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 글+코코아이야기

2012.10.25 19:11

violinne 조회 수:1475

 

바람이 쌩쌩 불었다. 서늘하고 매운 손이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통에 거리의 남자들은 까치집이 되어버린 무스바른 머리를 수습하느라 두 손이 분주했고, 여자들은 윤기나는 말갈기를 휘날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걸었다. 그 쌀쌀한 바람 속으로 겨울 새 한마리가 날았다. 부리가 날렵한 검은 새였다. 새는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길 가에는 아직 노란색을 조금 밖에 준비하지 못 한 은행나무가 동그란 은행을 오소소 떨어뜨리고, 얼룩덜룩한 전단지가 세차게 펄럭이며 흡사 방패연처럼 창공을 향해 높이 솟구쳤다가 이내 발치를 맴도는 것이었다.

 

등산복 아웃도어 대방출.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불을 기다리며 새처럼 날아오르는 전단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 칼바람을 뚫고 더벅머리를 한 채로 영화관까지 뛰어 가는 일이 어쩐지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영화 따위는 포기하고 따뜻한거나 먹자. 속을 핫하게 데워줄 코코아가 좋겠다. 

카페는 따뜻했다. 주인이 애묘가인듯 카페 곳곳에 고양이 사진이 붙어있었다. 노란 줄무늬 고양이, 온몸이 까만데 발만 하얀 고양이, 회색 새끼 고양이... 아이고... 눈물겹도록 귀여운 것들아.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주문한 코코아가 나왔다. 코코아는 유난히 까맸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질 좋은 다크 초콜릿을 듬뿍 넣었기 때문이란다. 우유의 깊고 부드러운 맛과 달달하면서도 알싸한 다크 초콜릿의 풍미가 감미로웠다.

빈 잔을 앞에 두고도 일어나기가 싫어 미적이다가 가방을 뒤져서 <부도덕 강좌>를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부도덕 강좌>는 미시마 유키오가 잡지에 연재한 글을 엮어서 책으로 만든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라고? 그 할복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 맞다.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부르짖으며 자랑스럽게 제 배를 가른 그 소설가가 맞다.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하기 10여년 전인 1958년 처음 연재된 <부도덕 강좌>는 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아도 꽤 충격적인 교훈들을 담고 있다. 예컨데 이런 것들이다. 작게는 '남을 기다리게 하라', '매사에 투덜거려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부터 크게는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 '약자를 괴롭혀라', '죄는 남에게 덮어씌워라', '악덕을 많이 쌓아라' 까지 60여 가지의 부도덕한 교훈들로 가득하다.

 

논리는 정연하고 유머는 넘친다. 그 중 <수프는 소리 내서 먹어라>를 보자.

 

"에티켓이란 속되고 천한 것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수프를 마시는 것은 대단한 사회적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다. 품위라는 것은 최대 다수가 결정하는 것으로, 비록 천만 명이 결정했다 해도 나는 따르지 않겠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양이 아니라는 사실을 첫 번째로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수프를 먹는 괴상한 소리인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쉽게 집단에 동조하는 양이 되지 않으려면 수프를 먹을 때 거리낌 없이 훌훌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단다. 된장국을 홀짝거리는 동양인들이 수프를 먹을 때는 억지로 서양인 흉내를 내는 것이 허영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산지석을 버려라>에서는 더욱 부도덕한 교훈을 설파한다.

 

"모든 전형적 범죄, 극단적인 형태의 범죄를 표준으로 삼아 자신의 사소한 비행을 정당화하는 것이 현대의 풍조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범죄자의 재능이나 용기를 타고나는 것은 아니므로 사람들은 기껏 악인인 체하는 것으로 겨우 자신을 달래는 게 고작이다.

나는 이런 풍조도 무조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는 큰 범죄도 인간이 지닌 에너지의 산물이라며 존경하기까지 했다. 왕후는 독살을 일삼았고 천재는 곧 악한이었다. '선을 향한 질서'가 있듯 '악을 향한 질서'도 있으므로, 완고한 도학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악이 직접적으로 사회 불안과 사회적 무질서를 초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반대로 악이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경우도 있다.

(중략)

이 세상에 부정적인 면이 없는 드라마란 없다. 옛날 이야기에도 반드시 악인은 나오며, 그림 동화에도 잔인한 장면은 항상 등장한다.

(중략)

나는 오히려 악한이 반드시 이기는 영화나 텔레비전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악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게끔 해야 한다."

 

 

이처럼 악을 옹호하는 미시마 유키오는 어떤 인물일까?                       

 

20세기 일본의 최고 작가로 불리었던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 25일 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하얀 천을 머리에 두르고 자위대의 각성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배를 갈랐다. 곧이어 뒤에 서 있던 한 청년이 기다란 일본도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일본이 발칵 뒤집어지고 세계가 경악을 했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 다섯. 급진적인 우익 보수주의자였던 그는 전도 유망했던 문학의 노정을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미시마 유키오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가로 1925년 도쿄 정부 고위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불과 10대에 <꽃이 만개한 숲>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금각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탐미문학의 거봉으로 평가되고 있는 <금각사>는 미(美)에대한 극단적인 집착과 탐닉, 파멸을 향해 타오르는 젊음의 불꽃이 아름다운 감수성으로 형상화 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미시마 유키오의 의식 속에는 미와 질서를 추구하는 고전주의의를 향한 의지와 광기에 가까운 낭만주의가 서로 자웅동체처럼 동거하고 있다. 기묘하게 어울리는 이중성과 격조 높은 문장들은 그의 파시즘적 이념과는 상관 없이 대체로 위대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한국에서 역시 그의 광적인 행동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민족적 감정의 응혈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소설가로서의 면모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아있다.

