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생각이 들었던 이틀이었습니다, 투표 거부 건이 화제가 되었을 때부터요,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듀게 분위기를 보아하니, 침묵할 수가 없더군요, 듀게질 7년만에 3번째 탈퇴 충동이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네, 탈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 사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집에 오면서 출구조사를 듣고 써도 되겠다 싶었죠, 축제 분위기에 어차피 묻혀버리거나 악플 몇 개 달리고 끝날 글이겠지만, 이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듀게의 정치적 성향이 저한테 100%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제 개인적 평가는 듀게는 리버럴한 곳이고, 평균적으로 중도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정도에 불과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비록 제 정치적 성향에 들어맞지 않을지언정 7년동안 듀게인들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상식을 가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분들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페이지가 넘어가면 다시 웃을 줄 아는 분들이라고요,

 

- 글쎄요? 최소한 하루간은 그 평가가 흔들린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 그것도 적어도 같은 진영에 서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비아냥과 배려 없는, 이해심이라곤 1g도 찾아볼 수 없는 글들과 리플이 난무하는 것에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제가 잠깐 정치판에 몸 담았을 때 보아왔던, 환멸을 느껴서 그곳을 떠나게 했던 그런 모습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 사람에게는 자신과 다른 모습(외형이든 생각이든)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네, 사실입니다, 우리는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믿음이 깨지는 것보다 유지되는 것을 좋아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록 죽더라도 고수할 수 있는 괴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그 유전자는 학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 나갈 수 있으며, 비록 수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굽히거나 유보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 변방의 푸른별에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위에 열거한 것들이 가장 중요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현실적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앞서 벌어진 논란은 사실 이름만 바꿔서 되풀이되는 '선거철의 악몽'에 불과합니다, 이미 진보진영은 이 문제로 몸살을 앓았고, 또 앓을 예정입니다, 설마 앞서 투표 독려하신 분들, '한나라당 찍어도 상관 없으니까 투표만 해다오', 이런 바람으로 투표 독려를 하신 분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 즉- 이것은 범야권이 진보(좌파)진영에 요구하는 희생의 축제의 막간극에 불과합니다, 여기까진 좋습니다, 적어도 범야권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면 '반한나라당'이라는 가치를 무작정 무시하고 보는 사람은 소수에 그치겠지요, 문제는 '선택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는 제가 알기로는 '방종'에 가깝게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듀게에서든, 제 주위에서든, 언제나 뼈를 깎는 고민과, 진지한 사유의 결과물이었지요, 그 자유를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다'라고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자유를 행사한 사람들도 그 정도쯤이야 예상한 바일테고요, 그러나 언제나 반응은 감정적이고, 일차원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아냥은 기본 옵션이었고, 한 줌도 안되는 삐딱이들,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집단, 자신의 이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수자들이라고, 마치 '만고의 역적'이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북에 있는 어떤 괴뢰집단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며 내부의 반대자들을 숙청하거나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해 먹던 어떤 분이 생각나더군요, 그렇습니다, '한나라당'이라는 만악이 존재하는 한, 야권의 표는 하나로 모여야 합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 그렇다고 제가 범야권 후보에 표를 던지는 '전략적 선택'을 때려치우라고 초를 치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한국적 현실, 역사에 비추어 그것이 현재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잘 압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빵이 우선이지 몇 년 뒤의 안락한 삶이 아닌 것처럼요, 다만 현재 투표를 독려하는 스탠스를 가지신 분들(마땅한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군요)에게 제가 아쉬운 것은 왜 그 '전략적 선택'을 개인의 양심이나, 신념, 혹은 의지에 비추어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간극을 좁혀서 어떻게든 같이 끌고 갈 생각은 못하고, 저주에 가까운 욕을 퍼붓는 것인지, 그 점입니다, 재보궐에서 이 모양인데, 2012로 다가온 선거들은 또 어떻게 치른단 말입니까? 그 때마다 우리는 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비난전과 육탄전을 되풀이 해야 하나요? 전 그들이 도대체 진보(좌파)진영을 같은 편으로나 보고 있는지 그게 의심스럽습니다, 표를 주면 이쁜이이고, 주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쳐야 할 미운오리새끼입니까?

