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1 20:17
오마 샤리프 사망 소식에 율 브리너가 떠올랐어요. 이 아저씨도 세상 뜬 지가 한 20년-_-;;30년 됐지만 그래도 나름 저에겐 흑백TV시절 스타거든요.TV로 한두 번 방송한 게 아닐텐데, 볼 때마다 형제들이랑 율 브리너가 태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로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있네요. 요새 가끔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왕과 나>랑 그 주연배우를 모른다는 사람이 꽤 많아 세대차이를 느끼곤 합니다. 오늘은 불러주는 이 없는 토요일을 맞아 <왕과 나> 사운드트랙을 틀어놓고 율 브리너랑 영화 관련 잡다시한 이야기 좀 하려고요. :)
1. 율 브리너는 혁명기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으로, 나중에 중국 하얼빈으로 이주했고, 일제치하의 조선땅을 드나들며 벌목업, 숙박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 함경도 땅에도자주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유년을 거의 이 인근에서 지내며 "섬머 코리안 보이"로 불리기도 했다네요. 광산업을 하던 브리너의 할아버지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 달네고르스크라는 도시를 하나 만들 정도로 이 지역의 유력자였던가봐요. 율 브리너는 "헐리우드의 러시아 황제"로 불리우며 블라디보스토크에 본인이름을 딴 공원에다 동상까지 서 있을만큼 여전히 추앙받고 있고요,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 국제영화제에서는 율 브리너 특별상을 매년 수여하고 있습니다. 2014년 수상자는 러시아-라트비아-프랑스 합작영화 <Two Women>의 애나 레바노바였어요.
2. 율 브리너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건 다름아닌 뮤지컬 <왕과 나>죠. 오리지널 초연부터 브리너가 공연한 횟수만 무려 4,625회!! 우리나라엔 1956년도 율 브리너 데보라 커 주연의 영화판으로 소개됐는데, 이건 1) 싸얌(태국의 옛이름)의 몽꿋왕(라마 4세)의 자녀교육을 위해 고용됐던 영국 여성 애나 레오노웬스의 자전서를 바탕으로 2)마거릿 랜던이 <Anna and the King of Siam>이란 세미-픽션으로 써 낸 걸 3)오스카 해머스타인과 리처드 로저스가 뮤지컬로 각색한 것을 4)어니스트 리먼이 영화 시나리오로 다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애나 레오노웬스의 자전서 자체부터가 역사학자들로부터 뻥이 심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왕을 실제로 대면할 기회도 몇 번 없었으면서 자기의 역할을 너무 부풀려 썼다는 거죠. 즉, 최종 영화판의 <왕과 나>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각색이 많이 들어갔고, 실화와는 꽤 거리가 있을 거란 얘깁니다.
3. 이런저런 연유로 <왕과 나>는 태국에서 금지된 품목입니다. 소설이건, 영화건, 뮤지컬 DVD건 걸리는대로 무조건 압수에다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21,000바트(70만원 정도)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요, 공공상연을 감행하는 경우에는 국왕모독죄로 최고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습니다. 태국의 입헌군주제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군사정부와 엘리트민주정부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유지돼오고 있는데, 정권을 잡은 실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전략이 꽤 성공적이었던 데다, 또 현재의 푸미폰 국왕(몽꿋왕의 증손)이 엄청난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69년간이나 왕위를 유지하고 있어(재임중인 세계의 지도자들 중 최장기, 태국 역대 왕들 중에서도 최장기) 지금은 거의 신격화된 터라 이 권위에 도전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태국 돈은 어딜 가나 굉장히 깨끗한 편인데(바로 옆나라 라오스의 돈은 거의 걸레 수준도 많습니다) 모든 지폐에 왕의 얼굴이 그려져 있어 국민들이 지극정성으로 돈을 관리하기 때문이지요. 가게 같은 데서 서양 여행자들이 바지 주머니에서 땀으로 축축해진 지폐를 꼬깃꼬깃 꺼내는 걸 보면 주인이 질겁을 하며 받아 정성스레 펴고 앞뒤 그림을 맞춰 보관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발로 밟아도 잡혀가요. 극장에서 영화 상영하기 전에도 국왕 찬가가 나오는데 당연히 일어서서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4. 1999년에 주윤발, 조디 포스터 주연으로 <애나 앤드 킹>이 다시 만들어졌죠. 기존의 <왕과 나>가 <300>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 1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구적으로 편향된 시선에서 몽꿋왕을 성질고약하고 야성미 물씬 넘치는 육체적 인간으로 그리면서, 문명사회 여성인 애나가 어떻게 몽꿋왕과 그의 나라를 변화시켰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새 <애나 앤드 킹>은 탈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애나라는 여성의 내면적 변화에 주목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아직 안 봤어요). 수정된 시나리오로 이렇게 주장하며 태국 현지 촬영 가능성을 타진해봤지만 태국당국의 대답은 역시 단호한 아니오! 결국 말레이시아의 페낭, 랑카위 등지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네요.
