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1 14:14
첫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보면서 공간적 변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맨 처음, 메이코와 츠구미는 좁은 차에서 같이 대화를 나눕니다. 츠구미가 내리고 대화 속 남자가 자신의 전남자친구인 걸 깨달은 메이코는 조금 더 넓은 공간인 카즈키의 회사로 쳐들어가죠. 거기서 둘은 서로 밀고 당기며 대화를 하다가 해당 에피소드의 마지막 공간인 까페로 갑니다. 까페는 카즈키의 사무실보다는 더 협소하지만 외부가 훤히 보이는 창가에 두 주인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창밖으로 지나가던 카즈키가 메이코와 츠구미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오고, 나중에 메이코는 그 까페 밖으로 나갑니다. 마지막에 메이코는 도시의 탁 트인 전경을 자기 핸드폰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닫힌 공간에서 점점 넓고 열린 공간으로, 그리고 외부로(혹은 외부로 향하는 통로가 큰 곳으로) 메이코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의 그 도시 전경을 보면 탁 트인 느낌이 들죠. 메이코가 닫힌 공간안에서 츠구미 혹은 카즈키와의 대화에 사로잡혀있다가 드디어 탈출했다는 듯이.
이 에피소드는 감정적으로도 조금 이상한 파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카즈키와 메이코는 이미 헤어진 사람들입니다. 메이코는 난데없이, 헤어진지 2년 된 전남친 카즈키를 불쑥 찾아갑니다. 이 움직임에서 관객은 일반적으로 '전남친인 카즈키에게 분노이든 억울함이든 그리움이든 어떤 충동적 감정이 사무쳤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런데 메이코가 카즈키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추측을 해본다면 보고 싶어지긴 했는데 막상 보니 또 그리울만큼은 아니었다고 자기 감정을 확인하는 정도? 그리고 메이코는 까페에서 망상씬에서 절친 츠구미에게 파탄나는 고백을 해버리죠. 미안하지만 내가 이 사람의 전여친이었고 다시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감정이 있고 그 감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이고 나서 감정이 뒤따라오는 이야기입니다. 다행히도 그 망상씬 다음에 바로 현실씬이 붙어있고 거기서 메이코는 츠구미 카즈키 커플을 떠납니다. 그래서 그 탁 트인 정경을 보면서 메이코의 감정이 정리가 된 것같기도 합니다. 내가 끝까지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메이코의 상상 속에서 친구를 잃고 전 애인도 완벽하게 잃는 (혹은 그 커플도 괜히 부숴버리는) 그 결말을 통해 메이코는 순순히 포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게 자신만의 변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지도요.
이 공식을 뒤의 두 에피소드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두번째 에피소드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열려있지만 밖에서만 보던 공간을 주인공이 들어가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닫힌 공간을 만들려고 하지만 세가와 교수가 기어이 문을 열어두면서 강제적으로 열린 공간이 되어 그 둘의 은밀한 시간은 은밀하게 되지 못하죠. 어쩌면 이 열어둔 문 때문에, 그 둘의 이상한 비밀은 다른 곳으로 엉뚱하게 새어나간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열린 강의실이어서 어색한 만남 속에서도 나오와 세가와 교수는 자신의 아픔이나 충동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세번째 에피소드 '다시 한번'에서 모카와 코바야시는 서로 착각한 채로 코바야시의 집이라는 닫힌 공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착각임이 밝혀졌을 때, 집 밖인 열린 공간으로 다시 나오려 하지만 그 때 택배기사 때문에 모카는 그 집에 다시 머무르게 되죠. 그들이 나란히 창밖을 보면서 서로 착각했던 인물이 앞에 서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시간이 지난 후 외롭고 어딘가 공허한 현재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열린 공간인 육교에서 모카가 상황극을 하면서 '노조미'란 이름을 떠올리게 했을 때, 그들은 비로서 망각 혹은 기억에서 풀려난 것처럼 보입니다. 점점 더 열린 공간으로 향하는 인물들이 별 논리적 이유 없이 충동에 따라갔다가 결국 무언가를 채우고 자신은 해방되는 그 이야기는 좀 곱씹어볼 만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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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시면서 공간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보셨네요. 이번엔 안 졸으시고 ㅎㅎ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는 말이 최근 어떤 사람이 사용해서 오염된 느낌이 들지만 의식하든 안 하든 나약한 인간에게 당연한 말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