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구럼비 바위가 긴급 이슈로 떠올랐네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래전 문규현 신부님께서 제주도에서 용역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진을 보고도,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듯 무심한 저를 일깨워준 것은 2012년판 종교전쟁을 재현하겠다는 어떤  분의 선전포고 덕분이었죠. 걸어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는 게 원칙. 어디 우리 다크포스 풀풀 날리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성하와 108 성인 형님들과 더불어 언리미티드 파워로 맞장 떠볼까... 라는 건 하릴 없는 농담이고.
어쨌거나 늦게나마 이 사건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 옛날에 말이지요, 한국전쟁 끝난 이후로 청계천 근처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무허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청계천 그 구렁물 위에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정말 서 있는게 신통할 정도의 판잣집들이 3~4층 높이로 있었지요. 그 때 사진들 보면 그 좁다란 집에 온갖 세간살이 다 얽어놓고, 아이들도 그리 살았어요.
전쟁 때 월남해서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살기도 했고, 또 농사가 망해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도 있었고, 아무튼 대단히 가난한 사람들이었죠. 당시 서울이 차츰 인구과밀이 되는 것도 있고, 이걸 분산하기 위해 위성도시를 만들자고 한 것이 1960년대. 그래서 1969년부터 위성도시 건설 및 주민 이주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청계천 판자촌들은 철거되었지요.

 

언제나 대의명분 하나는 확실했지요.
청계천이 붐비고 더럽고, 나무 건물 때문에 화재의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더러운 구정물이 외국 사람들 보기에 부끄럽다 이거죠. 그렇게 벌어진 것이 청계천 복개공사죠. 청계천에게 시멘트로 덮개를 씌우고, 근처의 판잣집들은 우르르 때려부수고 아주 말끔하게 치워졌습니다.
거기서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지금의 성남 일대로 옮겨졌어요. 이사 간 게 아니라, 옮겨졌습니다. 강제로요.

그 때의 성남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집은 있긴 한데... 도로도 제대로 없고요, 당장 일할 곳도 없고요, 버스가 하루에 여섯 대였나, 그거 뿐이고... 아니아니 그보다도 물도 부족하고 화장실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거기다 트럭으로 사람들을 우우 옮겨놓고 알아서 살라고 한 거여요.
그래서 철거민들은 어찌어찌 간신히 천막을 치고 살며 바람만 불면 날아갈까 어쩔까 걱정하면서 고생에 고생을 했지요. 지금 이 한 두 문장으로 설명하는 게 미안할 만큼, 정말 비참하고 참혹한 생활이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서울시는 처음 약속을 저버리고 어마어마한 집값을 내라고 폭탄을 때리죠. 한 두 배도 아니고 800배나 더 비싸게 매긴 데도 있었으니 정말 눈 튀어나올 정도의 액수였는데, 어디서 나오라고요, 그런 돈.

 

"백 원에 땅을 뺏았으면서 만 원에 사라는 거냐?"

 

가난한 이주민들이 화를 내며 항의했지만,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할 뿐이었지요. 어차피 힘없는 약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가만 있으면 닥치고 짜져있겠지 생각한 게 뻔하잖아요.

그리하여 1971년 7월 19일, 주민들이 궐기대회를 벌이고, 면담을 하기로 한 양택식 서울시장이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오질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뚜껑이 열렸고, 마침내 광주 대단지 사건이 벌어졌지요. 시위대는 경찰서나 세무소 등 관공서를 때려부수고 불을 질렀으며 차를 빼앗아서 서울까지 와서 시위를 벌였죠. 이걸 언론에서는 철거민 난동 사건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도 배고프고 앞날 막막하면 눈이 뒤집히지 않겠어요.
여기에 놀란 박정희 및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성남을 시로 승격해주는 등, 기타등등 조치를 취하면서 종결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폭도 내지 난동으로 기록되곤 합니다. 정말 나쁜 게 누구인데요. 너무도 배가 고픈 나머지 임산부가 애를 삶아먹었다라는, 조선 시대에나 있을 법한 소문이 돌게끔 생지옥으로 만들어놓은 게 누군데, 왜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둘러씌우나요.

스탈린이 한국 사람들을 억지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서 내던져버린 것을 그토록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왜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리하는지.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이 이것만 있었던 게 아니죠. 무엇보다 성남은 1990년에 분당시가 들어서면서 또다시 철거의 악몽을 겪게 되지만 그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니, 대신 다른 이야기 해보지요.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기억하시는 분이 몇 명이나 되실지 모르겠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그 때 온 나라가 들썩였죠.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에서 우뚝 일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멋진 축제를 벌인다 들썩들썩. 그래서 온 나라가 완벽한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만전의 준비를 다 했죠.

