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3 20:18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하던 시점, 사람들이 단일화가 어떤 식으로건 이루어지긴 이루어질거다. 라고 기대할 때에, 저는 단일화가 되긴 할텐데, 그렇게 금방 되진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진심이 있고 이 둘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한, 어느 선에서 단일화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무리한 기대는 아닙니다만. 사람들 바램처럼 금세 단일화를 해서는 안철수의 출마선언 자체가 우스워집니다. 안철수는 항상 어떠한 선언을 하거나 결정을 내리기 전에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파급력이 가장 큰 타이밍을 만들어왔지요. 그 타이밍이 그냥 얻어걸린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가장 파급력이 있는 단일화의 타이밍은, 오늘, 혹은 내일. 그러니까 후보등록 사흘이나 이틀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안철수에게 어떤 합리적인 로드맵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늘까지 최대한 밀당을 하면서 조금 유리한 단일화 조건을 끌어내거나, 혹은 엇비슷한 조건에서 교착상태를 만들어낸 후에, 안철수 본인이 나서면서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내는 - 결렬될 것 같던 협상의 마지막 한 조각을 안후보가 해결해내는 -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상대방도 능수능란하게 밀당을 해야 하는데, 문재인은 진심을 담은 돌직구를 날려왔습니다. 밀당의 조건으로 내건 것들을, 문재인이 다 받아버렸으니까요. 여론조사도 좋다, 받아주었고 이해찬도 물러났고요. 사실상 모든 양보는 문재인 측에서 했고, 안철수는 그대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안철수 캠프는 조금 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이걸 문재인이 받아주면 또 더 무리한 요구를 하고. 그러다 보니 거의 받을 수 없는 무리한 조건까지 와버리면서 몽니처럼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후하게 상대를 읽어주는 그림입니다.
이제 오분후면 안철수의 생각을 볼 수 있겠군요. 그가 실제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생각과 다른 양상이 벌어지면서 스탭이 꼬여버린 것인지. 아니면, 진심은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몹시 명쾌해 보였던 이 사람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두관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정치란 것이 참 희한한 것이군요. 똑똑해 보이는 사람도 한순간에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정치도, 사람도.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애시당초 의원수 줄인다는 얘기부터 포기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