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드디어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을 보았습니다.

다음은 이 작품을 제 멋대로 해석한 단상입니다.

  

바흐는 살아생전,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그가 '푸가를 만드는 기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낼 수 있겠냐는 게 고발인의 말이었습니다.

 

우디 앨런을 바흐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세에 이렇게 고른 수준의,

치열한 작품을 매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아한 대목입니다.

지금도 그는 다음 작품을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벌써 머리 속에는 다음 각본이 그려지고 있을 테지요. 

어쩌면 우리는 우디 앨런의 집을 압수수색해서 '기계'를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감상문을 쓰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할말을 만들게 해 주시는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단 우디 앨런의 영화는 사회학도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텍스트입니다.

계급은 한 인간의 아비투스를 형성하고,

이 아비투스는 구별짓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부르디외의 이론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사회학도가 아니라도 재미있게 볼 수는 있지만,

책 속에서 배웠던 이론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보면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오지는 로또에 당첨되고 돈방석에 앉아도 여전히 질펀한 농담을 하고,

진저의 애인인 칠리(바비 카나베일)도 재스민이 보기에는 수준이 낮은 사람일 뿐이죠.

비단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우디 앨런은 이 문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요.

[매치 포인트], [스쿠프], [스몰 타임 크룩스]에서도 이런 문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우디 엘런 영화의 웃음 포인트의 상당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이걸로 참 많이 웃었군요.

 

 

 2.

 

 

 "누군가 '착함(good)보다 운(lucky)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다.

두려울만큼 인생은 대부분 운에 좌우된다.

그런 능력 밖의 일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무서울 지경이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리는 찰나, 공은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만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다." - [매치 포인트]의 대사 중에서


 

저는 이 작품이 [매치 포인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의구심을 품은 대목은,

진저(샐리 호킨스)의 전남편 오지(앤드류 다이스 클레이)가 별안간 거리에 나타나서

재스민의 과거를 드와이트(피터 사스가드)에게 폭로할 때입니다.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냐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매치 포인트]가 생각나면서 저 위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즉, 크리스(조나단 리스 데이비스)와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그렇게 다른 인물 같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매치 포인트]의 크리스는 공을 넘긴 것이고,

재스민은 넘기지 못한 채 떨어뜨린 것이지요.

[매치 포인트]의 마지막 장면 - 크리스가 저택에서 창가를 바라보는 장면 - 과

재스민이 벤치에 앉아 중얼거리던 장면은 다른 듯하면서도 실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요?

 

재스민은 스스로를 그토록 기만하면서 드와이트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사상누각일 뿐이었고 언젠가는 파도 한 번에 무너질 운명이었죠.

그런 점에서 크리스와 재스민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도 그 때는 어떻게 잘 모면했을지라도,

언젠가는 재스민처럼 공든 탑이 무너진 뒤,

(드와이트의 전화를 바로 받지 않는 밀당까지 시전했는데...)

과거 속에서 허우적대며 중얼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신분상승을 위해 몸부림쳤던 크리스와 재스민은 비슷한 허망함을 느꼈을 거예요.

 

할(알렉 볼드윈)도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였지만,

재스민의 밀고로 개털이 되고, 끝내는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공든 탑이 무너졌고,

오지 역시 로또로 번 돈을 고스란히 날리면서 공든 탑이 무너집니다.

결국 주요인물들은 꿈을 좇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죠.

 

다만, 칠리만큼은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진저의 일터에서 흘린 눈물만큼은 진심어린 사랑으로 보였거든요.

진저도 알(루이스 C.K)에게 빠지면서 잠시 신분상승을 노렸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음향기사라며 꼴랑 아이팟 독으로 음악을 들려주며 과시하던 알은,

진저가 바랄 수 있는 현실적인 동앗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진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칠리에게 다시 돌아가고,

둘은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상류 계급만을 타겟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재스민의 재기를 응원했을 관객 역시 타겟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치 포인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연중에 크리스에 감정을 이입하여,

그가 장인의 총을 무사히 집어 넣기를,

형사의 의심을 피하기를 바랐던 저와 같은 관객 말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응원하지 않았다면, 아닌 거겠지요.) 

 

 

3.

 

 

이상으로 제 멋대로 단상을 마치겠습니다.

태클...도 환영합니다만,

톰 밀러가 이청용에게 했던 수준의 심한 태클은 부디...ㅜ.ㅜ

(수험생이라 멘탈이 약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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