그런데 외국인 손님들이 오신다니까, 서울 곳곳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판자촌들이 참 못나보이고 싫었던 겁니다. 반짝반짝 멋지고 으리으리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때 빼고 광내야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그 사람들 사는 곳을 죄다 부셔버리고 내쫓았습니다. 목동과 상계동이 그 중 대표적인 장소였지요. 그렇게 쫓겨난 난민들이 한 두명도 아니고... 한 70만명? 정도였지요. 집이 없어졌어도 사람은 살아야지요.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겠어요.
명동성당에서 항의 시위도 하고, 그러다가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부천시의 경인고속도로변에서 겨우겨우 땅을 사서 둥지를 틀려고 했는데, 부천시가 무슨 짓을 했는 지 아세요. 그 도로로, 그 잘난 성화가 지나간다고 보기 흉하다고 비바람과 추위를 막을 가건물까지 몽땅 철거해버린 거여요.
아놔 개뿔, 사람이 더 중요해요 그깟 불이 더 중요해요. 잠깐 휭 지나가는 건데 성화에 눈이라도 달렸대요? 보고 좋은 길인지 아닌지를 체크하고 평점이라도 먹인대요? 그렇게 철거민들 사는 게 보이는 게 싫다면 그냥 헬기 태워서 슉 이동하면 되지, 왜 멀쩡한 사람들이 살 곳마저 망가뜨려요. 그래서 결국 상계동 철거민들은 고속도로 옆 땅에다가 땅굴을 파고 1년 가까이를 살아야 했어요. 두더지도 아니고 무슨 신석기 시대 움집 만드는 것도 아닌데 왜 땅굴을 파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땅에 가린다고, 안 보인다고, 이 나라가 더 나은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눈 가리고 아웅에다 설레발도 이 정도면 울트라 급이지 왜 그런데요.

 

이건 옛날 일이라고 애써 위안을 하고 싶어도, 그런 바보같은 일이 근래에도 있었지요. 2002년 월드컵으로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탕에 빠져있었을 때, 정말 어처구니 없는 조치가 내려졌지요. 바로 떡볶이나 오뎅 금지령...
이유인 즉슨 길거리에서 만들어 먹으니 비위생적이고 식중독의 위험이 있다 이거죠. 하여간 그럴싸하게 대의명분 갖다 붙이는 건 진짜 예술이어요. 그런데 웃기는 건 햄버거는 괜찮다는 거였죠. 왜? 똑같이 길거리 음식인데? 근데 이거... 정말 시행하데요? 그동안 있던 떡볶이나 어묵, 계란빵, 쥐포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웬 이상얄딱꾸리한 햄버거 - 라기 보단 고기 덩어리를 철판에 구워 빵 사이에 끼워 팔고 앉아있습니다.

당시 그 어린 나이에도,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생각했지요. 식중독이 걱정이면 식품 안전을 검사하면 되지 그걸 다 금지해요?
노점상 분들도 정말 아닌 밤중의 날벼락이었을 겁니다. 우리야 그냥 떡볶이 들어가고 햄버거 나왔네~ 생각하겠지만. 그거 하는 업자분들은 부랴부랴 그동안 쟁여놨던 재료들 다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고, 급히 햄버거 제조 테이블을 장만해야 하고, 만드는 법도 배워야 하고... 왜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한데요? 더 문제인 건, 나중엔 결국 떡볶이가 슬금슬금 나왔다는 거! 오히려 지금 햄버거 파는 데 찾기 힘들단 말입니다! 왜 한 거여요, 대체? 괜한 시간과 노력만 낭비한 거 아닙니까? 그 때 전 이 아이디어를 짜낸 놈 머리에 총구멍이 다섯 개 쯤 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 변함 없어요.

 

아무튼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건만, 이 사건들에서는 참으로 동일한 공통 분모가 보입니다. 광주대단지나, 상계동이나, 햄버거의 난이나.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윗대가리들 정신은 바뀐 게 없어요. "저거 치워" 하는 거죠.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분석하고 해결할 생각은 아니고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릴 뿐인 거죠. 철거 지역에 들어선 불법 주택들을 차근차근 양성화하는 방안도 있고, 시민아파트를 짓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죠. 아, 그렇게 지은 아파트가 와우아파트이긴 했지만.

 

이제 다 옛날 일이고  지나니까 다 별 거 아니라고, 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죠.
정말 그럴까요.
그 와중 있던 사람들의 피눈물과 고생을 없던 것으로 해버릴 수 있나요? 상계동 올림픽을 보다보면 철거하는 직원들에게 맞는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고등학생이 집단구타를 당하고 억울하다며 펑펑 우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 비참하고 억울한 일들이 어찌 그 소년에게만 벌어졌겠습니까. 당장 하루 아침에 살 곳을 잃고 나앉은 사람들이 20만명, 70만 명이었어요. 다 합치면 백만 명은 너끈히 되네요.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에 박힌 - 나라가 휘두른 폭력의 상흔이 과연 지금이라고 사라졌을까요.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요. 하여간 이놈의 정부란 게, 어떤 정책이 있으면 협의하고 의논하고 절충하는 과정을 싹 다 생략하고 무작정 밀어붙이니까 희대의 뻘짓이 되더라도 못 막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민을 지키고 그들의 권익을 인정해줘야 하는 나라가, 국민을 무시하고 짓밟고 내팽개치며 내쫓는다는 거죠. 세상에 어느 국민이 그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겠어요? 어차피 나라도 도움 안 되는데 내 앞길 내가 알아서 하지 않는 한, 살 수 없을테니까 자기 이익 챙겨 달아나기 바쁠걸요. 그런 그들을 욕할 자격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고 봅니다.

오늘도 구럼비에서는 폭약이 터지고 있나봅니다. 해군기지가 어떻고, 필요성이 어떻고, 중국과 미국이 어떻고 오만가지 소리가 나옵니다만, 제 반대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반대하고 이야길 해도 듣는 척 만 척하고 지금 억지로 밀어붙이는 꼬라지가 아주 아주 대단히 싫고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내일의 내가 청계천 철거민 혹은 상계동 사람들 혹은 구럼비 바위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내일의 내가 그렇게 짓밟히는 건 아주 질색이기 때문에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반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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