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8 13:19
- 2018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72분. 장르는 호러삘 다크 환타지 정도. 스포일러 없을 거에요.
(사기는 아니고 그냥 좀 많이 과장 포스터랄까요...)
- 구체적인 디테일 없는 환타지 세계관입니다. 사실 세계관이랄 것도 없어요. 그냥 중세 '분위기'라는 정도로만 해두죠.
우리의 주인공은 기사이고, 딸 하나의 아버지이지만 그 딸을 괴물에게 잃었습니다. 그래서 숲속 외딴 오두막에 혼자 살며 그 괴물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죠. 그동안 근방 성에서 화살로 날아오는 괴물 현상수배 전단을 틈틈이 받아다가 출동해서 처치하고, 그 목을 집 안에 진열해둬요. 그래서 제목이 '헤드헌터'.
...이게 스토리의 전부입니다. 그냥 위의 일상(?)을 반복하다가 막판엔 딸의 원수를 마주하게 되는 거죠.
(전체 런닝타임의 반 이상은 뒤에 보이는 이 곳에서...)
- 제목에도 적어 놓았듯이 극저예산입니다. 영화 속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사람은 단 세 명. 주인공과 딸과 멀리서 면봉만한 모습만 보이는 '성 사람' 뿐이구요. 지나가는 엑스트라 조차도 없어요. 그러라고 잡아 놓은 배경이 외딴 깊은 숲 속인 것이구요.
제작비 절감을 위해 괴물도 안 보여줘요. ㅋㅋㅋㅋ 그냥 벽에 걸어 놓은, 또 새롭게 거는 모가지들은 계속 나오지만 실제 괴물이 어슬렁거리는 모습 같은 건 거의 막판에나 한 번 나오고 그마저도 어둠과 편집을 활용해서 사실상 안 보여주는 거나 다름 없게 처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괴물을 안 보여준다는 건, 액션도 없다는 얘기죠. 하하. 정말 대단합니다. 괴물 사냥꾼이 괴물 잡는 게 핵심인 영화인데 괴물도 안 보이고 괴물과의 싸움도 안 보이다니!!
(이렇게 간지나는데, 영화 내내 싸우는데, 안 보여줍니다.)
- 그럼 도대체 뭘 보라는 영화인데?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분위기'입니다.
저렇게 극단적으로 아낀 돈으로 주인공이 사는 오두막은 나름 그럴싸하게 꾸며놨어요. 뭐 그래봤자 오두막이지만, 정체 불명의 약병들, 무기와 갑옷을 손질하고 만드는 '중세풍' 장비들, 벽에 좌라락 걸려 있는 괴물의 머리통들. 이렇게 화면에 주로 비치는 중요한 것들은 싼 티 나지 않고 나름 괜찮아요.
그리고 영화 내내 보이는 깊은 숲과 그 언저리의 풍광이 꽤 그럴싸합니다. 그냥 보기만 좋은 게 아니라 뭔가 신비롭고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잘 찍어놨구요. 뭔가 절묘하게 북유럽 분위기(?)가 납니다. 보는 내내 미국 영화일 거라고 생각 못 하고 봤거든요. ㅋㅋ
결정적으로 배우 아저씨가요, 일부러 노르웨이 사람을 뽑아 놨는데 이 양반이 상당히 포스가 있습니다. 대사는 거의 없어요. 영화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정말 몇 마디 안 해서 대사만 옮겨 놓으면 A4가 아니라 B5용지에 아주 큰 글씨로 적어야 간신히 한 페이지 채울 정도인데, 가끔 대사 칠 때 보면 그게 현명한 선택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쨌든 비주얼상으로 복수에 미친 중세시대 광전사 느낌이 그럭저럭 살아나서 괜찮습니다. ㅋㅋㅋ
(뭐 이런 식으로 분위기는 참 그럴싸하게 잘 잡았어요.)
- 이야기는 정말 별 게 없어요. 글 첫머리에 적어 놓은 저게 그냥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플한, 무슨 구전 괴담 같은 이야기인데요. 그걸 70여분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요령은 나름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에요. '딸 복수할 거야!'라는 짧은 도입부를 넘어가면 영화가 그냥 주인공 기사의 일상을 쓸 데 없이 디테일하게 보여주거든요. 근데 그 일상이 그냥 평범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 아무런 설명을 붙이지 않는 식입니다. 그래서 쭉 보다 보면 '아, 무슨 일 하는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구요. 이런 패턴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주인공에 대해 설명하고요. 또 그 과정에서 계속 신비로운 자연, 나름 신경 쓴 소도구 같은 걸 찬찬히 훑어 보여주며 분위기를 잡는 거죠.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초중반의 그 크게 중요해보이지 않았던 장면들 중 상당수가 결말의 반전(?)을 위해 뿌려진 떡밥으로 작용을 합니다. 여러모로 별 거 없는 이야기를 최대한 잘 치장해낸 괜찮은 각본이라고 생각했네요.
