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2022.04.27 18:27

thoma 조회 수:551

마음가는 대로 감상이니 감안하시고, 스포일러는 의식 않았으니 역시 감안하시기 바랄게요.

Drive My Car, 2021

25f7f5a8664305e7836c36b87716b4d55968ef7b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 시간이 영화 시작 후 40분 지나서입니다. 어 이제사 나오나, 하고 시간을 보니 그러네요. 거기까지가 주인공 가후쿠에게 치명상을 입힌 아내 오토와 함께 살던 장면이자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있는 전사이니 구분해 주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제목이 저럼에도 영화를 보기 전엔 몰랐는데 이 영화 일종의 로드 무비네요. 도쿄에서 횡단해서 서쪽에 있는 히로시마로, 히로시마에서 종단해서 북쪽인 홋카이도로. 그리고 극중극이 매우 중요해서 저는 이 영화가 매개체를 통해 고통을 직시하면서 매개체를 통해 그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로 봤습니다. 우리가 영화(이 영화에선 연극이지만)를 보는 것도 이와 성격이 같은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 역시 매체라고 할 수 있겠죠. 내 소중한 차를 타인에게 허락해 나가는 과정으로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그냥 완전히 내주는 방식으로요. 


아내 오토와 관련된 부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입김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원작은 읽지 않았지만 하루키의 이전 작품에서 봤던 여성에 대한 막연하고도 알 수 없음에 따른 신비화와 섹스가 중요하여 이야기 만들기를 연결짓는다거나 하는 것이요. 대표적으로 '아내에겐 들여다 볼 수 없는 어두운 소용돌이가 있었어' 같은 표현이 하루키의 두고 쓰는 문자라 그랬는데 사실 이 영화에서 저에게는 가장 이입이 어려운 부분이 이런 하루키의 강렬한 향기가 엄습하는 대목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전생이 칠성장어인 여학생 등장하는 스토리는 강렬한 상징성만큼이나 강렬한 거부감이 ㅠㅠ.(일본 사람들의 이래저래 어쨋거나 장어 사랑! 그리고 오래 전에 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도 아내의 불륜으로 시작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운전 기사인 미사키의 사연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더군요. 두 사람이 겪는 마음의 고통이 처절함으론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가후쿠보다 훨씬 현실성 있고 생생하게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카메라가 차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서 차가 움직이는 걸 보여 주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보다 풍경 속에 그냥 들어가 있거나(입엔 담배를 물고) 말없이 이동할 때가 더 좋았고요. 솔직히 대사를 아주 조금만 줄였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각본 상 받은 영화를 보며 이게 무슨 생각이람. 저의 마구잡이 생각이지만 대사가 의미심장하면서 길이도 꽤 긴 장면들이 있어서 현실에서 저런 대화가 오간다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얘기임에도 참 기억하기 어려울 것인데 싶더라고요. 길게 주고받는 대화가 의미심장하게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기 때문에 각본 상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깊이 있는 대사를 곱씹기 위한 것이 우리가 영화를 재관람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까. 영화는 대화 장면을 놓고 볼 때 현실과 가장 비슷한 시간 체험을 하는 예술 같은데 대사가 의미심장하고 길다면, 그래서 관객이 충분히 대사를 읽어내기(기억하기) 어려웠다면 좋은 체험이랄 수 있을까. 무슨 소리, 전통적인 연극에선 영화보다 대사의 역할이 더 크지 않나. 무슨 소리, 연극은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와 뗄 수 없는 관계로 따로 대사만 향유되기도 하니 다르지 않을까. 여기까지 엄벙덤벙 생각해 봅니다.


영화가 끝 난 다음에 생각해 보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야심이랄까 스케일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칠성 장어 소녀의 분명한 자백과 더불어 왜 하필 히로시마인가, 왜 배우들은 다양한 아시안으로 구성되어 제각각의 언어로 대사를 치게 하는가, 게다가 한국인 배우의 중요한 역할이나 마지막을 부산 장면으로 끝내는 것을 보면요. 


가후쿠가 히로시마를 구경시켜 달라니 미사키가 쓰레기 처리장으로 데려가는데, 멋지던데요. 과연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후쿠가 묵는 숙소도 분위기 좋았는데 창이 한 면이라 춥겠습디다. 

한국인 부부는 그림같은 집에 그림같은 개와 그림같은 가정을 이루고 살더군요. 그래서 보는 한국인 입장에선 좀 한국인 안 같았습니다. 

e8dd06396c6474168034f1e14f18aa78287ad95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49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5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134
119780 분당 갑은 어떤 곳이기에 [2] thoma 2022.05.07 863
119779 뻘글 ㅡ 축구 선수2세 [2] daviddain 2022.05.07 271
119778 볼만한 프로스포츠 3개 [4] catgotmy 2022.05.07 273
119777 '더 월드 오브 팀 버튼'전 구경기 [3] skelington 2022.05.07 320
119776 강수연 배우 별세 [21] soboo 2022.05.07 1545
119775 유포리아 리뷰.. [15] Tuesday 2022.05.07 662
119774 다들 안전띠 단단히 매세요 IMF보다 더한 파국이 밀려올 겁니다 [3] 도야지 2022.05.07 1160
119773 의사 낯선 양반 광기의 다중 우주-강스포일러 [1] 메피스토 2022.05.07 380
119772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끔찍한 윤정권 [2] soboo 2022.05.07 1127
119771 쓰는김에 하나더. 어릴적 명절 영화 혹은 미니시리즈를 찾아요 [2] dora 2022.05.07 332
119770 저도 영화 찾기 질문드립니다 [9] dora 2022.05.06 376
119769 탑골 분위기라 물어보는 취향질문- 어느 오프닝을 제일 좋아하셨나요? [20] 부기우기 2022.05.06 609
119768 영화를 찾습니다 [4] 풍기문란 2022.05.06 298
119767 커뮤니티에서 정치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32] Sonny 2022.05.06 1007
119766 탕웨이, 박해일 주연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영상(예고편이라기엔 짧은...) [5] 예상수 2022.05.06 860
119765 닥터 스트레인지 2 - 마! 이게 탑골 호러다! (스포) [3] skelington 2022.05.06 640
119764 건강에 좋은 최면? 상태 [1] catgotmy 2022.05.06 239
119763 [영화바낭] '주말의 영화'로 유명(?)했던 탑골 호러 '잠들지 마라'를 봤습니다 [8] 로이배티 2022.05.06 586
119762 강기훈 유서대필조작, 유우성 간첩조작 [6] 도야지 2022.05.06 597
119761 무버지 [3] daviddain 2022.05.06 25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