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분위기에 대해서

2012.04.18 02:05

Regina Filange 조회 수:2093

회사 다니는 제 친구는 맥주 한 잔만 풀로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고 눈이 풀려요.

전형적으로 술이 안받는 체질이고 본인도 술 마셨을 때의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친구랑 만나면 저는 술을 마셔도 친구는 항상 좋아하는 음료수를 따로 시키곤 해요.

평범한 회사원이다보니까 회식 자리에서 술도 낼름 받아 마셔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죠. 요즘은 한 모금 마신 다음에 사레들린 척을 한답니다.

여러 전략을 세워놓고 돌려가면서 쓰면 나름 소주 두 잔 정도로 끝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입에 머금고 다른 곳에 뱉는 기술도 있는데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한건지

입에 술을 문 채로 리액션도 곧잘 하고 표정관리도 완벽해서 알아차리기 힘든 정도였어요. 시연 보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브라보를 외쳤습니다.

아무튼 친구는 회식 때마다 무척 고생하고있어요. 그나마 상식이 통하는 상사인데도 술을 강권하는 것에는 끔찍하게 열의를 보인다고 해요. 


반대로 저는 술을 무척 좋아합니다. 보드카와 진, 마티니, 그리고 스카치를 좋아하는데 (없어서 못마시네요) 취한 느낌은 서너잔 째에 들지만 그 이상으로 취하는 법이 잘 없어요.

맥주는 아무리 부어도 취기를 느껴보지 못했고, 고량주 계열의 중국 술은 마시고나서 취기가 올라도 세 잔 정도 비울 즈음이면 금방 깹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거의 없고, 주사도 없고, 숙취도 없는 편이라서 다음날에도 말짱한 편이에요. (다만 섞어마시면 조금 무리가ㅎㅎㅎ)

그런데 소주는 정말 싫어해요. 백세주나 산사춘같은 술도 싫고요. 한국 술은 막걸리와 탁주, 복분자주나 오디주 등 한정적인 장르(?)만 좋아하고 즐겨 마시구요.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집에서 술을 담가 마시던 가풍(-_-)이 있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할머니께선 지금도 뱀술을 담그시거든요. 

대학 다닐 땐 술 세다는 말을 좀 듣고 다녔고, 자연히 나중에 회식을 하게 되어도 저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일이 또 한참 엇갈린 것이, 첫 회식이 고량주로 시작된 겁니다.

별 생각 없이(지금 생각하면 땅을 칩니다) 주는대로 훌훌 마셔버렸지요. 그나마도 저렴하지 않고 자주 맛보지 못하는 술이어서 즐겁게 마셨어요...

그 날 결국 마지막 뒤처리까지 제가 다 했고요. 이후로 저는 술을 잘 마신다는 이미지가 굳어져서 다른 회식 때에도 남들 한 잔 받을 때 두 잔 석 잔씩 받아야만 했습니다;;

항상 고량주나 칵테일을 마실 리는 없고, 주로 소주나 백세주를 마시는데 정말 죽을 맛더라구요. 

술은 즐거운 일에 마시자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살아왔는데.. 즐거운 일이 있어서 마시는 날인데도 싫어하는 술을 마셔야 하다니. 그것도 남들 두배로.

만약 제가 소주를 좋아한다 해도, 이런 식으로 남의 식도에 알콜을 부어대면 좋던 술도 싫어질 것만 같아요. 

요즘은 친구에게서 술잔 피하는 방법을 하나 둘 배우고 있습니다. 일단 처음부터 처신을 잘 했어야 하는데 제가 멍청했죠.


결론은

술 강권하는 분위기는 술을 잘 받는 사람이든 안받는 사람이든 힘들다는 거네요. 

하긴 그도 그런 것이, 평소에 술이 잘 받는다고 해도 언제나 컨디션이 100%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뭐든 강요하는 분위기는 질색입니다. 이런 문화는 문화도 아니니까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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