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기릅니다.

2012.12.23 20:39

잔인한오후 조회 수:3308

벌써 한 달 정도 되었네요.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할 때 듀게에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기억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어떤 분이 고양이를 데려왔다가 집에서 안된다고 해서 다시 되돌려줬다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나서 입양 파기에 대해서 매우 험악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가 키울 수가 없게 되어 다시 되돌려주는 상황이 되면 듀게에서도 혼날까봐 글을 올리지 못 했었어요.


그래도 듀게에서 고양이 글을 검색해보니 어린 고양이들을 기르기 시작한 분들이 많으셨더군요. 가장 인상이 깊었던건 (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건) 이불 5채를 빨았다는 어떤 분의 증언이었습니다. 저도 화장실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과 생명체를 기르기 시작해서 그 생명체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을지, 또한 생애주기가 다른 세계의 아이를 빠르게 흘러가는 늙음을 보며 버틸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의 한심함을 누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없다고 포기했다가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데려오게 된 고양이는,. 피부병에 걸려서 듬성 듬성 털이 빠져 있고 매우 아파보이더군요. 생후 3개월이라고 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 주인이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2마리 중 한 마리가 병에 걸려서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동물병원 의사분께서는 약만 먹어도 낫는 병이라고 설득했지만 전주인 분은 듣지를 않으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 고양이가 병원에서 신세를 지다 이렇게 저에게 오게 된 것이었죠. 한 달이 된 지금은 이미 병이 깔끔하게 나아서 털이 다 자랐어요.


고양이를 기르면서 기르기 전에 알 수 없었던 사실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고양이 앞 발바닥에는 엄지손가락 같은 브레이크를 위한 발가락이 하나 더 있더군요. 만지작 만지작 거릴 수록 진짜 고양이 발바닥이 그렇게 생겼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집니다. 고양이 발 그림 그리면 다들 4개의 작은 동그라미와 1개의 큰 동그라미를 그리지 그 아래에 타원형의 긴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리지 않잖아요. 그런게 있어요! 그리고 고양이의 발톱을 정기적으로 깍아줘야된다는 건데 그 전까지는 발톱을 갈 수 있는 게 있으면 거기에 갈면 된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고양이가 의도하지 않은 할큄에 몇 번 당하고 나서 검색해본 결과 깍아줘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밤에 잘 때마다 다른 생명체와 같이 잠들면서 체온을 나누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을 사귀지 않는 이상 체온을 나눌 길은 중학교 쯔음 이후부터는 아무것도 없구나 하고요. 누구랑 팔짱을 낄 수 있나, 손을 잡을 수 있나, 서로 포옹을 하나. 가끔 악수하는 수준일 뿐이고. 어린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도 날이 갈수록 온화한 눈빛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변해가고 있고. 다들 외부의 열원에 목말라하는게 아닌가, 다른 생명체의 따스함을 원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조하게도, 그렇다면 로봇 강아지나 고양이도 열원 발생장치를 설치해서 쓰다듬을 때 따뜻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그렇게 고양이를 기르고 있어요. 고양이를 기르는건 좋은 일이네요.


p.s.


오늘 빙그레님과 5분 애인이 되었습니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커플 신고 버튼 좀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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