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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걸작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시 기획전으로 개봉을 했다 하여 보고 왔습니다. 한 4년전쯤? 이 영화를 트위터에서 떠드는 걸 보고 그냥 이자벨 위페르가 나오는 옛날 영화라고만 생각하고 봤다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었는지요. 성큼성큼 나아가는 영화의 전개와 느닷없이 벌어지는 클라이맥스의 사건에 내적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 혼란스럽고 허망한 기분을 어쩌지 못해서 계속 얼떨떨하게 있었죠. 이번에는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자는 마음으로 봤습니다. 이자벨 위페르는 정말 여전히 또라이같고 좋았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구요.


영화는 캐서린이 소피를 하녀로 고용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딱 봐도 캐서린은 교양이 배어있고 자기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고용조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소피는 자기가 피고용인이자 하녀로 일한다는 자각은 있지만 묘하게 딱딱하고 대답도 좀 시원치 않습니다. 특히 그의 이상한 말버릇인 "글쎄요"는 분명한 답을 요구하는 고용인의 입장에서는 별로 마뜩치않은 대답처럼 들립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명확하게 말을 해야할텐데 말이죠. 물론 이것은 소피가 자연스레 익혀온 처세일지도 모릅니다. 이후 영화에도 나오지만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의 분명한 주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자유로운 선택을 제공하는 것 같아도 이미 고용인들에게는 더 마음에 드는 답변이 있습니다. 이후 영화는 이 부자유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이 영화를 보면 초반부에는 딱히 미심쩍은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피는 그냥 좀 특이한 사람이다 싶을 정도고 캐서린은 그런 건 별로 신경안쓸만큼 넉넉한 형편의 상류계급 여자로만 보입니다. 그럼에도 소피가 이전 고용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이력서를 보여주면서 거기로 전화해서 확인해보라고 하는 부분은 굉장히 철두철미하다고 할까요. 돌이켜보면 전화를 해보려고 해도 아마 전화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그 전 고용인이 살아있는지도 미심쩍습니다. 캐서린도 그냥 귀찮으니까 전화를 통한 확인은 안했을 것입니다. 영화에도 그런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 아홉시에 기차역으로 나오라고 했지만 소피가 기차에서 내리지 않자 캐서린은 초조해합니다. 그런데 건너편 플랫폼에 이미 소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의 만남은 시작부터 엇갈립니다. 이후 잔느가 캐서린의 차를 얻어타고 가면서 소피와 잔느는 처음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캐서린은 소피에게 남편이 저 사람을 싫어한다고 잔느의 흉을 봅니다. 그 적대감의 주체가 '남편'이라는 점에서 우리 가문은 저 천박한 계집을 싫어한다는 계급적 멸시가 느껴진달까요. 


영화는 중간중간 소피와 고용인 가족의 계급적 격차를 보여줍니다. 겸상이 안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어떤 식탁예절을 가르쳐야겠다느니 여행에 굳이 데려갈 필요가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당사자가 뻔히 들을만한 곳에서 대놓고 떠들죠. 그런 와중에도 큰 딸 멜린다는 그 사람을 '하녀'라는 단어로 부르면 안된다거나 하는 등 유일하게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입니다만 그 역시도 어쩔 수 없는 부르주아의 계급적 의식이 배어있습니다. 후에 가장 큰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 바로 멜린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멜린다를 이야기할 때 '위선'을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게 좀 부정확한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멜란다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흔히들 상류층의 '위선'이라고들 문제의식을 제기할 때 이들이 비판받는 것은 그 언행이 가짜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계급중심적인 사고에서 딱 어느 부분까지만 배려나 역지사지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계급의 문제를 선악의 문제, 혹은 인격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것은 가장 잘못된 해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냥 어떤 부분에서는 어떤 고통이나 수치심을 아예 상상하지도 못할 뿐이죠. 그리고 그런 한계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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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무뚝뚝하지만 일을 잘한다고 금새 고용인에게 호평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후 그가 가진 약점이 하나 드러납니다. 이 사람은 글을 못읽습니다. 그래서 캐서린이 쪽지에 메모를 남긴 걸 보고 크게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황급히 자기 방으로 가서 발음하는 법이 설명되어있는 책을 읽고 어떻게든 문자를 해독해보려고 하지만 그걸 읽지 못합니다. 여기서 카메라는 소피가 발음을 내려고 하닥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이내 좌절하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담습니다. 이것은 소피에게 아주 내밀하고 치명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멜린다가 그 쪽지를 우연히 소리내서 읽는 걸 듣고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잔느한테 찾아가서 전화기가 고장났다면서 대신 주문을 부탁하는 식으로 해결합니다. 


