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9
감독 홍상수, 주연 김태우, 유준상, 고현정, 엄지원, 공형진, 정유미, 문창길, 하정우
제천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구경남. 심사는 뒷전이고 술자리만 챙기던 그는 오래전 절친 부상용을 만나 그의 집에서 상용의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는데, 다음 날 뜬금없이 파렴치한으로 몰린 채 도망치듯 떠납니다.
제주도에 특강을 간 구경남은 뒤풀이에서 선배 양천수를 만나고, 그의 아내가 자신이 좋아했던 후배 고순임을 알게 됩니다. 구경남은 은밀하게 고순과 관계 중 동네주민에게 현장을 들키고, 고순의 도움으로 도망치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한다'는 핀잔을 듣습니다.
옥희의 영화 2010
감독 홍상수, 주연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영화과 강사 진구와 송교수의 이야기, 영화과 학생 진구와 옥희의 이야기, 영화과 강사 송감독과 학생 진구, 옥희의 이야기,
그리고 옥희와 진구, 옥희와 송감독의 이야기를 병렬로 배치한 '옥희의 영화'가 이어지며 세 남녀의 네가지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이룹니다.
북촌방향 2011
감독 홍상수, 주연 유준상, 김상중, 송선미, 김보경, 김의성, 안재홍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성준은 선배 영호를 만나러 북촌에 갔다가 영화학도들과 우연한 만남을 갖고, 옛 여자의 집을 찾아갑니다.
다음 날 성준은 영호와 후배 여교수와 ‘소설’이란 술집에 가고, 성준의 옛 여자와 똑닮은 여주인과 키스를 합니다.
다음 날 혹은 다른 어떤 날, 성준은 영호, 중원, 여교수와 다시 ‘소설’을 찾고, 성준은 여주인과 키스를 하고 하룻밤을 보냅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6
감독 홍상수, 주연 김민희, 서영화, 문성근, 권해효, 정재영, 송선미, 안재홍
함부르크. 여배우 영희는 유부남 감독과의 만남에 대한 구설을 피해 지인을 찾아와 심신을 쉬게 하면서 해변을 산책합니다.
강릉. 영희는 지인들을 만나 편치 않은 술자리를 하고, 콘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해변에 혼자 누워 잠드는데, 영화스탭이 그녀를 깨웁니다.
그 후 2017
감독 홍상수, 주연 권해효, 김민희, 김새벽
작은 출판사 사장 봉완은 매일 새벽 일찍 출근합니다. 함께 일하던 여자와 사랑했지만 얼마전 헤어졌고 그녀는 출판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녀 대신 출판사에 취직한 아름. 출근 첫날 아름을 불륜녀로 착각하고 들이닥친 봉완의 아내에게 뺨을 맞습니다. 봉완의 아내가 떠난 후 출판사를 그만뒀던 그녀가 돌아와 아름은 직장을 잃습니다.
한참 후 수상 축하인사를 위해 출판사를 찾은 아름. 봉완은 그녀와 다시 헤어졌고, 아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눕니다.
넷플릭스에서 홍상수의 영화들이 여러 편 내려가기에, 급하게 몇 편을 챙겨 봤습니다.
2010년대 전원사에서 제작하면서 관객에게 친절해진 홍상수의 2기와, 김민희와 함께하는 3기의 작품들입니다.
그 많은 작품들과 그 많은 수상경력, 익숙한 제목과 스틸, 배우들이 떠오르는데, 제대로 봤던 작품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뿐이었네요.
영화소개 프로와 각종 기사 들에서 자주 다뤄서인지 보지 않았는데도 본 것 같은 영화들이 대부분이지만,
독립영화 방식으로 꾸준히 양질의 작품들을 쉼없이 만들어내는 감독이기에 27편이나 되는 작품들을 따라가기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감독인 주인공이 이남자 저여자랑 만나서, 술먹고, 이야기하고, 말다툼하고, 섹스하고, 헤어지고, 독백하고 하는 비슷한 장면들과 비슷한 배우들로 구성된 영화들이 많다보니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영화를 비교해 보다 보니, 비슷해 보이면서도 서로 다른 영화들이 점점 발전해가는 면모와 그 안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홍상수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네요.
닮은 듯 다른 영화 속의 캐릭터와 배우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의 다양한 면모 같기도 합니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취미로 사진 찍는 서영화를 만난 영화감독 이선균은 기어이 자기를 찍은 사진을 삭제하지만, [북촌방향]에서 고현정을 만난 유준상은 어색하게 포즈를 취해 줍니다.
[옥희의 영화]에서 정유미와 사귀던 문성근과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김민희를 만나던 문성근은 같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그 후]에서 김민희를 불편하게 하는 권해효는 다른 사람일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제주도 사는 유준상이 [북촌방향]에서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북촌방향]의 영화학도 안재홍은 분명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화스탭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꽤 많은 홍상수 영화들이 넷플릭스에 남아 있지만, 언제 또 사라질지 알 수 없으니 볼 수 있을 때 짬짬히 봐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스타일 상 극장이 아니어도 덜 아쉽고, 상영시간도 짧아 OTT에 잘 어울리니까요.
한동안 홍상수 영화를 안보다가 극장 스케쥴이 맞아서 [소설가의 영화]를 봤었는데 예술 업계 종사자 인물들간의 숨막히는 대사들이 재밌더라구요.
미술관 전시보다는 미술관 옆 카페 손님 일행들의 대화가 재밌었던 경험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 영화는 저와는 다른 결인 예술하는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엿들을수 있어서 좋았어요.
넷플릭스에 홍상수 감독 작품들이 내려간대서 지난주에 [풀잎들]과 [강변호텔]을 챙겨봤어요. 촬영당시에 우울했던 모양인지 두 편 전부 감독 본인의 죽음에 대한 암시가 강렬하게 느껴졌는데
당시의 관객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했어요. 홍상수 감독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공적인 발언권이 없는 홍상수 가족분들에게 큰 상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수가 없어서 죽지말고 살아서 작품활동 꿋꿋히 하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진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