5. 율 브리너는 그 뮤지컬을 내내 소화했으니 당연히 영화에서도 직접 다 노래를 불렀고요, 애나 역의 데보라 커는 마니 닉슨이라는 가수가 대신 노래를 불렀지요. 닉슨은 그 당시 돈으로 $420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애나 역은 브리너와 함께 뮤지컬을 초연했던 거트루드 로렌스가 맡을 거였는데, 1년만에 간염 혹은 간암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죽는 바람에 그 이후의 다른 파트너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율 브리너의 땡깡으로 데보라 커로 낙점됐다네요. 브리너는 영화화 이야기가 오가던 시기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이던 연극 <Tea and Sympathy>에서 데보라 커를 처음 봤다고...
6. 역시 마무리는 이렇게 해야겠죠. Shall we dance, shall we dance, shall we dance?
사족1. 저는 이 영화 덕분에 영어를 배우기도 전에 '엣 세트라'가 '기타등등'이란 걸 알았지요. 그런데 기타등등이 뭔지 잘 몰랐던 듯.
사족2. 유튜브에 <왕과 나> 영화 전체가 올라와 있군요...저작권이?
2015.07.11 21:23
2015.07.12 01:54
허헛, 왜 하필이면 7월 11일에 이 글을 적고 싶었을까요.. 잠깐 율 할배신이 저한테 왔다 가신듯... 근데 85년 사망이면 30년 전... 인터넷도 없을 땐데 왜 전 사망 소식을 알고 있었을까요? 스크린 잡지?
2015.07.11 22:55
고전의 미덕은 백인이나 서구중심 등의 비뚤어진 사고가 스며들어있기보다는 인간미가 더 부각되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마지막 죽어가는 왕이 아직도 당신은 나보다 고개를 더 높이 쳐들고 있나, 라고 말하자 데보라 커가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바싹 낮추는 장면, 여러가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왕의 첫째 부인 등이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머리털 있는 율브리너의 영화가 몇편이나 될까요 솔로몬 왕이 기억나고 부리바는 아주 약간만.
2015.07.12 02:12
오늘 이 글을 쓴 김에 다시 한 번 영화를 봤는데요, 옛날에 볼 땐 메인스토리에 집중하느라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극중극 부분이 아주 압권이었습니다. 지금 태국에서 몇 년째 성황리에 공연하고 있는 싸얌 니라밋 Siam Niramit이랑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지네요.
찾아보니, 본인의 진짜 머리털이 있는 영화는 데뷔작 <Port of New York> 단 한 편이라는군요. 전 솔로몬 왕은 모르겠고 십계의 이집트 왕과 부리바의 꼰 수염 정도...
2015.07.12 11:56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글 읽다가 기타 등등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흉내내면서 놀았었는데요.
고전 영화들을 보면 흐뭇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반면 조금 더 생각하면 오히려 섬뜩한 면들이 있어서 생각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60년대 이전 영화들 보면 사람들간의 예의, 격조, 이런 것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고, 그게 참 귀엽거든요. 그래서 위로가 필요할 때 곧잘 고전들을 봅니다. 70년대 영화는 우연인지 아닌지 별로 본 것이 없어서 언제 이런 선이 무너졌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아직도 '신사' '숙녀' 이런 개념이 살아 있고, 품위가 있어요. 그런데 그 예의 격조 품위의 객체 주체는 애초에 백인 한정이라는 것까지 생각해버리면 영화가 재미없어지더군요. 바로 이 때
이 영화 처음 볼 때가 마침 국사 시간에 열강의 이권 침탈과정 배우던 때라, 율 브리너 할아버지(인가 아버지인가 어느 조상인가는 불확실)가 벌목권을 싹쓸이 했었대, 이런 얘기가 다음날 학교에서 돌았던 것도 기억납니다. 당시는 볼거리가 지금보다 훨씬 부족했으니까 그 주의 주말의 명화나 전설의 고향 등등이 한 주간은 화젯거리이던 때였죠.
영화와는 별 관련 없는 태국의 왕 이야기인데요, 92 년이었죠 아마. 군부하고 시민간 충돌이 있었을 대 왕이 중재하던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사건은 잘 기억이 안 나고 오히려 무릎 걸음으로 왕 앞에 다가가던 양측 대표만 생각납니다. 아무 권위도 없는 사람을 둔 상징적인 연출이 아니라 애초에 왕의 권위가 대단하군요.
2015.07.12 14:54
금발에 벽안을 한 백인들이 영화를 위시한 문화 전반에 쌓아놓은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떨쳐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얼마 전에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기획한 영국 글로브 씨어터의 햄릿을 봤는데 햄릿은 흑인, 친구 호레이쇼는 무려 흑인여성이었어요. 그런 캐스팅이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게 신선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더 지나야 이런 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평생 가능키나 할까 생각하니 좀 씁쓸해지더라고요.
아마 보신 장면이 92년 검은 오월의 이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가운데가 군부쿠데타의 주역 수찐다고, 왼쪽이 당시 방콕시장 짬렁(청백리 잠롱으로 유명했죠)입니다.
2015.07.12 15:05
2015.07.12 17:24
저도 꼬꼬마 시절 <왕과 나>를 보고 엣세테라, 엣세테라, 엣세테라 하며 따라했던 것, 그리고 율 브리너를 보면서 '다른 서양 남자배우들에 비해서 저 아저씨는 덜 느끼하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납니다.
2015.07.12 18:12
눈빛이 '형형'하다는 게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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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을 들은지 오래 되어서 궁굼해 찾아 보니,,
율 브리너 출생-사망 1920년 7월 11일, 러시아 - 1985년 10월 10일. 좋은 배우였죠.