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많이 하시나요

2012.09.26 11:23

토마스 쇼 조회 수:3399

오래된 버릇인데, 혼자 있을 때 자꾸 말을 해요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혼자 있어도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는 둥 그런 말을 가끔 하는데 (써놓고 보니 슬픈 이야기? 또르르 )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 나를 두 개 혹은 그 이상으로 분열;시키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어떤 소설을 썼는데, 전쟁고아가 화자인 심리소설 같은 거였어요.

거기서 장을 나누는 기준은 문체였어요.

1장은 가장 충동적이고 극단적이고 자아를 있는 힘껏 드러내는 문체로, '너'라는 타자에게 하는 말이었어요.

"내가 그리우면 날 다시 잉태해줘." 같은 문장들이요. 

대부분 여러 구가 한 문장 안에 놓인 매우 긴 만연체고요.

2장은 최대한 감정이 절제된, 화자의 심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죠. 대부분 단문이고요.

이런 류의 형식이 제가 쓰려던 내용에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그게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형식이라기보다는, 그냥 제가 사고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 어떤 의견;이 제시되면, 말하는 나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요.

그러면 또다시 머릿속의 다른 어떤 시각에서 평가되고요, 계속 교차돼요.


제 혼잣말 버릇을 분석해봤을 때 그런거 같고요,

아무튼 혼잣말은 굉장히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고, 혼잣말하고 있을 때의 나는 내가 혼잣말하는 것을 몰라요.

제가 느끼기에 그것들은 전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거든요.

실제로 입술을 움직여서 발성;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들어요.

문제는 이게, 진짜 혼자 있는 공간에서 하고 있으면 어차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건데,

곁에 누군가가 있을 때조차 혼자 있는 것처럼 제 생각에 막 빠져든다는 거예요.


지인들과의 모임이라든지,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라든지, 뭐 그럴 때도요.

뭔가 깊이 골똘하게 되면 불쑥 말이 튀어나와요. 근데 전 그걸 몰라요;

다른 사람이 보면 굉장히 이상해 보이겠죠, 아마. 


대체로 말만 들었을 때는 좀 무서워보일만한 말들이예요.

전혀 일상적이지 않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저의 성격이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잠들었을 때 꿈 속의 내가 할 법한 기묘한 말들이요.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할 때 특히 그렇고요.

앞서 썼던 소설을 구상할 시기에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죽여버려"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다녔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설 속 화자의 심리가 내면화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친구가 섬뜩한 표정으로 절 쳐다보면 아, 내가 또 중얼거렸구나, 하고 깨닫는 거예요.

사람들이 저한테 직업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또 소설 쓸 때만 그런 것도 아니고,

버스라든지 카페에서 낯선 이들에게 속마음을 들키는 일도 많아요; 그 사람들은 그냥 거기 앉아있을 뿐인데 제 중얼거림을 듣고 섬찟;

최근에 받고 있는 스트레스랄지, 요즘 나의 감정상태를 알 수 있을 법한.


요즘엔 제가 너무 안 예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고 있어서 훌쩍.

자신감도 없고,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자괴감이 드는, 뭐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난 너무 뚱뚱하고, 못 생겼고, 피부도 더럽고, 말도 잘 못하고, 사회생활도 못하고 등등등등. 

원래 그런 편은 아닌데, 그냥 요즘 일이 너무 힘들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마인드컨트롤을 하게 되는데, 그런게 또 혼잣말로 나와요.

오그라들 것 같은 자기위안이요; 아씨 나 완전 이쁘다, 뭐 이런?

어제 운동 끝나고 샤워하는데 또 중얼중얼 거울보면서..........우와 장난아냐 미모가 왜이래. 이런 류의 말을 한 듯..........

근데 그걸 또 대화식으로 맞받아치면서 계속 혼자 주거니받거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 빵 터져서 자지러지길래 깜짝 놀랐어요- _-

집에 와서 수치심에 냉장고 안에 얼굴 박고 싶었답니다 훌쩍.


스스로 내 혼잣말이 좀 심각한 편이라고 생각해오긴 했지만,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줄 만한 일은 없었고

특히 골몰할 때 구상할 때 더 심해지는 건 정말이지 직업병;같아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어제 그 사건에 충격을 받아서- _- 어떡하지 이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이어폰 끼고 있을 때 의식적으로 입을 꾹 다물려고 하는데, 이게 또 어느샌가 머엉 풀어져서 잘 안돼요.


근데 주변 얘길 들어보면, 혼잣말 버릇은 굉장히 보편적인;것 같더라고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가끔씩 중얼중얼 한다더라고요.

친한 친구는 저한테, 속마음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아이라며, 저의 마음을 알고 싶으면 카페에 앉혀놓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 쥐어준 다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된대요;;;


아무튼, 일하다 막간에 바낭성 수다 작렬했네요. 점심 맛나게 드세요.

(글 쓸 때마다 이런 어색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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