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9 00:02
예전 듀게에서 "교양속물"이란 단어가 나왔죠. 500일의 섬머와 관련해서. 섬머 란 여자주인공의 독특한 취향이나 문화적 감수성이 정말 그 사람의 취향이라기 보다는
단지 '있어보이기 위한 ' 혹은 '특별해보이고 싶어하는' 속물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접근이었어요.
이 교양속물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속물교양의 탄생"(박숙자)이란 책도 근래에 나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속물교양'이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면서 '고전'과 같은 유명한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와 독서가 단지 "계급적 기호" (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접근처럼) 로 활용되면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장식물에
그친다는 거죠. 이런 관점을 역사적인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접근 하는 책이에요.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이 교양속물 혹은 속물 교양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함의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저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라 정확한 인용이 아닙니다)
" 근대 초기에는 교양이 있다는 말은 없었고, 교양을 하다 라는 목적어로 쓰였다. (...) 식민지의 교양에서는 좋은 책은 즉 유명한 책이었다. 좋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위한 도구. 그것이 왜 좋은지 그리고 무엇이 좋은지는 해석되지 않고 서구 문명의 기호로써 인용을 위한 축어적 해석으로 쓰였다.
엘리트 독서의 취향, 고급 계급의 기호, 엘리트의 문화자본, 차별과 배제의 기호. 그들에게 교양이란 서구 세계에 속해있다는 보증서로 통용되었으며
자본주의의 물질성과 계급상승의 욕구 그 자체였다. "
즉, 흔히 말하는 고급이다라고 느껴지는 취향을 남들에게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자신의 계급적 지표를 드러내고,
결국에는 인정 욕구 로 문화적인 기호들이 활용되는 속물 교양의 유래를 찾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에요.
교양속물 들에게 그런 기호가 무엇이 자신에게 의미하는지 그것이 가진 함의는 상관이 없는 것이죠.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생각나는 영화가 "스물 타임 크룩스" 죠. 풍자로 가득한 이 영화는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부자가 자신의 미천한 취향과
교양을 가리기 위해 아주 단시간에 고급취향을 과외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는, 그런 '졸부'의 과외 가 아니라 도대체
"고급교양,고급취향"이란게 뭔데?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그런 '인정받기'위한 도구로써 쓰이는 문화적 취향이 아닌 진짜 취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음악,문학,미술 을 이야기할 때,
아 이 사람은 그냥 '있어보이기 위해' 운운하는구나와 아 이사람은 진짜 좋아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걸까요? 그리고 정말 사회학자들의
극단적인 생각처럼, 문화작품의 의미와 가치는 정말 그것이 내재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 그냥 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걸까요?
아마 이런 이야기를 깊게 파고 든다면, 거의 비평적 영역으로 넘어가 이야기는 도저히 게시판에 올릴 수 없는 차원으로 가겠죠.
('교양' 그 자체도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뒤틀려진 개념이니까요 )
제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꺼내는 이유는 가끔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어떤 기묘한 느낌 때문입니다.
또, 오래전부터 유행한 '허세'라는 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힘을 과장하여 내보이는 것 이란, 그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너무나 쉽게 쓰이는 말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쓰는 몇몇 사람들 중에는 상대방의 힘이 진짜 존재 하냐 안하냐 에 상관없이 자신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없다고' 판단하는 것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취향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가지각색이고, 무언가에 반응하는 감각에 있어서 나라별 시대별 성별에 따라 너무나 다르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들의 취향을 들어보면,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특정한 기준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A , V , D 를 좋아한다 하면, 분명 A, V , D에는 이 사람만의 기준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기준 자체가 없이 그냥 A, V ,D 자체가 취향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 말이죠. 저는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이 진짜 좋아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감흥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위에서 이야기한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그 A, V, D 가 그 사람의 감성에서 나온다기 보다, 특정한 류의 계급적 지표 라는 공통점을 띄는 경우도 있구요. 클래식과 군주론과 교수같은 옷차림...
또 그 취향이라고 하는 것. 그의 감수성이라고 하는 부분이 오직 '자신의 생각,자신의 감정, 자신의 느낌' 에만 반응하는 사람일 경우에도 저는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애초에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외부 세계, 타인에 대한 상상력인데, 그들의 감성이란 단지 자신의 센치한 느낌이나 외로움,자기연민,생각에 대한 과장된 해석만 있을 뿐
정작 다른 사람의 동일한 질의 감정과 생각에는 그다지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 감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차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지막으로 정확한 앎. 제대로 느끼고 생각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없이, 그냥 '제목'정도만 취하고, 마치 취향이 명품 의 브랜드 네임처럼 활용되는 경우도 많구요.
그러니까 가방의 질이 좋고 얼마나 실용적이고 디자인적으로 예쁘냐가 아니라 그냥 그 가방의 브랜드가 '~~~"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찬양하는 사례...
이와 같은 종류의 취향과 감성을 접하다보면, 이제 모든 것은 '소비'될 뿐, 더이상 그 자체로 자신의 의미와 생각을 만드는 다음 단계는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듭니다. 즉, 그 작품의 유명함과 인정받기 위한 정도 가 그 작품의 의미가 되는거죠. 해외웹진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적으면서 똑같이 좋아하고 똑같이 싫어하는
경우처럼, 평론가마다, 리스너마다, 독특한 자신의 성격과 삶과 취향으로 인해 평을 달리하기도 쉬운 작품에 대한 해석이,
왜 하나같이 점점 단일한 취향, 단일한 감성을 드러내는지도 점점 반길 수 없는 모습이구요. 결국 그것이 얼마나 유명하고 인정받았느냐가, 즉 '좋음'이 되는 현재의 입장과
'힙스터'에 대한 여러 비판처럼 그런 외양과 인정만을 유행처럼 입고 버리는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냥 점점 소외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글의 가장 큰 맹점은 (제가 취해서 쓰고 있다 는 점을 빼고) 그렇다면 진짜 취향, 진짜 교양, 진짜 의미가 뭔데? 라는 질문에 저조차도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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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08:34
저는 교양을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하는 패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었다면 그 책에서 나온 여러 원리들, 구성들을 인용하여 대화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고대 희랍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그 많은 이야기들은 모두가 같이 '알고 있음'으로 해서 서로가 더 빠르게 미묘한 감정과 논리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스메네가 어떤 심정인지 알 거 같아'라던가, '나의 아스카는 이러치 아나'라던가, '정준하를 보는 정형돈의 마음이야'라던가요. 그렇게 서로 대화할 때 교양을 인용함으로 기능을 수행했다면 저는 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게슈탈트나, 초자아, 대타자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된다거나 접히거나 펼쳐지거나, 이중 주름이거나 쓴 사람들이 정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는 이들이 쓴 이들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제 상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같이 읽었던 이들 사이에서 그 '틀'로 서로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그 위에 무언가 쌓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분명 현대 문화에서 국가 크기의 집단 내에 함께 공유하는 교양이라는게 딱히 없다는 것을 문제시 할 수 있겠지만 감수성의 차이를 통해 특정한 가치를 찾는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Hopper님께서 이해한만큼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Hopper님이 외로움을 느끼실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른 이들이 잘못 살고 있다는건 아니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