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영화입니다. 런닝타임은 93분.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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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가 좀 이상합니다. 극중에서 하는 짓을 보면 대부분에게 악마, 극소수에게 천사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ㅋㅋ)



 - 한 남자가 별 쓸 데 없어 보이는 큐브 하나를 아주 비싸게 삽니다. 그리고 빈 집에 촛불을 켜놓고 그 큐브로 퍼즐 놀이를 하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빛이 비치며 고기 거는 고리 같은 데 퍅퍅 날아와서 이 남자를 꿰어 수십 수백개의 고기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네요.

 장면이 바뀌면 시간이 한참 흐른 그 집에 한 부부가 들어옵니다. 남편이 아까 그 남자(이름은 '프랭크'입니다)의 형제인 듯 하고 아내는 몰래 프랭크랑 바람을 피우고 있었나봐요. 어쨌든 이 집으로 이사해 들어오는데, 짐을 옮기다 남편은 손을 다치고, 필요 이상으로 철철 흘러 넘치는 피를 프랭크의 살점들이 널려 있던 바닥이 흡수하면서 프랭크는 다 찢어진 몰골로 부활합니다. 피를 먹으면 몰골이 좀 나아지나봐요. 그러고는 부부 중 아내를 시켜서 자신의 완전한 부활을 위한 희생양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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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안 끄고 들어가 앉으려고 얼마나 조심했을지를 생각하면 괜히 웃음이.)



 - 클라이브 바커 본인 소설을 본인이 영화로 만든 거죠. 검색해보니 이게 장편 연출 데뷔작이었네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양반이 훌륭한 작가일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완성된 훌륭한 감독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편집이 계속 어색하게 튀어요. 장면과 장면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고 일반적인 대화 장면 같은 것도 그렇게 매끄럽게 잡아서 보여주질 못해요. 거기에다가 배우들은 대체로 발연기... 인데 뭐 이것도 연기 지도의 문제도 있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죠. 어쨌든 그래서 전체적으로 영화가 좀 엉성한 느낌이 듭니다. 바커가 잘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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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인 척 등장하지만, 아닙니다.)



 - 하지만 그런 엉성함을 대충 눌러담고 이 영화를 호러 영화의 고전으로 만들어주는 장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비주얼이 좋아요. 원래 바커가 소설가에다가 그림 실력도 뛰어난 양반이라 그런지 그런 시각화 능력은 확실히 충분하게 잘 발휘됩니다. 35년 묵은 저예산 호러 영화임에도 크리쳐 디자인이 좋고 또 그걸 대체로 간지나게 잘 꾸며서 보여줘서 생각보다 촌스럽고 낡았단 느낌이 적습니다. 빛과 그림자, 카메라 앵글을 활용해서 어설픈 부분들을 가리는 요령도 좋구요. 또 그 시절 느낌 물씬 나는 아날로그 특수효과들도 지금 보면 허접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불쾌하고 기괴한 느낌들을 잘 전달하구요.


 또 스토리도 꽤 괜찮습니다. 엄밀히 말해 그렇게 매끄럽거나 믿을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마도 원작 소설엔 있었을 것 같지만 영화에서 생략되어 버린 설명들이 워낙 많아서 계속 덜컹거리구요. 하지만 그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기괴하고 불쾌한 느낌이 꽤 그럴싸합니다. 뜻밖에도 종종 꽤 웃기기도 하는데요, 그것도 어설픔이 아니라 의도한 블랙 유머 같은 걸로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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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에서 온 락스타님들!!!)



 - 그리고 뭣보다 우리들의(?) 우주 대스타 핀헤드와 친구들이 있죠. 극중에선 아무 설명 없이 그저 '수도사들'이라고 한 번 정도만 언급됩니다만.

 이 양반들은 뭐랄까... '원펀맨' 비슷한 겁니다. ㅋㅋ 일본 초능력 배틀물 만화&애니메이션 주인공인데요. 이름의 뜻은 '원 펀치 맨', 그러니까 그 어떤 적이든 펀치 한 방으로 무찌르는 먼치킨 히어로에요. 그리고 정말 문자 그대로 펀치 한 방이면 뭐든 다 해치워 버리기 때문에 매번 전투 연출 때마다 편법을 쓰죠. 강한 적이 나와서 약한 우리편과 싸우면서 본인의 강함을 마음껏 뽐내고 나면 나아중에 도착한 원펀맨이 한 방에 끝내버림으로써 이 캐릭터의 더 더 더 강함을 뽐내는, 뭐 그런 식인데요. 그러니까 주인공 자체가 이야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존재하는 거죠.


 우리의 수도사님들도 비슷합니다. 워낙 대스타라 포스터에서도 그렇고 영화 스틸 모음을 봐도 그렇고 온통 핀헤드로 가득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등장하는 건 극초반부에 몇 초,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몇 분 뿐이에요. 그리고 등장 시간의 대부분을 가만히 서서 뭔지 모를 의미 심장하게 들리는 대사를 뱉는 걸로 때웁니다. 방정맞게 막 돌아다니며 '액션'을 하는 건 거의 없구요. 하지만 워낙 강력한 임팩트의 비주얼과 그걸 잘 살려주는 연출, 그리고 애초에 먼치킨급으로 정해진 설정 덕에 그 존재감과 매력은 지금 봐도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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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핀헤드만 기억하죠. 자우림 밴드의 우림이 언니 같은 존재랄까요.)



