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최근 화제작들 - 레미제라블, 주먹왕랄프, 호빗을 연달아 몰아봤습니다. 영화라도 좀 보고 게임이라도 좀 하니까 그나마 가라앉는 것 같네요. 


1. 주먹왕 랄프

아이들도 물론 즐겁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지만 8비트 게임기의 추억을 가진 80년대생 키덜트에게 더욱 큰 선물이 되더군요. 디즈니와 픽사가 통합된 탓인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임에도 픽사 특유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이고, '토이 스토리'의 게임 버전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단점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픽사가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통해 다져오고 '월-E', '업' 등에서 어떤 경지에 올랐음을 보여준, 추억을 통해 어른들조차 눈물 쏙 빼게 만들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그 솜씨가 '주먹왕 랄프'에도 고스란히 간직되어 매우 좋았습니다.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전개가 너무도 좋았고 랄프가 바넬로페가 만들어준 쿠키 메달을 바라보는 모습은 찡하더군요. 가볍게 웃으려고 갔다가 감동마저 얻고 돌아온,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p.s. 1. 게임이란 환상의 세계를 소재로 한 작품답게 시각적으로 매우 환상적입니다. 특히 작품의 주무대가 되는 '슈가 러시'의 세계는 달콤한 총천연색의 향연! 나중엔 저까지 배고파지며 커다란 파르페같은 것이 마구마구 먹고 싶어졌어요.  

 

p.s. 2.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캡콤과 닌텐도의 협찬을 받아 스트리트 파이터, 팩맨, 록맨, 슈퍼 마리오, 소닉 등 수많은 추억의 캐릭터들(아니 사실 팩맨 빼곤 모두 후속작들로 인해 여전히 현역이군요. 록맨은 후속작들을 통해 아름다웠던 추억을 셀프능욕중입니다만...=_=)이 깨알같이 찬조출연하며 즐거움을 줍니다. 특히 게임 센트럴 역에서 스쳐지나가는 춘리와 캐미는 왜 이리 반갑던지 ^^;; 


p.s. 3. 작중 배경으로 등장하는 '슈가 러시'는 실제로 제작되어 발매된다고 합니다. 애초에 '마리오 카트'를 여아용으로 패러디한 세계니까 실제 게임이 나온다면 아류작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그 환상적인 시각적 배경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게임이 될 것 같더군요. 특히 자동차 만들기 미니게임은 당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요. 애초부터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잘 만들어진 세계라 게임, 캐릭터 상품, 완구류, 아기자기한 느낌의 TV 애니메이션('바넬로페와 친구들' 느낌?) 등으로 날개를 뻗지 않을까 망상해봅니다. 


2. 호빗 ~ 뜻밖의 여정

반지의 제왕이 피터 잭슨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지만 점점 그의 B급 재기발랄함과 엽기적 감성을 무디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뭐 로버트 로드리게즈도 한동안 스파이 키드나 찍으며 엎드려있다가 '씬 시티' 이후 다시 폭발했으니(그리고 그 이후 전보다도 더욱 막나가고 있으니) 같은 일이 잭슨에게도 일어나길 바랍니다. 애초에 중편 분량 밖에 안 되는 원작을 LOTR과 비슷한 3시간 짜리 3부작으로 늘려놨으니 진행이 너무 처지고 잡다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저는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원작을 읽은지 오래되어 트롤이 햇빛 보고 돌로 변하는 장면, 골룸과 수수께끼 대결하는 장면 밖에 기억에 안 남아서 그런지 영화를 보니 꽤 새롭더군요. 다만 좀 뜨악했던 부분이라면 소린을 자꾸 '드워프 버전 아라곤' 쯤으로 미화하려 한다는 점. 사실 원작의 드워프들은 용감무쌍하기만 할뿐 사고만 치고 다니며 갠달프와 빌보가 기지를 발휘해 뒷수습하는 전개의 연속인데, 툭하면 사로잡히기나 하고 그리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소린에게 아라곤 포지션을 맡기려니 뭔가가 삐걱대는 느낌입니다. 불속을 헤치며 클로즈업+슬로우 모션의 버프까지 받아 엄청 멋지게 아조그에게 돌격한 뒤 순식간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황당할 정도...=_=;;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이란 틀에 갖힌 탓인지 원작의 좀 더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많이 죽은 점은 아쉽지만(저는 빌보의 집에 난데없이 쳐들어와 벌이는 드워프들의 시끌벅적한 식사 장면이 참 좋더군요. 노래하고 낄낄대며 정리까지 완벽히 마치는 센스...-_-b), 후속작에서 전투씬은 더욱 가열차게 뽑아줄 것 같아 기대됩니다. 