 

-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 희화화되어 사용되어 그렇지 피억압자들에게는 한 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격언이었습니다, 아직 부르주아들이 지배권을 봉건영주들에게서 완전히 빼앗지 못했을 때, 부르주아들은 누구보다 더 민중들과 함께 한다고 소리치며 손을 내밀었죠, 그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았을 때 민중들에게 했던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굳이 적지 않아도, 근대사를 조금만 공부하신 분이라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적어도 현재 고민하는 분들은 역사에서 배웠고, 그것을 현실로 체감했기에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과 생각이 그렇게 맘에 안든다면, '그 놈이 그놈이여 보이지 않게' 행동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진심은 언젠가 통합니다, 언제까지 '차악'론이나 입으로 떠들지 말고, 그 '차악'이 얼마나 '최악'보다 나은지 그것을 보여달라 이 말입니다, 구구절절 '현실론'이나 들먹이며 변명으로 연명하지 말고요, '현실론'은 구한말부터 친일파가 떠들어대던 순간부터 귀에 신물이 나도록 들었으니까요,

 

-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 '전략적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행사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욕을 하기보다 주위의 정치무관심,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게 훨씬 더 나은 선택입니다, '투표하지 않을 자유'는 적어도 자신의 선택에 고민이라도 하지만 정치무관심자나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고민을 하는 시간에 눈 앞의 이득에 사로잡혀 있을 공산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득이 얼마나 환상에 불과한지, 무관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는지 보여주기만 하면 우리 편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있지요, 네, 제가 보기엔 앞선 논란에 참여한 열정의 10%만 쏟아 부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 물론 제가 쓰는 이 넋두리는 투표 거부가 마치 '쏘쿨'한 것처럼 여기고 투표 하는 자들을 비웃는 자들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바로 그런 정치무관심자들이야말로 '비아냥'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겠지요,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야말로 '강제투표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타이밍에 '강제투표법'을 들고 오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투표에서 쓸 만한 선택지가 매우 적은 한국에서, 그 법이 실행된다 한들, 정치무관심자들에게 얼마나 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말입니다,

 

- 그리고 덧붙여, '투표 거부'를 고민하신 분들께, 1세기 전부터 좌파는 언제나 동서를 막론하고 이와 비슷한 투쟁의 가시밭길을 걸어왔습니다, 크나큰 좌절이나 시련도 있었지만 좌파는 언제나 낮은 곳에서 행동하며, 공부하고, 웃고 울며 성장해왔습니다, 그들은 결코 투표거부를 하나의 의사표현으로 끝내지만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와, 억눌린 자들의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대표하려 노력해왔습니다, 파업, 공장점거, 무장투쟁, 징집거부, 단식, 저술, 선전, 교육, 등등, 심지어는 연애까지도 말입니다, '투표 거부'가 저들에게 비아냥거리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에서의 싸움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투표나 선거를 거부하는 많은 좌익세력들이 왜 직접행동으로 사회를 변혁하려 하는지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투표 거부'는 무관심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점만 유의한다면, 지금 쏟아지는 많은 비난들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호소하겠습니다, 패배감에 젖지 맙시다, 시스템을 의심하되 당신 옆의 동지를 믿으세요, 현재보다 미래를, 자신의 선택을 맹신하지 말고, 끊임 없이 변화할 것, 이렇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을 때, 비로소 진보(좌파)진영에게 하나의 빛줄기라도 내비치겠지요, 그것이 제 희망사항이자,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투표 거부의 논란에 대한, 역사적으로 본 아나키스트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볼까 싶었는데 오늘은 벌써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습니다,그 또한 기약 없는 미래의 희망 하나로 남겨놓기로 하지요, 여러분 모두 좋은 밤 되시길, 어쨌든 순간은 승리를 즐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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