인 밴드라 연륜이 꽤 있으시더군요. 정통 하드락 스타일인데 딱 헤드뱅잉하기 좋은 템포에 묵직하게 내달리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굉장히 관객 호응도 잘 유도하고 처음 듣고도 금방 따라하며 떼창이 가능한 곡들이 많아 여기서 벌써 목이 쉬었음;; 


4. 버닝 헵번 - 대전을 대표하는 펑크 밴드! 대학 공연때도 와서 참 몇 푼 안되는 돈 받고도 신나게 놀다 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10년만에 재회...+_+ 그 동안에도 대전에 꾸준히 남아 공연했다는데 초기 공연하던 클럽 망한 뒤로 홍대 쪽에서만 활동한 줄 알고 대전 인디씬에 신경도 안 썼던 제가 참 부끄러워지더군요. 여전히 신나고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다음에 데스 시티 크루와의 합동공연 꼭 가야겠어요. 


5. 다운헬 - 역시 인디 씬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밴드죠. 여성 베이시스트 분 예뻤어요 +_+ 음악 방향이 제 취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밴드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어요. 시원시원한 보컬의 고음이 매력적인 밴드인데 역시 보컬 사운드가 많이 묻혀서 좀 아쉬움...


6. 마하트마 - 대전 출생이란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스래시 메틀 밴드! 서울에선 몇 번 봤지만 정작 서로의 근거지인 대전에서 보긴 처음... 죽어가는 메틀 씬에서 자력으로 해외진출의 꿈까지 실현한 역량있는 밴드입니다. 마지막 커버곡으로 Judas Priest의 Pain Killer 부르실 때 이미 쉬었던 곡이 완전히 맛이 갔지만 후회 따윈 없는 겁니다! 형님들 너무 멋져요 ㅠ_ㅠ 현금만 더 가져갔어도 머천다이즈 전부 사드렸을텐데... 


7. Night Rage - 이번 공연의 헤드라이너.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메틀 밴드입니다. 한창 때 부산 락페에선 다크 트랭퀄리티(게다가 이친구들은 부산 락페 때 열광적인 호응에 감동해 나중에 다시 내한;;)가 오질 않나 은근히 멜데스 밴드들이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더군요. 메틀 씬에서도 꽤나 마이너한 장르인데 우리나라에선 의외로 인기있습니다... 사실 전 80년대 하드락과 고딕메틀, 블랙메틀 팬이라서 데스메틀 쪽은 잘 알지 못해요. 이 씬에서는 그래도 꽤 인지도 있는 밴드라는데 저는 이름조차 여기 와서야 처음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북유럽 밴드 특유의 서늘함과 데스메틀의 빡셈이 어우러지니 분위기는 정말 최고조였습니다. '멜로딕'하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들었지만 공격적인 기타리프와 시종일관 부서져라 두들겨대는 드럼 사운드, 파워 넘치는 보컬까지 정말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미친듯이 슬램에 동참하고 싶더군요. 100명도 안온, 참 내한공연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작은 공연장이었음에도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공연자세가 참 멋졌습니다. 티셔츠랑 CD도 사고 공연 끝나면 사인회도 있다니 꼭 가서 싸인받고 싶었는데... 이분들 도저히 정시에 끝내줄 분위기가 아니시더군요...ㅠ_ㅠ 확실히 몸이 스무살 때같진 않아 다섯 시간 째 서서 놀았더니 허리와 다리도 아프고, 저녁도 굶었더니 배도 고프고, 또 계속 이러다간 도저히 월요일에 출근할 에너지가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아 결국 헤드라이너 공연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10시가 조금 지나 눈물을 머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11시 쯤 집에 도착해 양치질 하고 시체놀이하다가 새벽에 커피 진하게 한잔 타마신 뒤 장거리 출근...=_= 톨게이트 지나 직장까지 10km 남기고 갑자기 눈이 감겨와 참느라 죽을 뻔 했네요. 하루종일 피곤하고, 목소리는 여전히 시원찮고, 귀도 여전히 웅웅거리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어쩌다 한번이지만, 이렇게 하루 멋진 밴드들과 함께 미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어차피 주말이면 거의 매주 대전에 가니까 앞으로는 대전의 클럽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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