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012.12.20 03:59

nabull 조회 수:1505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담담하리 했는데, 막상 그러지가 못해 잠을 못자는 와중에 글 남김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2&sid2=249&oid=079&aid=0002425262


오늘 낮에 투표하고 할 일 없어 띵까띵까 하던 중에 본 기사입니다.

심근경색 투병중이시던 70대 할머니께서 투표를 마치고 돌아가셨답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저 분은 자신이 보지 못할 미래에 자기 힘을 보태셨구나 하는 그런 생각부터 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국개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60~70대 콘크리트 지지층을 비하할 때, "노인들은 기껏해야 10년 겪다 끝이지만 우리는 몇십년을 살아야 하는데 저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과격한 표현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쓰레기같은 말인데 이 말이 무슨 깨달음처럼 머릿속에 콱 박히더라구요. 저 말을 옹호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해보면

내가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이 유권자에게 주어지는 한 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주어지는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인데, 이게 새삼 크게 다가왔습니다.



전 문재인을 찍었습니다. 줏어들은 말로는 투표는 좋은 후보를 고르는게 아니라 덜 나쁜 후보를 고르는 거라고 하길래, 박, 문, 안 후보 한 명씩 나쁜 점을 생각해보려고 했습니다.

의사에서 프로그래머가 됐다가 사업을 시작하고 교수를 하다가 책을 쓴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상상이 잘 안돼서, 안철수를 포기했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심복의 총에 절명한 독재자의 딸이 찜찜한 과거문제를 남기고 대통령이 된다는 것도 상상이 되질 않아서, 박근혜를 포기했습니다. 이쪽은 현실이 됐으니 현실감각이 부족했다고 말해야 할것같습니다.

문재인이 지고 있던 친노의 그림자는, 그 사람이 세력을 위한 친노가 아니라 노와 뜻을 같이 했던 친노라고 생각하니 제일 덜 나빠보였습니다.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판단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지금에야 말을 이렇게 순하게 하지만, 사실 투표 전까지도 제 생각은 꽤 확고했습니다. "문재인을 뽑는 것이 옳은 것이다. 다른 이에게 박근혜를 찍을 자유는 있으나, 그것은 옳지는 못한 선택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은 저 띵까띵까 본 기사와 국개론자의 발언이 머릿속에 크로스오버되면서 나온 결론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한 표는 모두 그 각자에게 옳다는 것과, 민주주의는 더 많은 이에게 옳은 답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투표 독려 매체에 의해서 많이 회자된 말입니다. 투표하는 순간만큼은 스물 다섯의 나도, 심근경색을 앓는 할머니도, 독재자의 딸도, 노무현의 친구도, 듀게 여러분 모두도 표 한장을 덜렁 쥔 유권자일 뿐입니다.

누가 더 똑똑하고 말 잘하고 사고가 자유로운가 하는 것은 유권자의 요건이 아닙니다. 그런 요건을 정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 지어진 체육관에 스스로 들어가는 겁니다.



유권자의 75프로가 참여했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어떤 부정이 없었다면 이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입니다.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떨어진 것은 안타깝지만, 실망만 할 일은 아닙니다. 최소한 우리나라는 근 수십년만에 유권자의 자발적 참여와 부정없는 공정한 선거를 해내고 있지 않나요?



50프로가 넘는 득표율에 놀라며 "저 혹세무민하는 역적도당을 떨쳐낼 방법이 없구나"하는 것 보다는, 그 50프로가 넘는 개개인의 옳음을 인정하고,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전달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는 틀리지 않아요. 다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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