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김치이야기

2012.10.26 22:48

쇠부엉이 조회 수:2625

아들네미 겨우 재우고 무심코 티비를 트니

1박2일 시즌1? 재방송 중에 김치로드를 두 편 연속으로 해주네요.

그걸 보다못해 결국 이 시간에 밥통을 열어서 1. 5인분 남짓 남은 밥을 죄 퍼서

시어머님이 얼마전에 보내주셨던 파김치와 냠냠 해버렸습니다.ㅡㅜ;;크으..다여트는 무슨...

밥 다 먹을뻔한걸 겨우 1인분으로? 그쳤어요. 헤유..

안그래도 남편이 야근이라 집에서 저녁을 안먹는고로...

간만에 아들놈 간식삼아 만든 핫케익이랑 우유로 저녁을 때운것도 한몫했겠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저는 경상도쪽이 친정이고 전라도집안으로 시집을 왔어요.

아직도 시어머님이 걸쭉하게 사투리로 말씀을 하시면

그 중 70%정도만 알아듣는거 같습니다.ㅜㅜ;;남편한테 확인해봐야 되요

그외에도 음식이 참 많이 친정과는 다릅니다. 물론 어머님은 음식을 꽤 잘하세요.

원래 전라도분들은 다 음식 잘하는건가? 착각이 들만큼요.

일이 바쁜 저희 엄마대신 늘 김치를 담가 나눠주십니다. 그것도 종류별로 배추지, 파지(전라도에선 김치를 ~지 라고 불러요)

갓지, 열무김치 알타리무김치..등등 정말 감사히 먹고는 있는데

문제는 파지, 파김치인겁니다. 달달해요?!

저희 친정에선 파김치에는 마늘도 안넣고 젓갈과 고춧가루만 넣어 사뭇 거칠게? 담가 먹거든요.

그렇게 담가 푹 익혀먹는 파김치에 익숙한 저로선....저 달달한 시어머님식 파김치는 정말 못먹겠는 겁니다

설상가상 저희 친정에선 김치에 설탕이나 뉴슈가 절대 안넣거든요. 매실청이나 좀 넣는게 고작인데...

제가 손이 안가서 늘 밥상에 올리는걸 잊다보니 너무 익어 못먹고 버린 파김치가 꽤.......(어머님, 죄송해요ㅜㅜ)

 

그러던 어느날, 지지난주에 또 김치가 배달됬어요. 어머님 김치.

역시나 예의 그 파지가 알타리무김치 위에 얹어져서 왔네요. 어쩌나...이번엔 남편에게라도 열심히 먹여봐야지 했어요

근데....아가와 종일 씨름하느라 엄청 피곤했던 며칠 전, 겨우 아들놈 재워놓고 늦은 저녁을 먹는데

무심코 파김치를 입에 넣는순간.....오오오오....

순식간에 밥 한그릇 뚝딱! 연이어 다시 한그릇 싹 다비우고 보리차를 마시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피곤에 쩔고, 인스턴트나 시리얼에 쩐 제 빈곤한 입에

약간 단맛이 나는 파김치, 정말 입맛 돋구더라구요. 오오 왜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지!! ㅜㅜ

이제껏 이 맛나는 별미를 통째 갖다 버렸단 말인가...오 마이....

그렇게 방금도 먹어치운 파김치...불행히도 반도 안남았어요. 흑.

사람 입맛 참 알다가도 몰라요.허.

 

그렇지만 친정엄마표 친숙한 김치맛이 그립지 않은건 아니에요.

저 다양한 김치들을 보고 있자니

김치에 매실청이나 조청정도만 넣고 만드는 엄마표이자 경상도식의 우직하고 깔끔한 김치맛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어릴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 아파트보다 많았던 시절(전 국민학교 세대)

저희잡 마당엔 겨울이면 아빠가 곡괭이로 땅을 파셨고

엄마는 큰 독에다 배추김치를 한가득 담아 묻으셨죠.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파김치 총각무김치..굴깍두기..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았고 그리운건

제일 큰 독에 김장때면 꼭 담으시던 동치미에요. 아 너무 그리워요. 지금도

맨먼저 금방 시어지는 배추부터 건져 부침개도 부쳐먹었어요. 동치미김치로 만든 김치전맛! 먹어본 사람만 알죠^^

그리고 겨우내내 건져먹던 무우와 그 시원한 국물..으으

결혼하고 아기 갖고서 정말 가장 먹고싶었던게 그 무우와 국물이었어요.

