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사용한지 몇 달이 지났다. 쓰다보면 이렇게 불편할 수가 있나하는 생각과 이렇게 좋을 수도 있나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이 불편한 것도 이전엔 더 불편한 것이 개량된 결과라니 기술의 발전이란 신기할 따름이다.
만년필은 처음 사면 잉크를 채워야 한다. 잉크를 주입하는 방식은 피스톤이나 나사식 방식의 컨버터가 있고 카트리지 주입 방식이 있다. 요는 둘 중 어느 방식이든 잉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기껏 잉크를 채워 글씨를 쓰려해도 바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럴 경우 젖은 휴지를 촉 끝에 갖다대거나 드라이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써야 그제서야 잉크님께서 종이에 강림하신다. 다른 사람이 시필을 위해 빌린 후 내가 다시 쓰려해도 안나오는 경우도 있다. 만년필 뚜껑을 연 상태로 오랫동안 두어도 역시 잉크가 나오지 않는다. 실수로라도 떨어뜨리는 경우는 대재앙이다. 모처럼 느낌이 와 폭풍처럼 글을 쓰려면 헛발질이 일쑤다. 잉크의 흐름이 끊기니 나던 흥도 사그러진다. 또 펜 촉의 각도와 방향을 유의해서 써야한다.
물건을 쓰는건지 상전을 모시는건지 때때로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잉크가 다 떨어지면 밥(잉크)을 채워넣어 줘야 사용이 가능하다. 만년필이란 상전을 모시는 이들 중 몇몇은 밥 주는 것 역시 즐거움의 하나라니 중증이 따로 없다.
내가 모시는 분은 파커 45라는 영국제 만년필이다.
길들여지지 않아 ‘여우’라 이름 붙여진 분도 계신데 이 분은 편식이 워낙 심해(카트리지) 절로 사이가 멀어졌다.
파커 45는 연배가 꽤 되시는 분이다. 구식의 영국인인데 까탈스럽게 굴긴 하지만 막상 접하면 이보다 부드러울 수가 없다.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구식 넥타이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또 다 해지고 꽉 조이는 넥타이라 진지를 잡수실 때마다 드시는 파카45님이나 수발하는 나나 아주 고역이다. 새 넥타이 하나를 맞춰드리니 그것만 유독 새것이라 어색한 감이 있지만은 식사에서 불편함이 없어졌으니 만족하고 있다.
만년필은 구식의 물건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볼펜이나 여타 다른 펜의 편리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전들을 모시는 이유가 있다.
첫째, 필기감이다. 다른 펜과 비교했을 때 손으로 느껴지는 글쓰기의 즐거움이 남다르다. 잉크에 따라서도 필기감이 달라져 잉크를 바꿔 사용하는 맛이 있다.
둘째, 글씨를 교정하는 효과가 있다. 쓰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말은 손으로 쓴다는 말이다. 만년필로 쓸 경우 글씨가 좀 더 좋아지는 효과가 있고 자연스레 필기법도 바뀌는 경우가 있다.
셋째, 구식이라는 점이다. 만년필은 편리하지 않다. 오히려 이 점에 매력이 있다. 사용자는 일부러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남과 다른 특별함을 가진다. 그 특별함이 다르다는 멋을 가져다주고 때로는 이를 즐기게도 된다.
만년필은 구식이라 주인도 가린다. 그렇게 까탈을 부리던 이들이 한번 길들여지면 주인의 버릇까지 알아 필요할 때 잉크를 착착 내놓는다. 다른 이가 펜을 잡기라도 하면 그동안 못부렸던 까탈을 그 다른 사람에게 온통 쏟아붓는다.
구식이고 불편하기에 차분히 무언가를 써야할 때 만년필을 잡게 된다.
지금도 손 안에 파카45는 까탈을 부린다. 아, 열받는데 볼펜을 쓸까 살짝 생각할 즈음이 되니 그제야 고분고분해져 말을 잘 듣는다. 내가 펜을 길들이는걸까? 펜이 나를 길들이는걸까?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게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여우가 말했다.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카트리지로 쓰면 그냥 볼펜 리필하는 기분이라 편하더군요. 닙이 충격 받는 건 조심해야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