p.s. 1. 시간대가 안 맞아 어쩔 수 없이 아이맥스 3D로 봤는데 별로였습니다. 일단 대전 CGV가 본격 아이맥스라고 보기 민망한, 그저 일반 스크린보다 약간 더 큰 정도라는 것도 한 몫 했고 화면 선예도가 떨어진다는 3D의 한계도 있었고요. 작품 내내 3D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장면도 많지 않고, 인물과 배경이 따로 논다는 느낌도 들어 3D로 볼 필요는 전혀 없겠더군요. 무엇보다 제가 안경을 쓰고 있어 그 위에 3D안경을 겹쳐쓰다보니 영화 끝나고 나서 안경테가 걸리는 귀 윗쪽이 장난 아니게 아프더군요...ㅠ_ㅠ 다음에 친구와 디지털로 다시 볼까 고민 중입니다. 


p.s. 2. 반지의 제왕 이후 10년... 다른 배우들은 모르겠는데(10년 동안 늙지도 않은 괴물 일라이저 우드...) 갠달프 역의 이언 맥켈런 옹은 확실히 세월의 흔적을 빗겨가지 못하셨습니다. 주름도 더욱 깊어지셨고, 무엇보다 목소리 특유의 중후한 울림이 많이 약해져서 마음 아프더군요. 반지의 제왕 1편에서 반지를 내놓지 않으려는 빌보를 꾸짖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간데없고 드워프들을 혼내는 장면에서조차 힘없는 목소리...ㅠ_ㅠ 


3. 레미제라블 

거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된 송-스루 뮤지컬이다보니 낯선 느낌도 꽤 있었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메시지의 무게감은 이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특히 엑스맨의 성공 이후 지나치게 블록버스터 히어로 캐릭터로 낭비되던 휴 잭맨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굉장한 연기력을 뿜어내는군요. 좀 더 중후한 목소리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노래도 수준급이고요. 짧은 출연분량에도 연기와 노래 양면에서 폭발력을 보여주는 앤 해서웨이(팡틴), 진짜 뮤지컬 배우 출신답게 노래하는 장면마다 주위를 압도하는(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생각보다 훨씬 노래를 잘 불러서 놀랐는데 그럼에도 에포닌이 노래 시작하면 다른 모든 소리가 묻혀버림;;) 사만다 바크스(에포닌)까지 정말로 눈과 귀가 즐거웠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러셀 크로우(자베르)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ㅠ_ㅠ 그냥 연기할 때는 중저음이 멋진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노래하니까 이게 왠걸 시종일관 똑같은 톤에 음정변화도 그게 그거고 중저음만의 묵직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힘빠진 목소리... 한마디로 노래 참 못하시더군요...=_=;; 미스 캐스팅이었습니다. 첫날 바리케이드를 간신히 지켜낸 뒤 실의에 빠져있던 청년들에게 다니엘 허들스턴(가브로쉬. 이 친구 어린데도 노래 정말 잘하더군요. 노래만 따지자면 에포닌과 투톱)가 노래로 용기를 북돋는 장면, 그리고 유명한 피날레에서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합창에서는 정말 뭉클했습니다. 완성도 역시 상당한 작품이지만, 완성도와 상관없이 묵직함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더군요. 지금 우리가 아무리 실의에 빠져있는들 혁명으로 이뤄낸 공화정이 다시 왕정으로 돌아갔고, 다시 일으키려는 혁명에조차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최후까지 붉은 깃발을 들어올렸던 앙졸라스만 하겠습니까...ㅠ_ㅠ


p.s. 1. 원작을 제대로 접하기 전에 아동문고에서 읽었던 '장발장'과 애니메이션으로 본 세계명작동화 코제트 편이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원작을 읽었을 때 가장 쇼킹했던 건 아름아닌 '에포닌'의 캐릭터... 제 기억속의 에포닌은 맨날 코제트 괴롭히던, 팥쥐 친구 쯤 되는 이기적이고 나쁜 지지배였는데 이런 순정파였다니...ㅠ_ㅠ 게다가 이 영화에선 노래마저 압도적으로 잘 부르니까(절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못 부르는게 아님에도!) 코제트보다 에포닌에 감정이입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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