 - 그래서 영화 런닝타임의 대부분은 상간 남녀의 연쇄 살인 행각으로 채워지는데요. 

 이게 참 불쾌하면서도 의외로 웃기고 재밌습니다. 일단 이 둘의 관계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서펀트'에 나오는 빌런 커플의 관계랑 비슷해요. 독하게 나쁜 남자가 어쩌다 걸려든 여자를 가스라이팅해서 자기 수족으로 부려 먹으며 나쁜 짓을 하는 거죠. 근데 남자의 이기적인 자기 쾌락 추구도, 그 남자에게 현혹된 여자의 무지성 악행들도 다 과장이 심해서 참 불쾌한 가운데 웃겨요. 결정적으로 재수 없이 그 사이에 끼인 남편 아저씨의 남다른 멍청함이 자꾸 웃기는 상황을 유발합니다. 참 불쌍한 사람인데, 사악한 기분으로 웃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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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면서 계속 어디서 본 분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보니 전 대통...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 그러고보면 그 옛날에 아주 끔찍하고 잔인한 영화로도 유명했죠.

 왓챠에 올라와 있는 버전이 원판과 런닝타임이 같은 걸로 봐서 딱히 삭제된 장면은 없는 것 같습니다. 블러가 두어번 나오는데 그 중엔 노출 가리는 블러도 있어서 블러 자체는 아쉽지만 원작에서 보여주는 건 거의 다 봤다고 가정할 때... 보기 불편할 정도로 심한 고어가 자주 나오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 다락방에 숨겨진 연인님께서 계속 인체 해부 모델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시는데 그 분장이 기대보다 고퀄이라 그 시절 관객들 보기엔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것 같긴 합니다. 처음과 끝에 한 번씩 나오는 고기 바늘 꿰기 장면도 뭐, 그 낡은 특수 분장에도 불구하고 그 설정 자체의 불쾌함이 있으니 (낚시 바늘에 자기 피부가 꿰인다고 상상해 보십...) 지금 보기에도 잔인하게 느껴지구요.


 그런데 그런 불쾌함보단 '옛날 영화인데 생각보다 그럴싸하네?' 라는 신기함이 더 컸습니다. ㅋㅋ 의외로 고퀄이에요 특수 분장들이. 그러니 영화 속 신체 훼손 장면들 극혐하는 분들이라면 지금도 안 보시는 게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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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터면 짤을 생략해버릴 뻔 한 진짜 주인공!!! ㅋㅋㅋ 하지만 간판 빌런 캐릭터로 유명한 호러 영화가 다 그렇듯 존재감은 별로...)



 - 뭐... 더 할 말이 없네요.

 영화가 참 많은 걸 생략해버려서요. 프랭크가 정확하게 어떤 놈이고 뭔 생각으로, 뭘 기대했길래 그 큐브를 그렇게 비싸게 샀는지도 전혀 안 나오구요. 그 수도사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아무 설명이 없구요. 큐브와 관련된 이런저런 초자연적 존재들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뭣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음. 뭔가 감독 겸 원작자님의 철학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역시 디테일 없이 분위기만 팡팡 풍깁니다. 뭔가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기 위해서는 원작을 읽어봐야 하는 영화에요.


 다만 그렇게 불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있긴 하네' 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게 하더라구요. 큐브를 작동시켰을 때 살짝 맛만 보여주는 '저 쪽 세상'과 거기에 존재하는 크리쳐들이라든가. 프랭크와 상간녀님의 불쾌한 집착이라든가... 다 무슨 설정과 세계관이 있고 작가의 취향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나름 이유가 있긴 있는 상황들일 거라는 생각은 분명히 듭니다. 이것도 결국 바커의 능력이겠죠.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 소설을 찾아봐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ㅋㅋ



 - 결론적으로.

 뭔가 엉성하고 부족한 부분 투성이임에도 자기 강점이 워낙 확실해서 결국 칭찬을 하게 만드는 류의 영화였습니다.

 특히 시각적인 측면에선 지금 봐도 유니크하고 보기 괜찮은 장면들이 많구요. 독창적인 설정과 세계관 측면에선 오히려 요즘 나오는 호러 영화들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훌륭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그 어떤 측면으로 봐도 참 변태 같은 영화에요. 불건전 속성 영화를 못 견디시는 분들은 피하시길.

 지금 원작자 본인이 나서서 시리즈인지 영화인지 암튼 신작을 올해 공개 목표로 준비중이라고 들었는데. 이 영화를 넘어서는 퀄로 만들어 준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다들 아시다시피 이미 나와 있는 그 많은 속편들은 거의 평이 안 좋아서... ㅋㅋ




 + 역시 다들 아시는 부분이지만 이 영화의 수도사들 캐릭터를 너무너무 사랑했던 분이 한 분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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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우라 켄타로 아저씨. 이 영화 뿐만 아니라 '이블 데드'에서도 모티브를 다수 가져오셨던 걸 보면 호러팬이셨나봐요.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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