이 사람이 왜 문자를 못읽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아마 영화가 묘사한 걸로 봐서는 난독증이라는 병 같기도 합니다. 혹은 단순한 문맹인데, 그의 고집이나 유난히 그 부분에만 취약한 자존심 때문에 학습을 스스로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소피는 이걸 시력이 나쁘다고 둘러대고 도수 없는 안경을 맞춰서 얼렁뚱땅 넘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설정이 나온 이후로는 다들 긴장하게 되죠.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문자 읽는 능력을 꽤 자주 요구받고, 이걸 숨겼다가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무능력자로 취급받을테니까요. 아마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설정은 두 인물의 설정과 대조됩니다. 하나는 집 주인인 조르주입니다. 그는 큰 서재를 가지고 있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듯 보입니다. 그렇기에 소피와 조르주 사이에는 단순한 경제적 자본의 격차뿐 아니라 문자의 해독능력이 한 쪽에게 있고 다른 한 쪽에게는 없다는 또 다른 격차처럼 보입니다. 소피에게 문자의 해독능력이 '없다'고 치부해도 괜찮을지 고민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잔느의 존재입니다. 이후 친구가 되는 잔느는 책읽는 걸 좋아하고 우연하게도 잔느에게 이런 저런 정보를 들려줍니다. 이 대 소피가 문자를 못읽는다는 성질은 큰 단점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잔느는 무슨 책이 재미있으니 읽어보라고 오지랖을 떨지도 않습니다. 아마 그런 간섭이 없으니 소피도 편하게 느껴 금새 친해졌을 것입니다. 요지는 어떤 능력의 유무는, 그것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주류계급의 단정적 판단일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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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텔레비전"의 존재를 곱씹게 됩니다.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피가 가장 먼저 시험해봤던 게 티비 시청입니다. 티비가 신기해서였을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딱히 문자를 몰라도 음성과 행동이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매체에 소피가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런 점에서 문자들의 집합체인 책은 여전히 불평등한 어떤 것입니다. 구매, 저장, 그리고 독해의 훈련 등 여러가지로 이해의 차별을 낳으니까요. 그에 반해 티비는 경제력을 제외하면 독해의 영역에서는 음성과 시각적 요소가 결합되어 별도의 훈련을 요구하지 않는 보다 평등한 매체처럼 느껴집니다. 잔느는 경제사정 때문에 여전히 티비가 없긴 합니다만.


잔느와 소피가 함께 하는 것도 티비시청입니다. 잔느는 소피에게 폴 뉴먼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같이 보자고 하는데, 티비가 가정부 방과 가족 방으로 구분되어 두대가 있는 걸 보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영상언어도 결국 계층별로 구분됩니다. 조르주 가족이 티비로 뭘 보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이들이 마지막에 보고 있던 건 오페라 돈 조반니입니다. 티비로 시청하는 것도 특정 계급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오죠. 


