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서산돼지님이 욕먹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가 된다는 점을 밝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욕 먹어도 싸고요. 서산돼지님이 어제 남기신 글에 따르면, 서산돼지님의 개인적 상황,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박근혜를 투표하신 것인데 그 이기적인 이유라는 것이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아닐지언정 이 게시판의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정적으로 그 이유가 이 게시판의 대다수 사람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바로 그 가치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 때문에 야당 안뽑고 여당 뽑았다고 말씀하시는건, 야당이 승리를 거둔 경우라면 몰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의 상황에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죠.



2. 저는 12월 19일날, 시간이 갈수록 투표율이 올라가는걸 보고 전율에 가까운 환희를 느끼다가 개표결과가 나오는걸 보고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투표율을 보고 희망을 느낀 이유는 만약 이명박 정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실패한 정권이라면 이 투표율은 그것에 대한 심판의 신호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론에서 절망을 느낀 이유는, 이 정도 투표율로도 못 이긴다면, 1400만명이 정권 교체에 힘을 실어 줬는데도 정권 교체가 안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기는 더 어려울거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이 정도의 투표율을 기록하기도 어려울거고 1400만표씩 모으기도 어려울 겁니다. 투표율이 75%가 넘어갔다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최소한 이번 투표에서 부동층의 표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투표할만한 사람들은 다 나왔어요. 예전에는 보수 성향, 진보 성향에서 박빙이 되거나 다소간 열세를 보여도 투표율을 높여서 부동층을 가져가면 이길 수 있다는게 선거의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근데 이제 더 이상 그런 표는 안남은거 같아요. 끌어올 수 있는 표는 다 끌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졌어요. 앞으로 이기려면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을 투표하게 만드는 전략 가지고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저쪽에 투표한 사람들을 이쪽에 투표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서 그렇습니다.



3.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서산돼지 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서산돼지 님의 의견은 50대를 잡으라는게 아닙니다. 50대를 위한 정책을 펴라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서산돼지님이 애매한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셔서, 특히 서산돼지님의 배경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산돼지 님의 주장은 50대에서 벌어진 격차를 줄여라에요. 이건 50대에서 이겨라라는 것과 전혀 다른 제안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이 부산에 공을 들인 이유는 부산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에서 벌어진 격차를 줄이기 위함이었죠. 숫자 놀음의 관점에서 볼 때 호남에서 더 크게 이기는 것보다는, 질 때 지더라도 부산에서 격차를 줄이는게 더 현명한 판단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호남에서 원래 야당 성향의 표보다 더 많은 표를 얻는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오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을 찍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부산에서 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문재인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박근혜를 찍는 사람이 줄어든다는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4. 선거 결과에 따르면 50대에서 250만표 차이가 났데요. 야권이 여기서 250만표를 모두 가져오는 방법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걸 의도한다면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야권의 정체성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런 정책을 시행하다보면 오히려 기존의 지지 세력을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게 목표가 아니라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100만표 차이가 났잖아요. 50대 격차 250만표 중에 60만표만 가져왔어도, 50대에서 190만 표의 격차만 났어도 야권이 승리했을 게임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존 여당 표에서는 60만표가 줄고 그게 야당 표로 합쳐지니까 몇 만표차, 영점 몇 퍼센트 차이의 승리가 가능했습니다. 당연히 50대에서 과반의 지지 혹은 대등한 지지도를 갖추려면, 그런 정책을 시행하려면 젊은 계층에게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가는 비전을 제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6.5대 3.5를 6대 4로 바꾸는건 그게 아니라도 가능합니다.