 

 

불과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와카마쓰 고지 감독이 만든, 미시마 유키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11.25 자결의 날>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유명한 좌파 감독인 와카마쓰 고지 감독은 미시마 유키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젊은 작가인 그가 무엇을 위하여 그런 길을 갔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아름답게 만들어져 좌파 감독이 만드는 미시마 유키오 영화에 우려를 표했던 우익 쪽으로 부터 감사하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다.

 

 

만약 미시마 유키오가 그 때 자결하지 않고 제 명을 다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파시즘적 제국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도 의문을 가지고, 회의하고 , 또 회의하고, 성숙해지고, 변해가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단지 가정일 뿐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개인 공간에 썼던 글이라 게시판에 올리기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또 별 연관 없는 글인데 오랜만에 컴퓨터로 쓴 글이라 그냥 올렸어요.

전 지금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고 있어요. 바로 핫초코 미떼요~ ♥ 핫초코 미떼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시나요?

제가 겨울을 기다리는 거의 유일한 이유가 겨울엔 코코아(핫초코라고 해야 하나욤,,,)랑 율무차랑 녹차라떼 등 따뜻한 차를 많이 마시기 좋은 계절이라는 거거든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저로서는 몇 년 전부터 늘 이맘때면 장을 보러 가서 율무차를 팩으로 사놓고 미떼도 서너 통씩 사고 녹차라떼도 한두 통 사놓는답니다.

제가 지금 마시고 있는 미떼는 오리지널 미떼인데요, 카카오 미떼도 마셔보고 모카 미떼도 사봤는데 역시 오리지널 만한것이 없더라고요.

가장 맛이 달콤하고 풍부하고... 단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가장 만족스러워요. 모카미떼도 나쁘지 않았어요. 살짝 커피향이 나서 향긋하더라고요.

전 미떼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팬이라 다른 제품에 눈 안돌리고 맛있다고 소문난 수입 제품도 안샀어요, 그게 참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창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사춘기 겨울에 학교 다녀오면 가방만 얼른 내려놓고 항상 큰 컵으로 미떼를 마시면서 만화책을 봤거든요.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고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어요. 그 진한 코코아를

마시는 순간 어느샌가 마음이 달달하게 풀어져 있는걸 자주 경험하면서 그렇게 저는 미떼 마니아가 되었답니다.

처음에는 맹물을 끓여서 타 먹기도 했지만, 물 대신 우유를 끓이면 놀랄만큼 맛이 깊어진다는 걸 알고난 이후로는

항상 물대신 우유를 넣어요. 저지방 우유 말고 보통 우유를 넣어야 맛이 더 진하고 고소하더라고요.

녹차라떼를 마실때도 우유를 끓이고 녹차라떼를 두 포 넣고 그 위에 녹차가루를 솔솔 뿌리면 그 맛이 또 그렇게 기막힐수가 없어요.

한번은 친구에게 끓여줘봤는데 카페에서 파는 것보다 훠얼씬 맛있대요.

이제 정말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요. 겨울엔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보다는 보일러를 켜 놓고 바닥엔 방석을 깔고 찬바람이 휭휭 부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게 좋아요. 그럴때면 창밖의 풍경이 그림같아보여요.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으면 외로운데 또 행복하기도 하고...

하... 마음이 허하네요. 아무래도 저는 코코아 한 잔 더 끓여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모두들 코코아처럼 따뜻하고 달달한 저녁 보내세요.ㅎㅂㅎ//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9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62
65916 문재인 일화, 뭉클했습니다. [44] 늦달 2012.10.25 7258
65915 선진당과 새누리당이 합당했습니다 [9] bulletproof 2012.10.25 2985
65914 [듀나in] 발레에서 스페이싱이 무슨 동작이고 한국어로는 어떻게 번역이 될까요? [3] kct100 2012.10.25 1807
65913 [바낭] 식사 메뉴로 보는 대선 [5] 빠삐용 2012.10.25 2109
65912 [듀나in] 안드로이드폰 중에 현재 공짜폰(?)이라고 불리는것들이 어떤게 있나요? [7] 유은실 2012.10.25 2074
65911 김장훈 신곡 '없다' 뮤직비디오 참 실속없는 것 같아요. [10] ZORN 2012.10.25 3591
65910 [바낭]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하나만 꼽으라면?? [40] 아몬드 2012.10.25 3145
65909 이제훈 오늘 입대했네요 [11] 이솔2 2012.10.25 3560
65908 LG PDP 내부 유리 크랙. 정녕 방법이 없는걸까요? JYo 2012.10.25 1154
65907 밥 딜런 옛날에 노래 부르는거 [2] 가끔영화 2012.10.25 908
» 일상성 글+코코아이야기 [2] violinne 2012.10.25 1475
65905 야구 잡담 [3] herbart 2012.10.25 1210
65904 그래서 와퍼 주니어는 어떻게 됐는가 [6] 안녕하세요 2012.10.25 3641
65903 [바낭] 방금 소녀시대 제시카 봤어요... [8] 아니...난 그냥... 2012.10.25 5235
65902 신경민 습격 사건. [6] Jager 2012.10.25 3617
65901 (바낭) 심심해서 써보는 연식 인증 2222 [7] 살구 2012.10.25 2393
65900 나바론2는 다시봐도 물살이 너무 약해 [3] 무비스타 2012.10.25 1357
65899 가장 많이 영화로 만든 소설은 어떤걸까요 [17] 가끔영화 2012.10.25 2696
65898 [주중바낭] 여러분은 회사에 개인 옷을 비치해놓으셨나요? [3] Weisserose 2012.10.25 2392
65897 youtube 11곡 [2] 축구공 2012.10.25 103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