이 티비 시청은 소피에게 단순한 시간 때우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르주가 전화로 어떤 서류를 찾아달라고 했을 때 소피는 전화를 끊어버리고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자기 방의 티비 소리를 높여서 일부러 안듣습니다. 전화를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굳이 티비소리 때문에 못들었다고 필연적인 변명거리를 만들어내죠. 이 때 소피의 행위는 자신이 진입할 수 없는 문자언어의 세계에서 자신도 이해가능한 음성언어, 혹은 영상언어의 세계로 대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나와서 불안해지면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교환되는 세계로 빨리 도망쳐버리는 것이죠.


티비 소리 때문에 다른 언어를 못들었다는 소피의 이 변명은 후에 조르주 가족이 몰살당할 때 그대로 적용됩니다. 소피와 잔느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 캐서린은 이 소리를 듣고 찜찜해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그게 오페라 소리일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이들 역시도 티비 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를 눈치채는 게 늦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대조를 이루지는 않는 것이, 소피는 전화벨 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지만 조르주 가족은 소피 일당의 난동 소리와 총소리를 진심으로 무시합니다. 그 소리를 눈치챘다고 해도 조르주 가족은 무력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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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가 해고를 당하는 직접적인 계기는 그의 난독증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멜린다의 임신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멜린다의 임신 사실이 소피에게 흘러들어가는 과정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무슨 경로로든 잔느와 소피 일당에게 흘러들어갔을 것 같은 필연적 사건 같습니다. 왜냐하면 잔느는 우체국에서 조르주 가족의 편지를 마음대로 뜯어보고, 소피는 잔느의 사주를 받아서 전화를 엿듣기 때문입니다. 원래 소피는 남에게 관심이 많은 호사가가 아닙니다. 그런 그가 잔느의 욕망을 학습해서 잔느가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한거죠.


소피가 멜린다의 통화를 엿듣는 것은 순차적으로 이뤄집니다. 맨 처음에 조르주가 자신의 편지가 또 뜯어져있다며 잔느를 찾아가 화를 내고 뺨을 때립니다. 여기서 문자언어를 통해 정보가 새어나가는 게 일시적으로 차단됩니다. 그러자 잔느가 소피에게 저 가족이 구린 구석이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이후 구술언어를 통해 비밀이 새어나갑니다. 조르주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악의를 품은 이들에게 명예를 공격당했을 것입니다.


한편 영화는 이 조르주 가족을 미심쩍은 대상으로 그립니다. 조르주와 캐서린이 재혼해서 생긴 이 가족은 이상할 정도로 친부모가 친자식에게 끈적거리는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조르주는 친딸 멜린다에게 "장총을 같이 닦지 않겠니?" 라며 딸을 무릎에 앉히고 묘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캐서린은 친아들과 같이 베드씬이 나오는 영화를 보죠. 물론 아들이 특정 장면을 못보게 심부름을 시키긴 하지만 어린 아들에게 담배를 권하는 등 뭔가 지나치게 개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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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일어난 사유는 멜린다가 소피의 난독증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영화는 계급적인 분노가 가장 크게 작동합니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계속해서 이 가족이 어떤 식으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잘못 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멜린다 같은 경우 소피나 잔느를 도울 줄은 알지만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동정에 갇혀있습니다. 잔느의 차 배터리를 수리해준 다음에 손을 닦고 그 손수건을 잔느에게 휙 던지는 행동은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가 소피의 난독증을 이야기할 때도 소피는 아무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치료받을 수 있게 하겠다,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면서 오지랖을 부리죠. 그는 도움을 베풀 수는 있어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이런 것은 조르주로부터 잘못 교육을 받은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 그는 소피의 난독증에 대해 불필요하게 동정의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결국 해고를 통보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계급의 핵심일 것입니다. 멜린다의 임신 사실과 소피의 난독증은 각자 치명적인 비밀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만이 계속해서 치료 대상이고 자신들의 상태와 동질해지기를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건드린 것은 각각 똑같지만 그 비밀에 대한 처벌은 같은 정도로 치뤄지지 않습니다. 멜린다의 비밀을 건드린 소피는 가정부 생활을 포기해야합니다. 사실상 그가 거기에서 묵고 생활비를 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그의 목숨줄을 뒤흔드는 처분입니다. 그럼 멜린다는?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계급 전복이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르주아들, 유산계급이 언제까지나 심사하고 처벌하는 입장에 서있을 수 없다는 선언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계급 투쟁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습니다. 이 두 사람이 각각 사회성이 망가져있는 사람들처럼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해명을 하긴 하지만 잔느는 자기 딸을 화상을 입게 해서 죽인 여자로 의심을 받습니다. 소피는 아픈 아버지가 누워있을 때 화재가 났는데 자신만 자리를 피해서 아버지가 죽게 된 사건의 주인공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있는 사람들이 이 살인사건의 주동자들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 전체는 그냥 계급이 아니라 인격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비인간적인 인간들에게, 잰체하는 부르주아들이 된통 잘못 걸린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지막 몰살 사건은 우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총을 들고 혼자 신내던 잔느가 엉겁결에 조르주를 쏴버리면서 사건이 벌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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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살을 마치고 난 뒤 잔느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챙겨서 먼저 나갑니다. 그는 차를 타고 떠나려다가 난데없이 다른 차에 치여서 죽습니다. 이 장면은 정말 어떤 예고도 없고 도대체 어떤 차가 사고를 냈는지 인과를 상상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나중에 보면 그냥 순전히 우연입니다. 잔느가 봉사활동을 하던 성당의 신부님 차가 잔느의 차에 부딪혀서 그를 죽인거죠. 


