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맞는 감독이 있나봅니다

2022.05.28 17:18

Sonny 조회 수:1006

며칠전 신수원 감독의 [오마쥬]를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메세지나 완성도를 떠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주인공을 응원할만하고, 스토리도 명확하게 흘러가는데 도무지 감정이 동하지를 않습니다. 이게 단순히 재미있고 없고의 문제인지 속으로 고민하면서 보다가 엔딩크레딧을 보고 좀 납득이 가더군요. 그 특유의 처연한 톤은 신수원 감독의 것이니까요.

신수원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세편 봤습니다. [마돈나], [유리정원], 이번에 본 [오마쥬]까지 어쩌다가 보게 됐는데 그의 작품들은 흐름이 소설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느리다거나 서사 중심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중간중간 사건의 변화에 의해 인물의 감정이 변하는 걸 가장 중요시한다고 할까요.

이런 성질이 제가 볼 때 시네마틱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볼 때마다 영화가 늘어지고 축축한 느낌을 받습니다.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 생각해봤는데... 아마 영화(카메라)와 주인공 사이의 거리감 때문이 아닌지 혼자 추측해보게 됩니다. 신수원의 카메라는 주인공의 감정에 깊이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물이 안울어도 인물의 비극적인 사건을 비추는 카메라가 울고 있는 느낌입니다. 카메라가 엄청나게 주관적이고 관객보다 먼저 감정을 다 결정해놓은 것 같달까요.

이번 영화는 특히 그랬습니다. [오마쥬]의 주인공은 흥행에 실패한 여성감독인데, 그가 한국 두번째 여성감독인 홍은원감독의 [여판사]란 영화를 복원하려 애쓰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영화판에 거의 없다시피했던 여성감독인 홍은원에게 주인공은 이입하곤하죠. 여자가 무슨 영화냐... 집에서 밥이나 해라... 이런 소리를 본인도 똑같이 들으니까요. 그래서 영화는 주인공이 [여판사]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곱씹는 구도가 반복됩니다. 아 홍은원 감독님 당신도 힘들었겠군요, 왜 시대가 흘렀는데도 저는 이렇게 똑같이 힘들까요... 저는 에 푸념의 반복이 드라마로 와닿지않더군요. 청승맞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영화의 화자에 신수원 감독 본인을 포함하면 영화는 더 구슬퍼집니다. 중년의 여성감독이, 거의 최초의 여성감독을 조사하는 이야기를, 중년의 여성감독이 하고 있는 이중의 액자구조가 되니까요. 그래서 그 배경이 여성영화인들의 고군분투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신수원 감독의 '저는 이렇게 힘듭니다'라는 자기고백을 돌려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작품이 독립적으로 와닿질 않더군요. 우회를 거듭한 자기연민처럼 느껴진달까...[유리정원]을 보면서도 느꼈는데 신수원 감독의 캐릭터들은 자기자신을 너무나 애처로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럴 때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게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면 좀 힘들더군요.

차라리 다큐멘터리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코메디같은 다른 장르적 장치들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다 사후약방문이겠죠... 어쩌면 신수원 감독의 작품과 지금의 저 사이에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취향의 강이 흐르는건지도 모르고... '미친년'이 사방팔방 날뛰며 파란을 일으키는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 신수원 감독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애달프기만 해서 좋아하기가 힘듭니다...

@ 바로 전날 멀찍이서 뻔뻔하게 관망하는 에릭 로메르 영화를 봐서 그럴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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