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작가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어울리는 주제네요 :)

저는 지금 잠실대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고작 2년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이렇게 가까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네. 분명 이것은 거대한 진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삶의 질 향상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수많은 웹페이지, 수많은 블로그, 끝없이 많은 트윗이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어떤 향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이대로 가다간 몇십년 안에 우리의 신경망을 넷에 직접 연결할 수 있겠죠.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아이폰을 사고 24시간 어디서나 웹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로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점점 늦잠을 잡니다. 아이폰이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순간은 맛집검색이군요(적어도 저에게는요).

진부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 중 뭐가 더 좋냐고, 트위터와 싸이월드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지구상에선 누군가가 너무나 어이없이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겠죠. 제가 한달에 쓰는 전화료면 몇명의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과학기술은 값싸고 효율적인 에너지원, 새로운 종자의 밀, 단백질 합성 기술, 더 나아가서는 나노기술을 이용한 원자 단위에서의 신물질 생성이겠죠. 특히 마지막것은 현실화되면 아예 노동의 종말이 이뤄질테니 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생애 내에 과연 상업적 핵융합을 볼 수 있을까요. 다들 비싸고 효율낮지만 맛있는 유기농에만 관심을 가지죠. 나노기술은 화장품과 반도체 외에는 어디쓰이나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증기기관의 기초원리를 알았지만 노예를 부리는게 더 편하니까 더이상 아무런 진보도 하지 못했죠. 우리도 더이상 화석연료로는 못 버티고, 환경오염이 우리의 목을 직접 조르는 시점이 되어서야 새로운 기술에 신경쓸까요.

한때는 이 인터넷과 세계화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바꾸리라고 생각했죠. 아닐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건 결국 모두 바낭이 아니던가요(바낭의 문화적 가치를 폄하하는건 아니에요).

세계 모두가, 잠시 멈추어서 우리가 어디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는 그런 순간- 은 외계인이 쳐들어오거나 무장집단 솔레스탈 빙이 생겨나지 않는 한 영원히 오지 않을 거에요.

어릴적 2차대전사를 보면서 저 수많은 기술과 자원과 과학과 인력을 서로 부수려고 저렇게나 노력하다니! 만약 저때 독일과 일본과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쳤다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했었죠. 이 글을 쓰는 사이에 가든 파이브까지 왔네요. 우리 시대의 또하나의 엄청난 기술과 자원의 낭비죠.

우리 모두가 무의미한 짓을 그만두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쿠바처럼 도시에 텃밭을 지어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에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발전하고자 하는지, 공익을 위해 무엇이 더 옳은지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고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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