5. 선거 때마다 나오는 말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정책선거라는건 불가능 합니다. 하다못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들어설 때에도 정책 선거로 이긴건 아니잖아요. 정권 교체의 당위성과 진영의 분열 때문에 반사 이득을 본 거지.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젊은 계층에 공을 들이면서 중장년층에게 이미지를 어필하는데는 실패한거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봐서 취업, 결혼, 육아와 관련한 복지 이슈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만한 것이지 중장년층에 표심을 가져오는데는 별 도움이 안될 겁니다. 50대에서 저런 이슈에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별로 없잖아요. 만약 민주당이 새누리보다 더 좋은 의료보험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게 중장년층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이지 광고를 하고 설득을 했어야죠. 요는 누가 더 좋은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누가 누구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는지 생색을 내는게 중요했다는 말이에요. 20~40대에서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가질 수 있던 우세함의 근본적인 원천은 윤리적 정당성이었을 겁니다. 독재자의 딸이며 권위적이고 지도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한 사람을 대통령에 앉힐 수 없다. 이게 문재인 표 1400만의 가장 중요한 근간일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50대에게는 이게 통하지 않았어요. 물론 적지 않은 50대 분들이 이 대의에 동의하셨겠지만, 어쨌든 그게 그 나이대 사람들에게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박근혜 같은 경우는 중산층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면서 이들에게 어필하고, 이들을 신경쓰고 있다는걸 보이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이게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걸 50대들이 더 잘 알 걸요. 하지만 최소한 그런 식의 방향이 자신들의 관심사 혹은 이해에 관련이 된다는걸 박근혜가 각인시킨 겁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어떤 방식으로 이 계층에게 어필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색을 내는데에는 꼭 그 사람들의 이해에 정확히 부합하는 정책이 필요가 없잖아요. 생색이라는게 그런거 아닙니까.



6. 그리고 많은 분들이 50대 저소득층의 지지율을 근거로 들어가며,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는 식의 말씀들을 하시던데...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투표한 세 번의 대선에서 단 한번도 대통령이 된 사람을 찍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나라당이 이길 때도 열린우리당이 우세할 때에도 민주당이 이길 때도, 제가 낸 표는 사표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표가 될 걸 알면서 표를 던졌던 사람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저겁니다. 아니 우리가 없는 사람들 이해 관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데 왜 그런 계층으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가하는 한탄을 해가면서,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욕을 바가지로 먹던 말이기도 하죠. 더 쉬운 말로 더 가까운 곳으로 가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뜻이 그들에게 전달 될 수 있는지 노력하는게 할 일이 아니겠냐는 겁니다. 저도 십분 백분 동의하는 바고요. 언제나 이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는 집권 세력이 되는게 아니었습니다. 아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집권 세력이 되는거 였겠죠. 하지만 항상 단기적은 목표는 1%씩 지지기반을 늘려가는거 였습니다. 내가 던진 표가 대통령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그 표로 지난 선거보다 1% 더 많은 지지자를 모을 수는 있으니까. 저들이 바보라서 혹은 불통이라서 설득을 포기하면 절대 지지율을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어쨌든 우리는 그들, 돈없고 배운거 없는 사람들의 이해를 반영하려는 집단인데 그 대상들이 설득이 안된다고 손을 놓아버리는건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거 아닙니까. 막말로 현재 야권의 목표가 젊은 사람들만 잘사는 세상 만드는게 아니잖아요. 야권의 정책이 시행되면 중장년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혜택을 보는거 아닙니까? 그걸 목표로한 정책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그걸로 어필을 해야죠. 그걸로 250만을 넘어오게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일부는 가능하잖아요. 가장 결정적으로 그 일부를 가져오지 못하면 앞으로도 못이기는 거 잖아요.



7. 최대한 호의적으로, 자비의 원리를 발휘해서 서산돼지 님의 주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라고 박정희 딸 뽑고 싶은 줄 아느냐. 그런데 우리한테는 박정희 딸이냐 아니냐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안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민주당 공약에서는 이걸 보장해 줄만한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친노 뽑아 봤더니 친노도 별 거 없더라. 친도도 싫다. 뭔가 우리가 혹할만한 걸 내놔봐라. 우리가 꼰데는 맞지만 불통은 아니다.


이걸 실현시키기 위해 야권의 근본적인 이념이나 전통적인 지지 계층을 버릴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아저씨들의 이해 관계를 100% 만족시켜 줄 필요는 없어요. 몇 가지 꺼리만 있으면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일부를, 그게 다수가 아니더라도, 250만 중에 60만이니까 5명 중 한명이라도 끌어올 수 있으면 다음에는 이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걸 못하면 승산이 없어요. 이제 중도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거의 남지 않았고 앞으로 투표율이 80%, 90%씩 찍을 확률은 상당히 낮아 보입니다. 정말 꿈같은 일이죠.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전체 투표인구 중에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만 갈겁니다. 이들을 적으로 설정하고 이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전략을 짜려고 하면 이길만한 길은 찾을 수 없어요. 서산돼지 님의 주장은 결국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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