그치만 일도 하시고 이미 예전 입맛을 다 잃으셨다 자처하시는 고령의 엄마께

아기가졌다는  핑게로 동치미 담가달라기엔....그건 너무 고됐었어요. 어린날의 내 기억으로도.

그렇지만 그 비슷한, 정말 제대로 무우 통째 굵은 소금에 굴려

땅에 묻은 독에 담근 동치미를 다시먹게 된다면..어쩐지 눈물이 날것같은 기분이네요.

어릴적의 엄마가 해주는 음식의 힘은 정말....

(울 아가는 오늘 허겁지겁 좋다고 먹은 엄마표 핫케익을 이렇게 기억할려나??)

 

그리고 특이한 김치하나.

아직 아들이 생기기전, 신혼부부였던 저와 남편은

새해전날, 해돋이를 보자 결심하고 해남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날씨가 너무 궂었어요. 눈보라가 막 치고 바람이 휘날리고

길은 모두 얼어 차바퀴가 공회전하는걸 몸으로 느낀 첫날이었거든요...

남편과 저는 온 신경이 곤두서 그 언 길을 느릿느릿 운전해 겨우 예약해둔 모텔에 도착은 했는데

제가 지도를 착각해 해돋이를 보려면 그 모텔에서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날씨만 좋다면 새벽에 일어나 가면 그만이지만

지친몸을 이끌고 저녁먹으로간 식당의 주인은

넘어갈거면 초저녁인 지금 가야된다는 겁니다 밥엔 너무 위험하대요.

그치만 지금 땅끝마을에 도착하면 당연히 숙소따윈 없을거고

이미 둘 다 파김치마냥 지쳐서

해돋이고 뭐고 밥 먹고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 곯아 떨어져버렸답니다.ㅜㅜ;;

 

다음날 아침조차 느지막히 일어난 저와 남편은

커피 한잔 대충 마시고 차를 몰아 드디어 그토록 힘들게 찾아온 땅끝마을 바닷가에 도착합니다.

이미 해돋이행사가 다 끝나고 인파도 다 빠져나가 조용하고 한적해진....그냥 평범한 관광지더군요

둘이 쓴웃음을 짓다가 배가고파 늦은 아침겸 점심 먹으러 근처 아무곳이나 들어가요

(저희부부는 이렇게 아무데나 발길닿는데로 들어간 식당이 대박인 경우가 꽤 많아요..문젠

덕분에 식당이름도 잘 기억 못한다는거..다시 찾아갈수는 있는데 말에요.ㅡㅡ;;)

거기서...제가 태어나 가장 맛있게먹은 갈치조림을 만났네요^^ 우와!!

근데 또 별미인게..따라나온 김치에요. 무김치.

깍두기보다 더 큼직하게 썬 무김치인데....고춧가루를 안썼어요,

너무 맛있어서 그릇을 다 비우면서 관찰한 결과 그냥 풋고추와 홍고추를 갈고 소금과 젓갈로 간을 한 거 같았어요.

너무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나서...정말 맛있게 먹었고

두고두고 그 김치가 생각이 나서 두 번이나 재현해보려고 했는데 허탕...ㅜㅜ

그러다가 한달전 겨우 비슷하게 성공!?^^ 다만

너무 짜게 되서..ㅜㅜ;;;;멸치육수 내서 다시 부어야 맛나게 먹을거 같아요.너무 짜서 쉬어버리지도 않고 그대로 있네요.

그래도 남편이 맛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성공한거..겠죠??

 

어쩌다 1박2일 김치로드를 보다가 이렇게 길게 수다를 떠네요.

 

잠깐 아들네미 얘길 하자면

인제 15개월 막 지난 녀석이

기면서 비틀비틀 걸으면서 마루에서 뭔가를 줏어다

제게로 다가와 뭘 손에 쥐어주네요?? 이게 뭐지??

그것은 제가 바닥에 흘린 제 머리핀이었어요.

이 조그만 녀석이 뭘 안다고..  제 손에서 머리핀을 집어들고 제 머리에 갖다 댑니다.엄마더러 이거 하래요.

가슴이 뭉클한거 있죠.

요 조그만게...안제 겨우 태어난지 1년 조금 넘은녀석이

벌써 사람구실을 하려 듭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육아..그치만.뭐랄까.

아.뭐 표현할 말을 못찾겠네요.

그치만 아이들은 너무나 빠르게 자라는거 같아요.

이녀석이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누워있기만 하던게 엊그제같은데

 

 

간만에 들어와 수다 대폭발이었습니다.

다들 좋은 밤 되세요.

오늘처럼 녀석이 일찍 잠드는 밤이 좀 더 앞으로는 많아질려나??

 

푸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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