(액션을 잘 하는 배우라는 소문이 있던데 이 영화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 아. 베르세르크 드립은 뭐냐면요. 그냥 주인공 아저씨 차림새가 뭔가 베르세르크에 나올 법한 분위기에요. 갑옷, 망토도 그렇고 아저씨 생김새도 그렇고. 또 끝 없이 복수를 위해 으르렁거리는 그 기사 아저시 캐릭터도 그렇구요. 다만 정말 저렴한 버전의 베르세르크인 거죠. 원작에 이런 캐릭터가 나왔다면 두세 페이지 분량으로 끝냈을 이야기를 70여분동안 하는 느낌. ㅋㅋㅋ
(그러니까 갑옷이 간지가 난다. 뭐 그런 얘깁니다.)
- 더 말할 것도 없고 해서 정리합니다.
한 50분 정도의 앤솔로지 에피소드 하나로 만들었어도 괜찮았을 법한 소품이에요.
게다가 이야기도 볼거리도 다 소탈합니다. 진짜 특별할 것 없고 디테일 없는 심플한 이야기에 딱 그만큼의 볼거리만 보여주는데 '그만큼' 한도 내에선 최선을 다해 갈고 닦은 거죠.
근데 사실 중세풍 다크 환타지인데 소품이다. 이런 아이템이 의외로 흔치 않거든요. 덕택에 좀 참신하단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그럭저럭 잘 봤습니다.
특별히 추천하진 않습니다만. 이런 장르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료로 보실 수 있을 때 한 번 보실만은 할 거에요. 기대는 낮추시고.
+ 주인공 아저씨가 이 영화 이후로 액션 연기를 좀 하셨다던데. 최근작은 '바이킹스: 발할라' 입니다.
넘나 적절하다 못해 게으른 느낌의 캐스팅이죠. ㅋㅋ
2022.05.18 13:52
2022.05.18 14:18
vod 서비스에 보면 '헤드헌터'가 세 편이 있더라구요.
그 중에서 적어주신 이 '헤드헌터'가 가장 평이 좋은데 제가 쓰는 서비스에 없어서... ㅋㅋ
2022.05.18 15:50
2022.05.18 19:01
따지고 보면 세상에 '좋은 영화 포스터'라는 게 의외로 별로 없는데... 그렇다보니 시비 걸고 태클 거는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ㅋㅋ
2022.05.18 16:02
저예산 영화에서 기가막힌 아이디어로 경제적인 샷바이샷을 하는 걸 보면 영화 완성도를 떠나서 짜릿한 느낌이 들어요. 여백. 상상력들을 이용해서요.
그건 그렇고 로이배티님의 리뷰들을 보면 한가지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실 로이배티라는 팀으로 운영되는 리뷰 집단인거죠? 편집장을 거쳐서 일괄된 톤을 유지하는 거고...
물량도 물량이지만 리뷰의 레벨도 상당한 공력이 느껴집니다. 취향을 가끔 말씀하시지만 소화력도 대단하신 것 같고.... 로이배티팀 화이팅입니다.
2022.05.18 19:04
맞아요! 그겁니다. 제가 요즘 왠지 모르게 그런 부분에 꽂혀서 자꾸 가난한 영화들에 손이 가더라구요. ㅋㅋ 멀끔한 블럭버스터도 좋지만 그렇게 경제를 생각해가며(?) 잘 만든 영화들을 보며 감탄할 때의 즐거움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아니 이런 과찬을. ㅠㅜ 앞으로 더욱 가열차게 노력하는 잉여가 되겠습니다! ㅋㅋ
2022.05.18 17:50
2022.05.18 19:04
사실 따지고 보면 흔한 설정이겠지요. 제가 베르세르크를 언급한 건 그저 제가 아는 게 없어서... ㅋㅋㅋ
2022.05.18 18:05
2022.05.18 19:07
제가 무식해서 그런 것인데요, 스카이림의 몇몇 갑옷들이나 이 영화의 저런 갑옷들, 특히 과하게 간지나는 투구 디자인이 실제로 예전에 쓰였던 건지. 아님 그냥 요즘 사람들이 간지 생각해서 창작해낸 건지 궁금하더라구요. ㅋㅋ
맞아요. 분량 좀 줄여서 앤솔로지 같은 데 들어가면 딱 알맞을 영화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꿋꿋하게 한 편 분량으로 뚝딱 만들어낸 제작진의 노력이 괜히 좋습니다. 보니깐 프로듀서가 셋인데 이 셋이 감독, 촬영 등등 영화의 핵심 스탭 일도 다 했더라구요. 열정!!! ㅋㅋㅋ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이것도 재밌습니다.
노르웨이 영화이고 쟝르는 지능범죄 액션,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