그냥 잔느가 운이 없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계속해서 계급적 분노를 사건의 근본적인 이유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소피는 당하지 않았는데 잔느만 이런 일을 당한 이유는 그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챙겨 나가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울분을 터트려서 조르주 가족을 죽이는 것까지는 합당하나, 그들의 물건을 훔쳐서 나오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신의 의지처럼도 보입니다. 왜냐하면 잔느의 차를 치었던 성당 신부님은 구호물품을 받아서 나눠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가치관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어떤 심판이 작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경찰이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자 잔느와 소피의 범행 중 대화가 고스란히 재생됩니다. 이들의 순진무구한 증거인멸 계획은 적나라하게 재생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지독한 아이러니가 느껴지죠. 이 어리숙한 것들의 무자비한 범죄는 죄다 까발려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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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봐도 이 영화는 온전한 이해가 어렵습니다. 아마 이것은 분노라는 감정에 대한 저의 얕은 이해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괘씸한 짓을 저질렀을 때 그것은 보는 사람이 납득가능한 수준으로 폭력의 정도나 그 대상이 정확하게 정해져서 집행되어야한다는, 복수에 대한 저의 얄팍한 고집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아주 정확하게 나쁜 귀족들만 추려내서 죽이고 나머지는 다 정확하게 개심만 시켰던가요. 피의 숙청이 일어났었죠. 


이 영화의 줄거리를 "분노"로 칭할 수 있을지도 조금 애매합니다. 소피가 자신의 난독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입니다. 그렇다고 잔느와 소피 일행이 이들에게 응징을 해야겠다는 분노를 계획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짐을 가지러 갔다가 즉흥적으로 난장판을 만들고 총을 들고 까불다가 그냥 쏴죽인 게 몰살의 시작입니다. 이 영화가 분노에 관한 영화라면, 분노를 느끼는 그 의로움이라는 전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정작 이들은 놀이를 하듯이 일가족을 쏴죽여버리는데요.


계급적 투쟁으로 보기에 이 파국은 너무나 헐겁습니다. 인물들은 인격적으로 수상쩍고 그 처벌은 가혹합니다. 한없이 부조리해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서늘한 의미를 찾아내야할지도 모릅니다. 본인의 계급적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운이 없으면 저런 날벼락 같은 일을 당한다고요. 어쩌면 이런 교훈극 스타일의 해석도 제 자신의 한계일 것입니다. 이 끔찍하고 발랄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는 심리의 작동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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