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건 신입생 때 극단 목화의 '분장실'이라는 공연을 보러 갔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공연 마지막에 삽입된 이 곡을 들으며,

 '내가 훗날에 나이가 많이 들어 정말정말 현명한 어른이 된다고 해도 인생이라는 것을,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후로 이곡이 수많은 영화와 씨에프에 삽입되면서 지겹도록 많이 듣게 되었지만,

 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궤적을 그리는 인생의 비의에 대해 생각하면 이곡이 가장 떠오르곤 합니다

 

 요즘 다시 자주 듣고 있지요

 

 2.

 

 지난 토요일에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일을 모두 끝내고 나니 하루의 막바지더군요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고 싶었으나 그러는 게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고...

 

 몸에 기운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그순간에 갑자기 맥주와 산낙지 조합이 너무 먹고 싶은 겁니다 ㅠㅠ

 - 왜 갑자기 그게 먹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맥주에 산낙지 조합은 먹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포차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는데 문이 닫혀 있더군요...

 

 그 순간에 멘붕이 온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낙지와 맥주 조합을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신촌에 도착해 번화가를 한바퀴 돌아봤지만 산낙지를 팔만한 집은 보이지 않더군요 횟집들은 다 문을 닫고... ㅠㅠ

 

 그래서 저는 산낙지와 맥주 조합을 먹는 걸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가려 하다가

 오랜만에 새벽에 나와 길을 걸으니 뭔가 기분도 들뜨고 해서

 

 이십대 시절에 자주 가던 어느 바에 들러 맥주를 한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3.

 

 예전에 그 바에서는 오래된 팝송들을 자주 틀어주곤 했는데 그날의 선곡은 영 맘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도 뭐 한동안 참고 마시지 않던 술과 경쾌한 음악의 조합으로 인해 기분이 한결 좋아졌어요

 저는 홀로 바에 앉아 술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듀게질을 했죠 ㅎㅎ

 

 오랜만에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는 건데 생각보다 뭐 뻘쭘하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눈치 안보고 즐기면서 마셨는데 그게 다 스마트폰으로 듀게질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ㅠㅠ

 - 제가 일본가는 이유는 일본에서 듀게질을 해보고 싶기 때문임...

 

 4.

 

 그렇게 음악도 듣고 바 앞의 벽을 보며 듀게질도 하고

 가끔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외국인들을 좀 쳐다보기도 하며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제 옆에 어떤 여자아이가 다급히 앉더니

 자기랑 친한 척 좀 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벽 보고 술을 마시다 -_-;;; 갑자기 제 옆에 앉은 그 아이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그 아이가 시키는대로 친한 척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자기에게 들이대는 외국인들을 피해서 저에게 도망쳐온 거였어요 ㅠㅠ

 

 저는 뭔가 무서운 일에 휘말릴까봐... 최대한 어른인 척 -_-+ 이런 표정을 지으며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행히 외국인들은 제가 그 아이와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더 이상 그 아이에게 들이대지 않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한참 나눴는데 저보다 열살 정도 어리고

 직업은 그냥 부잣집 딸... -_-;;;

 

 나이가 많지 않은데 뉴욕을 비롯한 제가 좋아하는 몇몇 도시들에서 꽤 오랫동안 거주한 적이 있더군요

 

 곧 다시 뉴욕에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길래 저도 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어른스럽고 괜찮은 친구였어요 

 - 몸매도 어른스러웠습니다...

 

 그 아이와 같이 온 친구가 술이 너무 취해서 둘이 먼저 나갈 때까지

 그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래 나누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일본 가기 전에 같이 저녁을 한번 먹기로 했어요

 

 5.

 

 그 아이가 먼저 나간 뒤에는 제 옆에 앉은 어떤 미남 청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길래

 그 친구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자신을 벨기에에서 온 아티스트 제레미라고 소개하더군요

 

 저는 벨기에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와플, 와플이라는 말만 줄창했다는... -_-;;;

 - 그 청년은 벨기에는 맥주도 유명하다고 피력을...

 

 아무튼 그 청년이 준 명함을 따라 그 청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까 멋진 작품들이 많더군요 

 근데 그 청년은

 

 그 바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던 걸까요?

 

 6.

 

 사실 예전에는 종종 그 바의 그 자리에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했고

 거기서 몇 번 여자분들이 저에게 몇 번 먼저 말을 건 적이 있었어요

 - 주로 비범하게 노는 걸 좋아하게 생긴 누님들이 저에게 말을 걸어주셨고요... 저에게도 나름의 전성기는 있었지요 ^_ ^;;;

 

 그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다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제가 다시는 그 바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제가 신청한 곡을 틀어주지 않는, 예전에 만났던 친구들 모두 떠난 그 어둑신한 곳에 정말

 

 두번 다시는

 

 7.

 

 그날 그바에서 그렇게 간절히 듣고 싶었던 곡이 뭐였는지 지금은 잘 생각나질 않네요 그 간절했던 마음이 

 

 8.

 

 그 바에서 나온 게 네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어쩐지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택시를 타고 제가 사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 있는 재개발구역에 폐허를 보러 갔습니다

 

 어둠 속에서 광활한 폐허를 고요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두렵지만

 마음 속에서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위로가 됩니다

 

 폐허를 바라보며 아주 오래전에 썼던 일기의 내용을 생각하며

 한참을 그렇게 제 자리에 서서

 

 제 마음이 움직이는 걸 쳐다봤지요 

 

 9.

 

 그 폐허를 보다가 어렴풋이 여명을 느끼고 있을 즈음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더군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돌아보니 턱시도를 입은 날씬한, 마치 흑표범처럼 생긴 냐옹이 한마리가 저를 보면서 울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가만히 앉아서 이리오라고 부드럽게 손짓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저를 보면서 한참을 울어대더니 휙 돌아서 재개발구역 중간에 있는 재래시장 쪽으로 달려가더군요

 

 휙하고 돌아서는 그 모습이 마치 '따라와 이 멍청아... -_-;;;'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 녀석을 따라 마치 미로와도 같은 재래시장 곳곳을 헤멨습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재래시장에는 영업을 준비하기 위해 슬슬 준비하는 상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무튼 그 고양이를 눈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고양이 녀석을 따라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작은 이층 주택 마당의 감나무 아래에까지 당도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녀석의 새끼들로 추정되는 아기고양이 세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아가들이 그렇긴 하지만, 그 아이들 역시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너무 예쁜 아기들이더군요

 

 저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던 녀석은 더이상 저를 의식하지 않고 그 아이들을 자신의 혀로 핥아주기에 바빴습니다

 

 그 즈음에는 사위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는데 저는 '아, 이 녀석이 나에게 이 아이들을 자랑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가 모두 뜰때까지 그 녀석과 그 녀석의 예쁜 아이들을 '참 예쁘다'라며 오래오래 칭찬해주며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0.

 

 얼마 못자고 일어난 일요일에는 선배의 키친에 갔습니다

 

 그날 선배의 키친은 마켓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거기서 바질 페스토와 피클, 라즈베리크림치즈 그리고 잉글리쉬 머핀 샌드위치를 사고

 사과와 우엉조림, 머핀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파스타를 얻어왔습니다

 

 11.

 

 그리고 그날 선배의 키친에서는 처음 보는 예쁜 아가씨가 와있었는데

 

 그녀는 삼개월간 독일에서 트렁크 하나로 여행을 하다가 돌아온 뒤

 몇 년동안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했던 자기 옷방의 옷을 보고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치유해주고자 자신의 옷들을 트렁크에 싸들고 와서 팔고 있었던 거랍니다

 

 저는 그 아가씨가 그날 벼룩시장에 내놓은 물건을 보고 '옷가게를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자신의 개인 소장품이었고 또 그녀의 집에는 그 물건의 수십배에 달하는 옷과 장신구가 있다는 걸 알게된 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라는 존재를 남자가 이해한다는 건 정말 불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ㅠㅠ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냥 사랑해줘야지 섣불리 여자라는 존재를 남자의 이해가능한 범위내에 두려는 노력을 하려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깊이깊이 하게 되었지요 ㅠㅠ

 

 12.

 

 아무튼 그 아가씨는 아주 예뻤습니다 키친에 놀러왔던 사람들이 모두 인정한

 나탈리 포트만을 닮은 미녀였는데

 - 저는 그날 안경을 안써서리... 현실세계의 나탈리 포트만 같긴 했습니다... 

 

 그렇게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말투에서도 뭔가 철벽녀의 포스가...

 

 아무튼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듀게의 클랜시님 이하 남성회원 여러분!!!!

 

 사랑에 실패했다고 우울해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여인들은 많습니다!!!! 다만 그녀가 내 여자가 아니라는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만 있을 뿐이죠...

 

 뭐 내 여자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혼자 내 여자라고 생각하며... 아 쓰바......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요... 눈물 좀 닦고 글 쓸게요... 죄... 죄송요... ㅠㅠ

 

 13.

 

 저는 요즘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에는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우울감과 무력감이 와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늘 저는 '인간은 도대체 왜 살아가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깊이깊이 생각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면 언젠가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 '태국에서 일어난 일'의 한 장면도 생각이 나고,

 여러가지 망상과 이미지들이 제 머릿 속에서 떠돌곤 합니다

 

 그게 두려워서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이번 주말에 참지 못하고 금주를 깨뜨려버린 거지요

 

 일본에 여행을 가면 절대 술은 마시지 않을 생각입니다

 

 언젠가 술이 제 인생을 망쳐버릴까 두렵습니다

 

 저도 제가 왜 이렇게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는 건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 행복할 수 있는 이유도 참 많은데요

 

 아무튼 요 며칠간은 스스로 좀 감당하기 힘든 우울감이 와서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시고 괴로워하고 마시고 괴로워하는 시간을

 반복하곤 했지요

 

 그런데 어차피 우리의 생이 다함은 우리 선택권 밖의 일이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고독이나 고통 속에서도 기운을 내며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저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서 한참을 헤메는 중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발버둥 속에서 뭔가 변화를 꾀하고자 일본행을 충동적으로 결심하게 된 거고요

 

 사실 해야할 일도 많은데 일본행이라니 걱정도 됩니다만, 뭐 가면 좋겠죠...

 

 가서도 변함없이 듀게에 일기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 생각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 있다면 역시 일본에서 할 듀게질이죠...

 

 오늘도 긴 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불면이 익숙한 가을밤입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기운내서 어떻게든 살아보자고요 살아보면 또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날도 오겠죠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